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경험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더군다나 배신의 당사자가 찬란한 순간을 함께했던 동반자라면 그 상처는 오래도록 가슴에 맺힌다. 독보적인 커리어를 구축한 리틀 심즈 또한 같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음악적 정체성을 정립한 세 음반 < Grey Area >, <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 < No Thank You >의 핵심 제작자 인플로(Inflo)와 금전 문제로 법정 공방을 거친 끝에 갈라선 것이다. 앨범을 여는 ‘Thief’와 ‘Flood’에서 울분을 머금고 ‘도둑’이라 부르며 위협하는 대상 역시 명백한 상황, 비판 정신을 벼려내던 젊은 시인의 칼날이 결국 적을 향하고 마는 걸까?
전날의 동료가 제공했던 장대한 오케스트라 프로덕션은 분명 상징적이었다. 허나 이를 답습하는 방식은 아티스트 본인에게도 내키지 않았을 터, ‘매번 그와 작업했는데, 나 혼자서도 해낼 수 있을까?’(‘Lonely’)라 시름하던 리틀 심즈는 끝내 다른 길을 찾아냈다. 새로운 조력자 마일스 클린턴 제임스(Miles Clinton James)가 마련한 생동감 넘치는 밴드 사운드는 재즈와 펑크를 넘나들며 주인공의 서사와 발맞춘다. 커다란 콘서트홀에서 자그마한 소극장으로, 규모는 작아졌지만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하기엔 안성맞춤인 무대다.
응어리진 마음은 결코 단번에 풀어지지 않는다. 유머러스한 ‘Young’으로 애써 괜찮다 둘러대거나 ‘Hollow’에서 거듭 총부리를 돌리는 등 여러 정서를 오가는 혼란 가운데 아름다운 통찰이 개화했다. 괴로움을 그대로 게워 냄으로써 이루어지는 치유다. 증오가 아닌 사랑에서 비롯된 자유의 성취(‘Free’)와 평화를 갈망하며 나선 사색(‘Peace’)을 통해 리틀 심즈는 다시금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한다. 내면을 헤매며 읊조리던 목소리가 자신감을 되찾은 후 ‘난 지금 전성기의 로린 힐과도 같아’(‘Lion’)라는 선언으로 바뀌는 흐름이 참으로 유려하다.
남매로 분해 가족의 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Blood’와 유세프 데이스의 드럼 독주가 긴 여운을 남기는 ‘Lotus’에 이르면 몰입은 자연스레 최고조에 달한다. 두 머큐리상 수상자가 손잡은 엔딩 ‘Blue’는 그간의 자각을 청자와 연결 짓는 경험이다. ‘딸이 백인 우월주의에 관해 묻는다면, 넌 뭐라고 말할 거야?’와 ‘세상이 너를 등진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마지막 가사인 ‘주어진 목적 앞에서, 넌 무엇을 할 거야?’. ‘너’를 향해 연거푸 던지는 질문들에 답할 때, 비로소 그의 깨달음은 우리의 깨달음이 된다.
리틀 심즈의 음악 세계는 프로듀서 한 명에 의해 좌지우지될 정도로 얕지 않았다. 힙합의 요체인 랩은 여전히 건재할뿐더러, 외려 시간이 지날수록 짙은 향취를 내뿜으며 무르익고 있다. 마냥 전작의 웅장한 사운드스케이프와 견주어 한계를 지적하기에는 얻은 열매가 많다. 현재의 시행착오마저 능히 이겨낼 거라 믿는 강한 자기 확신, 그것이 < Lotus >를 구성하는 제일 큰 요체다. 연꽃은 흙탕물 위에서 피어난다. 지금의 그도 그렇다.
-수록곡-
1. Thief
2. Flood (Feat. Obongjayar & Moonchild Sanelly)
3. Young
4. Only (Feat. Lydia Kitto)
5. Free [추천]
6. Peace (Feat. Moses Sumney & Mirra May) [추천]
7. Hollow
8. Lion (Feat. Obongjayar)
9. Enough (Feat. Yukimi)
10. Blood (Feat. Wretch 32 & Cashh) [추천]
11. Lotus (Feat. Michael Kiwanuka & Yussef Dayes) [추천]
12. Lonely
13. Blue (Feat. Sampha)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