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예상 밖의 음악을 선보인 이에겐 자연스레 또 다른 파격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함을 기반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올 팍에게 해당하는 경우겠으나 본작에 드리운 낯섦음은 이 지점을 비튼 결과다. 얼터너티브란 명목 아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 동안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던 로커의 면모를 이번만큼은 전면에 드러낸 것. 사랑의 추악한 민낯을 파헤치는 < A Bloodsucker >는 뮤지컬적 요소가 다분한 환상 동화 < Where Does Sasquatch Live? >(2023)의 전율을 확장했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 < Syndromez >(2021)의 광기를 집약했다.
독특한 메시지와 콘셉트로 건재함을 과시하되 진입 장벽을 낮춰 흡인력을 더했다.
기존 팬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Sunlight’의 한껏 과장된 보컬 톤과 ‘Vampire hotel’ 속 도발적인 가사에 반가움을 느낄 것이고, 전자
음악 요소를 휘감은 ‘Keep out!’의 팝적인 멜로디는 입문자들에게도 적합하다. 이렇듯 개성 강한 초입을 통해 고유의 표현 방식을 내비치면서도 거리를 가깝게 유지한다. 카니예 웨스트를 향한 아티스트의 동경이 어느덧 ‘Twisted
fantasy’ 속 뒤틀린 사랑과 관념으로 표출되는 것 또한 수용 범위를 넓힌 관전 포인트다.
과격한 표현과 앨범의 주제는 자칫 과잉된 톤만을 유발할 수 있겠으나 이를 희석하는 완급 조절 역시 탁월하다. 연인에게 마음을 얻지 못해 자살하겠다는 극단적 논조(‘Twisted
fantasy’)나 주체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한 절규(‘Sucker for dopamina’)와
같은 초중반의 격한 감정선 뒤로 후반의 서정성이 빛을 발한다. 절망 끝에 해방을 흐느끼는 ‘Dancing with chemicals’의 짙은 잔향과 'Chloe’와 ‘Silence’를 잇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아련함이 적절한 분위기 환기와 더불어 작품의 몰입도를 배가한다.
2023년의 ‘Christian’ 신드롬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마니아들만이 향유하던 그의 음악이 일반 대중에게도 닿게 되었으나 정서적 거리감
탓에 ‘천재 호소인’과 같은 애석한 오명 또한 동반됐으니
말이다. 본작은 이러한 부담을 한 겹 덜어낸다. 축적된 경험과
양식을 양분 삼아 보다 발전된 음악관을 제시하면서도 직관적인 접근법과 몰입의 장치를 마련했기에 가능한 일.
< 더블유 코리아 >와의 인터뷰에서 지올 팍은 본인의 용기가 부족하여 작품에
더 큰 파격을 주지 못했다고 토로했지만, 그 선택은 < A
Bloodsucker >를 한층 친화적인 예술로 만들었다. 정수(正手)이자 묘수였던 것이다.
-수록곡-
1. Sunlight
2. Keep out! [추천]
3. Vampire hotel [추천]
4. Feel so strange
5. Twisted fantasy [추천]
6. Sucker for dopamina
7. Villain
8. Dancing with chemicals [추천]
9. Chloe [추천]
10. Silence [추천]
11. Masochist
12. Moon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