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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Quit
하임(Haim)
2025

by 박수석

2025.07.14

세 자매의 음악에는 기분 좋은 노스탤지어가 배어 있다. 고유의 감성을 통해 옛 정취를 현재로 끌어오는 것이 밴드 하임의 주특기. 그러나 친구의 죽음, 건강 문제, 실연 등 지난 몇 년간 찾아온 시련은 캘리포니아를 경쾌하게 활보하던 발걸음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5년 전 발매한 3집 < Woman In Music Part. III >에 이어 이들은 다시 한번 아픈 기억으로 침잠한다. 가라앉은 분위기 가운데 악기도, 목소리도 기교를 덜고 괴로웠던 삶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내밀한 고백을 위해 편하고 몸에 잘 맞는 옷을 골랐다. 손길이 닿은 곳은 어릴 적부터 들으며 자라온 미국적인 장르들이다. 비음을 활용한 트왱(Twang) 창법과 하모니카가 어우러지는 ‘The farm’에선 컨트리의 소박함이, 이별 후 마음을 다잡는 ‘Down to be wrong’에선 포크 록의 서정이 흐른다. ‘Born to run’이라 외치는 ‘Gone’의 가사는 미국의 ‘보스(The Boss)’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을 상기시키며 본작의 뿌리를 분명히 드러낸다. 흔들리는 정서 속에서도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솜씨는 여전하다.


왕성한 창작력은 시제를 가리지 않는다. 상술한 곡이 과거의 온기를 챙겼다면, 매끈한 선율로 관계의 어려움을 노래하는 ‘Relationships’와 실험적인 음향 효과의 ‘Now it’s time’은 오늘날의 세련된 매력을 더한다. 다만 대중성을 의식한 몇몇 곡은 앨범의 몰입도를 떨어트린다. ‘Love you right’, ‘Spinning’은 무난한 멜로디 위에 얹은 사랑 이야기가 존재감 없이 떠다니며, ‘Cry’ 또한 화자가 맏이 에스테 하임으로 바뀌었을 뿐 결국 비슷한 주제와 감상만을 남긴다. 아무리 진심을 담았다 한들 동어 반복이 주는 단조로움은 어쩔 수 없다.


그저 참으며 긴 장마를 버텼다. 이들이 맞은 빗방울은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성으로써 대중의 마음까지 적신다. 울고 나면 느껴지는 홀가분함처럼 인내의 과정 뒤 찾아온 카타르시스가 후련하다. 이윽고 체념처럼 보이던 제목의 다른 의미를 깨닫는다. ‘그만두겠다’라는 선언은 타율적 포기가 아닌 주체적 해방임을. 비 온 뒤 굳어진 땅에 한 줄기 햇살이 비친다.


-수록곡-

1. Gone [추천]

2. All over me

3. Relationships [추천]

4. Down to be wrong

5. Take me back

6. Love you right

7. The farm

8. Lucky stars [추천]

9. Million years

10. Everybody’s trying to figure me out

11. Try to feel my pain

12. Spinning

13. Cry

14. Blood on the street [추천]

15. Now it’s time [추천]

박수석(pss1052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