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첫 믹스테이프 < About Time >으로 인디 신과 주류 알앤비의 경계에서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사브리나 클라우디오. 꾸준한 음향적 실험을 통해 허물고 쌓아 올린 세상이 충분히 넓어졌음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트랩 계열의 비트로 무게감을 준 ‘Worse than me’, 록 스타일을 차용하며 보컬보다 연주로 감정선을 끌어올린 ‘Memory foam’ 등 이전과 다른 장르적 행보가 그간의 성장을 방증한다. 그렇게 완성한 음악이 가리키는 곳에는 ‘사랑’이 있다.
보편성이라는 대중적 공감의 기제는 그의 방식이 아니다. 불안을 담은 ‘Discouraged’는 높은 템포로 긴장감을 주고, 정화의 과정을 응시하는 ‘Detoxing’에서는 보컬 딜레이로 내면의 외침을 그린다.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은 메시지가 아닌 최적의 사운드로 묘사하는 정서의 질감이다. 공간감이 느껴지는 특유의 몽환적인 음색 역시 일상의 후회를 다룬 ‘Tall tales’에서는 보다 뚜렷하다. 다만 섬세한 감각이 특정 곡에 집중되면서 하프와 스트링 등 허스키한 목소리와 어울리는 악기의 반복이 다소 무난하다.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은 본인에게로 돌아온다. 앨범과 첫 트랙의 제목인 ‘Fall in love with her’의 ‘her’은 사랑의 주체이자 객체로서 충실했던 자기 자신이며 모든 과정은 성찰, 치유, 확신으로 작용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레게톤의 드럼 패턴과 스페인어로 채운 ‘Mi luz’는 따뜻한 목소리로 트라우마를 말한다. 단순한 사운드 확장은 아니다. 라틴계 뿌리를 복기해 ‘경계인’의 정체성을 되짚으면서, 과거 논란이 되었던 인종 차별 발언에 대한 책임의 태도까지 담아낸 결과다.
사브리나 클라우디오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지 않는다. 온갖 반짝이는 사운드와 부드러운 멜로디를 사용했지만 모든 트랙이 끝난 후에는 새벽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만이 남아있다. 슬픔이나 고통, 절망 같은 부정적 정서만으로 볼 수 없다. 11곡 내내 자신만의 목소리로 색칠한 다채로운 감정이 쌓이며 끝없는 검정으로 보일 뿐이다. 정교한 표현을 붓 삼아 그의 우주는 계속 팽창한다.
-수록곡-
1. Fall in love with her
2. Need u to need me
3. Sail [추천]
4. Before it’s too late
5. Discouraged
6. One word
7. Tall tales
8. Mi luz [추천]
9. Worse than me
10. Detoxing
11. Memory foam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