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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
1987

by 지운

2001.02.01

베이스와 드럼을 제외한 모든 악기를 그의 손으로 잡아가며 완벽하게 머릿속에서 구상하던 앨범을 짧은 순간에 집약시킨 이 앨범은 세상에 발표한 그의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CD의 표지는 그림으로 바뀌었지만 그의 LP에 찍힌 첫 커버는 자신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흑백의 초상화 속에서 흐릿한 사진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 이였다.

경쾌한 분위기로 첫 포문을 여는 '우리들의 사랑'은 봄처럼 따뜻하고 생기 있게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쓸쓸함도 함께 배어 나온다. 그의 감각은 브릿지와 끝부분에 자유스런 기타 애드립의 향연에서 잘 느낄 수 있다. 그의 발라드 곡들이 가지는 스케일은 종종 클래식의 대가들과 비교되곤 하는데, 김현식이 먼저 부른 '그대 내품에'나 그의 사랑하는 애인에게 고백조로 읊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상 앨범 최고의 곡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서 보여주는 풍요로운 신디사이저 위주의 편곡은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다채로운 색의 전조를 느끼게 한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공윤으로부터 '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을 유발한 웃지 못할 해프닝을 후일담으로 선사하기도 했다.

그의 흐느적거리는 목소리는 '텅빈 오늘밤'이나 '지난날'과 같은 빠른 템포의 곡에서도 슬픔을 유발하는데 “싸늘한 눈빛으로/한마디 말도 없이/그대는 떠나가고”와 같은 가사나 지나간 날들에 대한 후회와 애정을 노래하는 '지난날'에서도 그렇다. 재즈적 감성으로 제목과도 같이 침잠된 감정으로 노래하는 '우울한 편지'의 시도나 클래식을 전공한 학도다운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소품 'minute' 등은 이 앨범의 완성도를 다각도로 입증하는 소산들이다.

그는 애석하게도 이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의 곡들은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그가 뿌린 지적(知的) 흐름의 일환은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의 꿈나무들이 대를 잇고 있다.
지운(jiun@iz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