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을 비집고 들어오던 화(火)의 멜로디가 한결 온순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화자는 이제 ‘리볼버’, ‘먹이’에서처럼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나를 분개하게 만드는 존재와 자아를 구분 짓는 선을 긋는다. 이 노래들이 품은 바늘에 찔린다면 당신은 안다영의 친구가 되긴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임의로 설계한 미덕 테스트에서 통과한다면 터널을 넘어 오렌지빛 태양을 선물 받게 될 것. 앨범이 내포한 이야기와 선율은 그리 복잡하지 않으며, 전에 비해서도 간결해졌다.
목소리와 악기의 범용성이 크다. 직접적으로 동일한 소스로 뻗어갈 수 있는 구간이 넓다는 뜻도 되지만, 한 글자씩 비틀어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떤 때는 호랑이 같고, 또 용처럼 활개치며 연주로 별을 쏟아지게 한다. 타이틀 ‘Came from the matress’는 보컬의 나른함과 코러스가 주는 강세, 매력적인 기타 리프와 베이스 연주가 모여 다층적 사운드를 정박한 하늘이 됐다. 음반에서 가장 힘을 주어 만개하는 트랙이 초반에 집중됐으나 여기서 아쉬워하긴 이르다.
밴드 사운드가 박진감을 더하는 생존 게임은 계속된다. 자아를 지키는 번데기를 다시 감싸 쥐는 ‘Echoborn’은 같은 주제를 보다 시원한 음색에 담아 안다영이 가진 사운드스케이프의 팽창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드럼과 메인 리듬의 각축, 그에 조응하는 가성, 신시사이저의 합은 본작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다. 엑셀을 계속 발 아래 둔 채 ‘하품/Survive 101’로 이어지는 구간은 앨범의 연결성을 더함과 동시에 한편의 공연 같다. 나지막한 저음부터 힘찬 고성을 넘나드는 질주의 미학이 해방감을 선사한다.
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Tunnel’에 접어드는 건 당연하다. 부드러운 연주 위로 화음이 켜켜이 쌓인 음색이 매력인 이 곡에서 안다영은 그리움을 노래한다. 터널만큼이나 울림이 있는 3막, 여기까지 왔으면 청자는 음악 안에서 비로소 그의 벗이 된다. 우정은 특정한 기념일보다 사사로울 때 행복한 추억이 밀려오는 법, 그런 면을 닮은 ‘Ya!’는 찬란한 해맑음을 머금었다. 귀를 찌르는 소리의 향연이 기쁜 우리 순간을 뛰어나게 표현한다. 수미상관을 그린 엔딩을 향해 가는 사이 무심코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계속 들여다 보게 만드는 각인의 힘을 지녔다.
어쩌면 가장 좋은 친구는 거울 속에 있었을 테다. < Antihero >, < Burning Letter > 등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던 기발매작과 다르게 진두지휘한 첫 음반 단위 작업엔 안다영의 색채가 가득 묻었다. 솔로 커리어 내내 지탱하던 얼터너티브 록을 뼈대에 두고, 팝적인 살을 붙여 밝게 빛낸 선회에서 절망에 꺾이지 않는 굳건함이 돋보인다. 농축된 감정은 짙을지 몰라도 너무나 개인적이게 마련이고, 이렇듯 한숨 돌려 진정이 된 후에야 더 맑은 목소리를 뻗는 법이다. 이로써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준비를 모두 마쳤다.
-수록곡-
1. Intro (Spell)
2. 해피 아스팔트
3. You can change nothing
4. Came from the matress [추천]
5. Echoborn [추천]
6. 하품/Survive 101 [추천]
7. Grave of light
8. Tunnel [추천]
9. Ya! [추천]
10. 오렌지 선라이즈
11. Ea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