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 건 이미 다 해봤다. 하이틴 스타로 충분히 반짝였고, 그 작은 알을 깨기 위해 기획형 나체를 걸치니 히트곡과 함께 논란도 정비례로 늘어났다. 성장과 성숙을 구분 짓지 못한 시기를 지나 블론디에 귀의하던 마일리 그는 숨을 고르더니 결국 그래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볼륨을 잔뜩 넣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왜 이 노래를 아무도 모른다는 듯이 앉아 있는 거죠?”라 묻던 무대는 단순한 자축이 아니었다. 대중음악가로서 온전히 인정받고 만끽한 해방과 성취의 순간이었다. 이제 주인공은 슬슬 다음을 바라보라는 나지막하고 깊은 속삭임을 따른다. 신보는 이 팝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의 이야기다.
전작 리뷰에서는 ‘Flowers’를 피워낸 범작을 ‘이질적, 설계, 내려놓음’ 세 단어로 적당히 치하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 Something Beautiful >은 이질적 설계가 한층 노골적이다. 진득한 의미로 시작해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고 서둘러 끝을 외친다. 고집스럽게 기대감을 주입하는 서곡 ‘Prelude’나 지금부터 바뀔 것이라 엄숙히 선언하는 ‘Interlude 1’와 같은 트랙이 당위나 일체감은 무시한 채 분위기를 잡는다. 전략적 배치의 결과가 최선은 아닐지라도 다행히 팝으로서 매력이 충분한 몇 곡이 앨범의 흡인력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도발적 편곡이 일렁이는 ‘Something beautiful’과 균열의 목소리를 제대로 활용한 ‘Easy lover’, ‘End of the world’의 매끈한 신스팝 선율은 작품의 근간을 튼튼히 지탱하는 사슬로 기능한다.
균열은 완벽히 내려놓지 못했던 마일리의 부담감에서 시작된다. 사실 더 쥐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다듬어진 음악을 모아 ‘어떤 아름다움’을 갈망했다. 그러나 중후한 콘셉트나 이미지가 ‘마일리 더 아티스트’라 엄숙히 선언하고 있는 와중에 무엇도 이를 책임지지 않았다. 핑크 플로이드를 언급하며 < The Wall >의 후광을 비추었지만 언어는 일반론적 추상과 개념에 매몰되었고, 음악만이라도 이합집산을 이루기에는 장르의 꼭짓점도 여럿이다. 레트로의 통일성을 유지한 도입부에 비해 끝으로 갈수록 흐릿해진다. 1980년대를 포기 못 한 나머지 색소폰, 뉴웨이브, 일렉트로닉은 ‘Every girl you’ve ever loved’라는 기괴한 파티에서 만나버렸고, 모두가 걸쭉한 발라드 ‘Reborn’을 감상하는 와중 그는 홀로 드레스 차림으로 디스코 리듬을 탄다. 세밀한 구성이나 사운드 등 여러 트랙의 준수한 완성도가 못내 아쉬워지는 지점이다.
게다가 프로그레시브 록에 영향받은 무거운 구성은 < Endless Summer Vacation >, 이름처럼 산뜻한 끝없는 여름휴가보다 복잡한 상념을 강요한다. 전위적이고 가녀린 예술적 도전이 마일리의 다른 매력을 비추었으니 미국의 한 음악 힙스터 매거진이 표한 것처럼 “뭐, 참여진만 보면 우리 사이트에 딱 어울리는 앨범이네요”와 같은 냉혹한 조소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아리송한 메시지만큼이나 숱한 참여진의 목적 의식 역시 뚜렷하다고 볼 수 없다. 올웨이즈(Alvvays), 레몬 트윅스, 예예예스 등 결이 다른 밴드 멤버들이 자리한 이유를 찾기에 마일리가 주문한 ‘아름다움’이 너무 광범위한 탓이다. < Plastic Hearts >를 지원한 명확한 참여진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 분명하다. 큰 꿈을 꾸었으나 결국 동상이몽이었다.
정상을 등반한 후 이미 정복한 팝을 넘어 다음 단계로 그저 멋진 음악을 택했다. 장점을 살린 탄탄한 가요 모음집 2탄이었다면 더 흡족스러웠겠지만 이번 작품에 조심스레 휘갈긴 아티스트 마크가 아직은 어색해보인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원했으나 그 상이 모호했던 것이다. 그래도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방향성은 확실하고 음악적 야욕을 표현하는 뻔뻔한 과감성에선 어딘가 통달한 모습마저 비친다. 이러나저러나 우리가 알던 마일리 사이러스다. 같은 방식에 귀여운 욕심만 더해졌을 뿐이다.
-수록곡-
1. Prelude
2. Something beautiful [추천]
3. End of the world [추천]
4. More to lose
5. Interlude 1 [추천]
6. Easy lover [추천]
7. Interlude 2
8. Golden Burning Sun
9. Walk of fame
10. Pretend you’re god
11. Every girl you’ve ever loved (Feat. Naomi Campbell)
12. Reborn
13. Give me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