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불러온 기술적 특이점은 가창의 근본적인 존재 목적을 흐리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목소리를 생성할 수 있고 노래를 기술로 매만지는 방식이 정석처럼 자리 잡은 시기,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지바노프의 정규 4집은 음색의 강점을 전면에 드러낸다. 언제나처럼 그의 창법은 수수하고 애처롭다. 작년 수민&슬롬의 산뜻한 < Miniseries 2 >의 지향점과 결이 비슷한 알앤비 팝 수작, 하룻밤의 결별을 이야기하는 < Misery >는 지바노프의 독특한 음색과 군더더기를 덜어낸 직관성이 핵심이다.
지바노프의 음악은 구분이 명확하다. < So Fed Up >의 ‘삼선동 사거리’가 대표하는 전위적 얼터너티브 알앤비, ‘진심’과 ‘Timid’ 등이 수록된 < Karma >나 < Good Thing >의 대중적인 팝 선율. 두 갈래의 음악 노선을 조율하던 중 신보는 양쪽을 적절하게 배합한 최선의 중간이다. 미니멀한 반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목소리가 캐릭터를 쭉 상기한 덕분이다. 간추림의 결과물과 준수한 멜로디의 완력이 ‘Back to you’까지 지속되며 적절히 끝을 맺는다. 열두 곡, 삼십육 분. 이 앨범 한 장의 만족감은 속도를 지향하는 이 시대와도 수더분하게 어울린다.
몸짓이 필요할 시점에 리듬을 대동하고, 풍부함을 원할 때는 악기와 효과음을 적극적으로 가져다 운용한다. 베이스와 드럼 등 리듬 세션에 집중한 ‘Thinkin’ bout u’와 건반류의 몽글한 사운드를 중심 삼은 ‘낯선 사람’, 그리고 이 두 특징을 결합한 ‘Misery’ 등 재생 내내 선택과 절제의 미학이 자유롭게 빛난다. 각 트랙은 명확한 역할을 부여받았고 목적에 적확하게 상응한다. 악기를 늘려 공간을 확장한 ‘오늘은’은 담백하게 흘러가는 작품의 허리를 채우고, 스토리를 엮고 전반과 후반의 구성적 대비를 강조하는 스킷 ‘기상예보: 너’마저도 어색하지 않다.
다소 쉽고 밋밋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그래서 지바노프의 방법론은 가장 험난한 접근이다. 취향 분화 흐름 속 대중가요는 거대 산업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겠지만, < Misery >의 조각들은 알앤비를 즐기는 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매력적인 ‘팝’이다. 게다가 제 자리를 찾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활동 영역에서 자기 존재감을 계속해서 드러낸 결실이기도 하다. 변화와 적응이 필수인 독립 아티스트에게 끈기도 곧 예술의 영역. 꾸준한 노력, 유일한 음색, 소박한 곡이 모여 좋은 음악으로 발아했다.
-수록곡-
1. Boyfriend
2. Thinkin’ bout u [추천]
3. 낯선 사람 [추천]
4. 가려진 사진
5. Misery [추천]
6. 오늘은 [추천]
7. 기상예보: 너
8. 날씨 탓
9. 딱 한번만
10. After sunset
11. Meet me at dream
12. Back to you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