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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cy That
핑크팬서리스(PinkPantheress)
2025

by 한성현

2025.05.20

2001년생 영국인. 핑크팬서리스의 신상 정보이자 곧 < Fancy That >을 요약하는 문구다. 댄스 음악인 UK 개러지와 브레이크비트, 드럼 앤 베이스를 소심한 베드룸 팝에 이식한 2021년 < To Hell With It >부터 명확했던 그의 정체성은 신보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믹스테이프라는 이름 하에 20분의 러닝타임에 취향과 욕심을 숨김없이 담아낸, 오직 2020년대를 살아가는 신세대만이 만들 수 있는 음반이다.

발굴과 조립이 창작과 대등한 지위를 지니는 2020년대, 핑크팬서리스가 주목받은 것도 같은 이치였다. < To Hell With It >에서 린킨 파크를, 첫 정규작 < Heaven Knows >에서 K팝 걸그룹 에프엑스를 인용하며 추억의 조각을 끼워 넣은 작업 방식은 이번에도 동일하다. 샘플링 목록에는 언더월드와 베이스먼트 잭스처럼 그가 뿌리를 둔 영국 전자음악 아티스트 외에도 패닉! 앳 더 디스코가 함께 있다. 깊은 스토리텔링을 양보한 대신 제목처럼 ‘저거 끌리는데’ 싶은 것은 다 가져와 기워낸 퀼트 바느질이다.

바탕이 되는 재료는 유사하나 < Fancy That >의 차이는 더 강해진 복고 지향성에 있다. 기존 그의 정서가 팬데믹 이후 멜랑콜리와 혼돈을 대표했다면 이번 음반은 ‘Tonight’의 노골적인 가사가 알리듯 2000년대 초중반의 끈적한 유혹과 쾌락을 덧씌웠다. 거친 숨소리와 댄스 펑크 기타를 삽입한 ‘Stateside’,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고혹적 현악기 운용이 깃든 ‘Romeo’는 그간의 순진한 표정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 선정적인 영국 타블로이드 헤드라인과 MTV 리얼리티 쇼가 2020년대의 음악으로 재탄생하는 광경이다.

‘Boy’s a liar pt. 2’의 후광에 잡아먹히는 일은 없었다. 핑크팬서리스는 엄청난 차트 성공의 여파를 철저히 자신에게 유리한 변신의 수단으로 삼았다. EDM 성향이 짙어진 사운드로 업템포 팝과 댄스 클럽 신의 수요를 가져가고, 믹스테이프치고는 자본을 많이 투입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Y2K 문화 재부흥의 아이콘 자리를 공고히 한다. 이제 그를 설명하는 말에 단어 하나를 덧붙여야겠다. 2001년생 ‘머리 잘 굴리는’ 영국인이라고.

-수록곡-
1. Illegal [추천]
2. Girl like me
3. Tonight [추천]
4. Stars
5. Intermission
6. Noises
7. Nice to know you
8. Stateside [추천]
9. Romeo [추천]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