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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에피(Effie)
2025

by 박승민

2025.04.10

예상 밖의 스포트라이트다. 2021년 카모와 함께한 ‘Acid fly’ 및 EP < Neon Genesis >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에피는 당시의 유행엔 충실했으나 자신만의 개성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이후 실험을 계속하던 중 올해 초 업로드한 ‘Down’ 뮤직비디오에 쏟아진 관심이 다시금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조악한 화질의 웹캠 위로 필터와 이모지를 정신없이 덧붙이는 기법, 트렌디한 비트와 뒤섞인 특유의 멜로디 메이킹은 알고리즘에 이끌린 이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댓글 창을 가득 채운 다양한 언어는 그의 감성이 보편적으로 작용한다는 증거다.


빅뱅, 투애니원과 드레인 갱을 합친 듯한 커버 아트가 곧 앨범의 방향이다.“Electric shock from head to toe”, “Boy, I'm super shy, shy”, “집에 가지 마, 마”라며 세 그룹을 아무렇지 않게 그러모은 ‘코카콜라’와 2010년대 초반 K팝 인트로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Put my hoodie on’은 모두 동일한 시간대의 정서를 공유한다. 퍼포먼스 면에서는 랩을 밀도 있게 구성하며 맥시멀리즘으로 치닫기보다는 블레이드(Bladee)의 방식처럼 힘을 뺌으로써 균형을 유지하고 명료한 흐름을 잇는다. 짧은 호흡 안에서 다채로운 감각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영리한 접근법이다. 


오프닝을 제외한 전곡을 제작한 킴제이(kimj)는 근래 투홀리스(2hollis)를 비롯한 새로운 아이콘들과 교류를 이어가며 떠오르는 팩스 갱(Fax Gang) 소속 프로듀서로, 에피를 위한 판을 짤 적임자다. 요동치는 드럼 패턴으로 힙합의 색채를 칠한 전반부와 EDM 스타일 드롭을 차용한 후반부는 각기 다른 결의 인상을 각인한다. 특히 마지막 세 트랙에서 보컬을 잘게 쪼개어 멜로디를 만드는 기법은 스크릴렉스의 ‘Summit’, ‘Where are Ü now’ 같은 히트 싱글을 연상케 한다. < E >와 동시 발매한 개인작 < Korean >에서 유사한 방법론을 가져가되 브로스텝에 비중을 더 두었다는 것이 실마리다.


이러한 까닭으로 < E >에 대해 논할 때 흔히 투홀리스가 언급되고는 하지만, 단순 비트메이커가 같다는 근거만을 들어 모든 차이를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래핑의 질감에서나, 신시사이저와 베이스를 극한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적당한 자극점을 찾는 미덕에서나 일렉트로 팝에 디지코어를 결합한 디제이 웨던(Whethan)의 작업물 혹은 킴제이가 공동 프로듀싱한 글레이브(glaive)와 에릭도아(ericdoa)의 합작 < Then I’ll Be Happy >와 맞닿았다고 보아야 하겠다. 이들 전부가 서로 수차례 협업하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연결성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한 사이클이 끝난 신에서 에피의 재주목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대안적 K팝의 이미지를 슬며시 내밀어 해외에서 인지도를 올리고 이를 국내로 끌어오는 전략부터 색다르기 때문. 상술한 프로덕션상 특징 역시 역전된 경향을 이끄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음반을 하이퍼팝이라는 단어만으로 덮어씌우는 것은 다소 폭력적인 포괄임이 틀림없다. K팝, 힙합, EDM 등의 딱지도 마찬가지다. 에피는 장르의 틀에서 벗어나 즐겨 들어온 각종 음악을 마음껏 버무려 인터넷 세대의 마음을 정확히 겨냥하는 데 성공했다. < E >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수록곡-

1. Forever (Feat. Manaka)

2. Down [추천]

3. 코카콜라 [추천]

4. Kancho

5. Maybe baby 

6. Put my hoodie on [추천]

7. Open ur eyes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