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인터뷰
이상순
이상순은 천착의 뮤지션이다. ‘천착하다’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구멍을 뚫다, 원인이나 내용을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하다. 재즈 밴드 웨이브, 록 밴드 베이비 블루를 거쳐 롤러코스터로 21세기 대한민국 밴드 신에 큰 영향을 미쳤고, 현재도 국내에 브라질 음악을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사전에 적힌 정의를 그대로 보여준다. 14년 전 EBS 라디오 < 이상순의 세계음악기행 >을 시작으로 4년 전 EP < Leesangsoon >에 담긴 음악 사이 모든 것이 그가 설파한 탐구의 과정이다.
음악을 듣는 것을 즐긴다는 그는 디제잉, 플레이리스트 제작 등으로 자신이 수집한 많은 음악을 세상에 공유한다. 그 궤적을 따라가기만 해도 귀에 넓은 방 하나를 내어주는 셈이다. 최근 진행을 맡은 <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 >는 국내 대중음악과 해외 제3세계 음악까지 폭넓은 범위를 적절하게 배합한 선곡표를 갖췄다. 오후 4시의 한 켠에서 묵묵히 재생하는 감미로운 음악과 너그러운 목소리를 들어보길. MBC 라디오 대기실에서 들어본 ‘완벽한 하루’의 일면을 공유한다.
MBC 라디오 <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 >를 진행한 지 4개월이 됐다. DJ 생활은 어떠한가.
원래부터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는지라 마냥 재밌다. 뮤지션으로 살다 보면 생각보다 식견이 넓지 않고 취향 따라만 음악을 듣게 마련인데 그걸 깨고 새로운 음악을 알아가는 게 즐겁다. 최근 그래미 어워드 중계도 맡게 됐었는데, 이런 활동들이 도치나 채플 론 등의 뮤지션이 대두되는 요즘 음악계 트렌드를 이해하게 만드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프로그램을 들어보면 열심히 임하는 자세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제대로 해야지, 대충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뭘 쉽게 시작하기 힘든 성미를 가지고 있다. DJ라고 방송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선곡이나 코너 등 프로그램 전후로 많은 회의를 거친다. 나의 재미도 챙기되 청취자분들도 재미있는 게 중요하니까. 라디오가 이전만큼 영향력이 있는 매체는 아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건 분명하다. 진행하는 동안 라디오를 애청하는 분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중이다.
최근 낮 시간대 라디오는 활기에 집중하는 반면에 이상순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한 면이 있어 상반되는 매력을 주는 것 같다.
스스로도 심야 방송에 더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해서 왜 4시 프로그램을 맡게 됐는지 의문이었다. (웃음) 처음에 시작할 때는 ‘졸리다’, ‘목소리가 안 들린다’ 등 문자 창에 불만 섞인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4개월 하니까 적응이 됐는지 편안하다는 피드백이 주를 이룬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 나긋한 면모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의 선택지로 자리한 것 같아 좋다.
긴 음악 경력을 하나씩 톺아보고자 한다. 아무래도 대중적으로는 롤러코스터로 각인됐는데, 롤러코스터라는 팀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가.
메이저 회사에서 시작했음에도 인디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을 때, 당시 흔치 않게 홈 레코딩을 하는 밴드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돌 팝이 막 태동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그 음악과 우리의 사운드는 완전히 달랐고, 받아들이기에 독립 음악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테다. 밴드의 목표는 그 팀의 고유한 사운드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한 인식이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이상순이 꼽는 롤러코스터의 좋은 음악들을 소개해줄 수 있나.
1집은 ‘내게로 와’, ‘습관’ 같은 곡들이 잘 알려져 있지만, 나는 록 키드인지라 ‘내 손을 잡아줘’라는 곡을 각별하게 여긴다. 드라이브 기타를 연주했던 셔플 리듬의 곡이고, 공연할 때도 굉장히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다. 2집의 ‘떠나가네’도 라이브 때 좋아했다. ‘Love virus’, ‘어느 하루’도 굉장히 애정하는 곡들이다.
워낙 여러 장르가 녹아 있는 팀이었지만 항간에는 애시드 재즈라 칭할 만큼 재즈 기반의 면모도 많았다.
당시 재즈 기타에 완전히 빠져 있었어서 재즈에 대한 접근을 많이 사용했다. 그때 웨이브라는 재즈 밴드를 겸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고. 기타리스트로서 나 역시 그랬지만 워낙에 다른 멤버들도 브랜드 뉴 헤비스, 자미로콰이 등의 음악가들을 많이 좋아했다. 자연스레 그런 음악이 녹아져 나온 결과물들이긴 했지만 애시드 재즈까지는 아니라 여겨서 ‘애시드 팝’이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김동률과 함께한 베란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업인가.
네덜란드 유학을 하고 있을 때 이뤄진 작업이다. 김동률과는 그 전부터 친했고, 그가 여행을 겸해서 몇 차례 왔을 때 우리 집에서 지냈다. 같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를 만들어 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좋아하는 음악도 비슷하다 보니 물 흐르듯 진행됐다. 몇 주 만에 완성한 음악들을 정리해서 방학 때 서울로 와서 녹음하고 활동했던 게 < Day Off >다.
이후 여러 가수의 음반, 영화에 참여하다가 솔로 음반도 비교적 최근에 냈다.
제목에 이름을 넣었듯, 스스로를 제일 잘 표현한 게 2021년 발표한 EP < Leesangsoon >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내도 좋아해서 수록곡인 ‘안부를 묻진 않아도’를 리메이크했다. 브라질과 남미 음악을 좋아하는데, 국내 음악에도 보사노바나 삼바 스타일은 많지만 본격적으로 그 사운드를 재현해 내는 팀은 대중적으로는 흔치 않았다. 라퍼커션이라는 팀이나 인디에서의 몇몇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을 우리나라 안에서 제대로 구현해서 알려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솔로 EP에 선우정아, 전자음악가 하임(Haihm) 등이 참여하고, 넷플릭스 < 먹보와 털보 >에 음악 감독을 맡았을 때도 실리카겔 김춘추가 조감독 역할을 했다. 함께할 뮤지션을 섭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잘하는 사람. (웃음) 물론 잘하는 뮤지션이야 너무 많지만 말이다. 김춘추 같은 경우는 내가 EBS 헬로 루키 콘테스트 심사위원을 할 때부터 실리카겔의 에너지에 반했던 상태였다. 그러다가 유튜브에 링고TV라는 악기 소개 콘텐츠에 그 친구가 자주 나와서 보다가, 기타리스트가 알기 힘든 부분의 전자음악이나 악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놀랐다. < 먹보와 털보 > 작업 의뢰가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협업자가 김춘추였기에 함께하기를 요청했었고, 덕분에 너무 흡족한 결과물이 나왔다.
그 외에도 협업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열려 있는 편인가.
물론이다. 밴드 출신이다 보니까 오히려 홀로서기 이후 혼자 음악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굉장히 많았다. 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고, 제주도에 있으니 주변에 음악가가 없어 혼자서만 고민하게 되는 부분도 있어 힘들어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꼭 온전히 나 자신을 고집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러 친구들에게 부탁도 하며 같이 만든 결과물들이 좋았어서 또 하나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서울에 올라왔으니 좀 더 본격적으로 음악적 교류를 이어가고자 한다.
다시 돌아오자면, < 놀면 뭐하니 >의 프로젝트 ‘다시 여기 바닷가’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전에는 예컨대 브라질 음악 같이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구현에 집중하거나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음악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지만 이 곡을 만들면서 내 안의 틀을 깨게 됐다. 지금까지 작곡한 것에 비해 쉽게 만들었는데, 아내와 제주도에서의 추억도 녹아 있는 곡이라 각별해졌다. 그리고 대중 매체의 영향력으로 여기저기 알려지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니 기분이 좋았다.
영상 음악부터 프로젝트 작곡, 연주 참여, 독집까지 정체성이 다채롭다. 본인이 직접 음악인으로서의 캐릭터를 정의한다면.
시선의 압박이 시도의 확장을 좁히는 경우가 음악인들에게 많은 것 같다. 나는 최대한 누군가의 호오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 임해왔다. 롤러코스터를 할 때부터 1, 2집과 달리 3집은 일렉트로닉으로 급선회를 했듯이. 제일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당시의 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고 영향받은 기타리스트가 있다면.
처음에 기타를 시작하게 만든 인물은 랜디 로즈였다. 그후로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 크리스 임펠리텔리(Chris Impellitteri) 등부터 디오(Dio) 같은 밴드에 빠져들다가 L.A. 쪽 음악으로 범위를 넓히다 보니 건스 앤 로지스, 엘에이 건스(L.A. Guns)를 선망하게 됐다. 기타 연주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고등학교 3학년 즈음인데, 에릭 클랩튼을 들으며 블루스를 알게 되고 그를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대단한 연주자지만 송라이팅 실력도 굉장하기에 많이 배웠다.
쌓아온 취향이 재능으로 발현된 것 같다.
어릴 적 기타를 시작할 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남들보다 조금 빠르고 귀도 트였다는 이유로. 헌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좀 재능 있네” 생각하는 게 독이 됐다는 생각이다. 자리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즐기고 노력하는 게 진정한 재능이지 않을까. 감이 좋거나 듣는 귀가 탁월한 건 똑같은 노력을 했을 때 살짝 역치를 올리는 요소일 뿐이다. 결국에는 진득하게 앉아서 집중하고 시간을 쏟는 게 최고의 능력이지.
아내 이효리와 결혼이 이상순의 음악에 미친 영향이 있는가.
우리 사이에 음악이 항상 기저에 있고, 혼자 음악할 땐 못 들을 법했을 많은 걸 배웠다. 아내가 힙합을 굉장히 좋아하면서도 내가 아는 옛날 노래도 다 안다. 예컨대, 기타 치는 사람 혹은 우리 세대 아니면 잘 모를 캔자스(Kansas)의 ‘Dust in the wind’라는 곡도 따라 부를 줄 안다. 그런 넓은 스펙트럼에서 많이 배우고 나도 그에게 내 취향을 덧대주기도 한다.
음악 공유가 활발해 보여 흐뭇하다.
얼마 전에 류이치 사카모토와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 브라질 음악가 모렐렌바움(Molerenbaum) 부부의 내한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아내도 그들의 음악은 잘 모르지만 같이 가고 싶다 해서 함께 다녀왔다. 솔직히 졸릴까 봐 걱정했다는데, 연주하는 모든 곡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간 너무 들려주고 매일 틀어 놓으니까. (웃음) 이렇듯 서로 좋아하는 영역을 소개해 주고 수용하는 게 참 좋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나를 음악으로 인도해 준 음반과 음악가들을 소개해 달라.
나를 음악으로 이끈 음반은 역시 오지 오스본의 < Blizzard of Ozz >다. ‘Mr. Crowley’, ‘Goodbye to romance’ 같은 곡들에 푹 빠졌었다. 그 속에서 랜디 로즈의 연주는 감탄스러웠다.
나의 음악, 기타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사람은 에릭 클랩튼, < 461 Ocean Boulevard > 앨범에서의 연주에 압도된 기억이 있다. 이 음반 외에도 그의 많은 음악을 닥치는 대로 카피했으니 나에게는 교과서 같은 인물이었다.
음악적 범위를 풍성하게 만들고 기틀을 잡아준 뮤지션은 주앙 지우베르투(João Gilberto). < João Voz e Violão >라는 앨범을 가장 좋아하고, 브라질 음악 중 필청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 이렇게나 듣기 편안한 음악을 만들기까지 거쳐온 시간을 가늠하게 만든다. 보사노바라는 장르 자체를 만든 사람으로도 알고 있다.
진행: 임진모, 염동교, 한성현, 정기엽, 신동규
정리: 정기엽
사진: 신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