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정의 시작 - 윤도현밴드표 모던 메탈 < Odyssey >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
윤도현밴드(YB)
지난 2024년 9월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메탈 앨범을 예고했던 윤도현은 비교적 빠른 시일에 약속을 이행했다. 오는 2월 26일 발매 예정인 윤도현밴드의 신작 EP < Odyssey >가 바로 그 결과물로 2월 17일 열린 작품의 기자간담회 겸 청음회에서 그간 밴드가 구사했던 사운드보다 훨씬 과격하고 광포한 헤비메탈을 체험했다. 서라운드 스피커 환경으로 공연장의 생생한 소리를 제공한 홍대 롤링홀에서 3월 1일과 2일 이틀간 “YB: 메탈로직(Metalogic)”도 열릴 예정.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가 진행한 간담회는 윤도현과 박태희, 허준과 김진원이 들려주는 트랙별 설명과 Q&A 세션, 포토타임으로 구성되었다.
“하고 싶어서 했어요” 윤도현이 밝힌 간단명료한 제작 경위다. 팬데믹과 암 투병이 겹쳐 우울한 나날을 보냈던 그에게 “메탈 뮤직 리스닝”은 유일한 낙이자 한 줄기 빛이었고 한동안 동떨어져 있던 해당 장르의 천착은 개인적 역경을 극복한 작금에 본격적 메탈 앨범 기획으로 이어졌다. 첫 곡을 집필한 지 약 2년이 흐른 만큼 꽤 긴 시간과 노력이 투영된 작품이다.
삼십 년 넘게 록 밴드로 활약한 네 사람에게도 커다란 도전이며 실험이었고 막대한 공부가 수반되었다. 재즈로 출발했던 기타리스트 허준을 비롯해 구성원들에게 그나마 익숙한 1970-80년대 고전적인 메탈이 아닌 복잡한 리듬과 왜곡된 기타를 특징으로 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하위 장르 젠트(Djent)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법을 도입했다.
윤도현의 권유로 프랑스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고지라를 분석했다는 베이시스트 박태희와 런던 출신 얼터너티브 메탈 집단 슬립 토큰과 트랩 비트의 사용으로 이색적인 색채를 갖춘 폴리피아를 참고했다는 허준의 회고처럼 멤버들에게도 도전적 행보였으며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배움은 국내 음악가로부터도 수혈했다. 독보적 개성의 헤비메탈을 들려주었던 레이니 썬의 베이시스트 최태섭이 총괄 프로듀서로서 앨범의 사운드적 방향성을 감독했고 현재 메탈 신에서 활약 중인 다수의 밴드도 영감과 자극으로 기능했다. 허준은 “후배들의 이야기로부터 영향받아 기획하게 된 음반이다”라며 겸허함을 드러냈고 윤도현도 후배 메탈 밴드를 향한 관심과 애정을 부탁했다.
김수철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작년 <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 >로 진행형 전설의 품격을 보여준 그는 한국 록 신에 있어서 윤도현밴드의 존재가 고맙다며 선후배 로커 간의 훈훈한 우정을 연출했다. 그가 작은 거인 명의로 발매한 하드록 넘버 ‘일곱색깔 무지개’의 프로그레시브 적 구성은 < Odyssey >를 비롯한 한국의 복잡다단한 메탈 트랙들의 기원과도 같다.
신보 < Odyssey >는 트로이 영웅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기록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처럼 모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메이저 밴드의 180도 변신이라는 측면에서
디스코그래피에 가장 이색적인 위치에 놓인 작품이자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해 줄 이 놀라운 변곡점은 숱한 히트곡과 화려한 경력으로 역사를 쌓아온 윤도현밴드기에 가능했지만 한편으로 음지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후배 메탈 밴드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기도 하다.
< Odyssey > 청음회 트랙별 리뷰
곡을 좀 더 모아 정규작으로 발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30분에 육박하는 러닝 타임 자체는 EP와 정규 앨범 사이에 위치했다. 멤버들은 너무 많은 메탈 곡들이 이어질 경우의 청취 피로감을 언급했고 현재 분량만으로 변화를 나타내기에 온전했다고 첨언했다. 실제로 밴드 스스로 모던 메탈 혹은 하이브리드 메탈로 명명한 < Odyssey > 속 여섯 트랙 모두 탄탄했다. “관음자”라는 독특한 명칭의 오프닝 트랙 ‘Voyeurist’는 외부의 압박과 내적 분열로 무너져가는 자아를 강력한 기타와 그로울링으로 표출했다.
대부분의 멤버가 최애로 꼽은 ‘Orchid’는 7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역경 극복의 서사와 멜로딕 스피드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고루 뒤섞인, < Odyssey >의 융합 정체성을 집약한 작품이다. 수차례 변곡점을 포함한 역동적 전개와 변박을 갖춘 이 곡에서 김진원 드럼과 박태희 베이스의 리듬 섹션이 진가를 발휘했다. 김진원은 “힘 꽤나 썼다”며 너털웃음을 지었고 박태희는 “김진원의 드럼 덕에 독창적인 베이스 라인이 나왔다”며 공을 돌렸다.
원래도 소리 잡기에 일가견이 있던 윤도현밴드지만 정교하고 힘찬 연주에 걸맞은 완성품을 위해 해당 장르에 통찰력있는 해외 엔지니어들을 초빙했다. 멤버들도 모두 만족한 믹싱은 볼비트(Volbeat)와 케이케이스 프리스트(KK’s Priest)같은 굵직한 유럽 메탈밴드들과 협업한 야콥 한센(Jacob Hansen)이, 마스터링은 그래미 3회 수상에 빛나는 랜디 미렐(Randy Mirell)이 맡았다. 현장의 기자와 평론가들도 박력을 두른 고품질 · 고밀도 사운드에 혀를 내둘렀다.
‘나는 나비’와 2009년 작 < 공존 >의 수록곡 '아직도 널'에서 파괴력을 보여줬던 박태희 작곡 윤도현 작사 콤비가 다시금 발현한 ‘Stormborn’은 한글 가사로 꽉 채운 앨범 내 유일한 곡. 역시나 기타의 헤비니스와 몰아치는 드럼을 담았지만 선명한 곡 구조와 후렴구로 기존 윤도현밴드의 작품과 닮아있다. 윤도현은 가사에 매우 만족하며 30년간의 공력을 곡에 담았다며 가사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선공개 ‘Rebellion’은 반란에서 자유로 이동하는 출애굽 서사를 담았고 1분에 이르는 도입부와 더불어 윤도현의 포효와 록 밴드 신성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콜 앤 리스폰스가 선후배간 교류와 조화라는 본작의 뿌리와 상통했다. 김진원의 트윈 페달 드럼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윤도현이 음악감독을 맡은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 최강럭비 >를 위해 작곡한 ‘End and end’는 2000년대 코어와 뉴메탈의 수용으로 윤도현밴드가 직접 명명한 모던 메탈 혹은 하이브리드 메탈의 설득력을 제고했다. 전자 음향의 첨가가 이 음반을 관류하는 편곡 포인트 중 하나임을 다시금 입증하기도 했다.
“백일몽”을 뜻하는 피날레
트랙 ‘Daydream’은 타격감 넘치는 드럼과 영어, 한글
가사의 조화, 함께 포개지며 둔중함을 배가하는 기타와 베이스가 중점이다. 또렷한 기승전결로 축제 및 각종 무대에도 잘 어울릴 법한 곡. 대학
축제와 페스티벌에서 늘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내는 윤도현밴드인만큼 < Odyssey >의
강성 메탈을 중심으로 어떤 세트 리스트가 구성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취재: 임동엽, 염동교, 신동규, 정기엽
사진: 디컴퍼니
정리: 염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