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출신의 한 흑인 소녀는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시를 썼다. 자유 주제의 시를 역동적으로 낭독하는 대회인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시작한 그는 이후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와 협업하며 노네임(Noname)이란 힙합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유색인종 담론을 중심으로 한 독서 모임을 운영하기도 하는 이 매력적인 아티스트는 의식 있는 고민에 기반한 날 선 사회 비판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풀어내는 묘한 재능을 지녔다.
노네임의 가사엔 허세가 없다. 힙합의 역사에서 공고한 사회 구조를 겨냥하는 메시지가 자신감 가득한 돈 자랑 보다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낸 건 아니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그의 시선이 신선하게 기능한다. 똑똑함을 증명하려 하지도 않고,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흑인과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교차하여 표현하는 노랫말은 칼처럼 날카롭다. 이를 담백하게 드러낸 'Black mirror'와 'Afro futurism'에선 그의 조용한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편안한 목소리와 대비되는 신랄한 태도가 눈길을 끈다. 그는 흑인음악계의 거목들을 직접 지칭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타이트한 래핑이 도드라지는 'Namesake'에선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참여한 흑인 아티스트들을 조롱한다. 이는 그가 슈퍼볼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적 면모를 읽어낸 탓이다. 비꼰 아티스트 목록의 마지막에 노네임 자신의 이름을 넣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순까지 인정한 것인지, 혹은 비판에 영리하게 반응한 것인지는 그만이 안다.
앨범의 음악적 콘셉트는 네오 소울과 힙합의 조화로 향한다. 깔끔한 어쿠스틱 앙상블 위에 안정적인 랩이 얹어진 모양새다. 비슷한 색채의 시카고 아티스트 사바(Saba)와 가스펠 터치에 능한 저드(Judd) 등 다양한 프로듀서의 역량에 힙입은 결과다. 재즈 피아니스트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를 떠올리게 하는 'Toxic'과 블랙 가스펠 아티스트 커크 프랭클린(Kirk Franklin)의 음악이 스치는 'Gospel?'에서 볼 수 있듯이 가스펠, 재즈, 소울, 힙합 등 흑인의 정서를 대변해 왔던 스타일을 하나로 꿰어낸다.
태양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처럼 노네임은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실존적 본질을 파악한다. 그에게는 사회를 향해 뱉어내는 논란 가득한 표현도, 주장하던 이상과 다른 자신의 행동도 모두 사회를 그려내는 도구다. 복잡한 사회를 복잡하게, 즉 그대로 그려내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이 재능 있는 뮤지션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은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정확하게 담아낸다는 점에서 파괴적이고, 또 그만큼 성찰적이다.
-수록곡-
1. Black mirror
2. Hold me down (Feat. Jimetta Rose, The Voices Of Creation)
3. Balloons (Feat. Jay Electronica, Eryn Allen Kane)
4. Boomboom (Feat. Ayoni)
5. Potentially the interlude
6. Namesake [추천]
7. Beauty supply
8. Toxic [추천]
9. Afro futurism
10. Gospel? (Feat. $ilkMoney, Billy Woods, STOUT) [추천]
11. Oblivion (Feat. Common, Ayon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