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Miracle
보아(BoA)
2002

by 이민희

2002.10.01

세대차이를 운운하며 '우리만의 언어 우리만의 표현들('ID: Peace B')'을 재잘재잘 늘어놓던 맹랑한 13살 소녀 보아는 3년만에 사랑의 아픔을 아는, '그대의 틀에 맞춰진 사람이 되고도 행복한('Valenti')' 숙녀가 되었다. 진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봤자(?) 열 여섯이지만 그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또래와의 놀이와 학업을 포기한 대가로 웬만한 20대 여가수의 수확과 명예를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물을 얻었다. 이제 보아는 숙녀를 초월하는 다른 이름으로 칭해야 할 것 같다.

올 상반기 'No.1'로 2002년 활동의 마침표를 찍는가 했더니 불과 몇 달만에 그 이상의 멋진 별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기적(miracle)이란다. 일본에서 여덟 차례 발표했던 싱글트랙을 모아 완성한 앨범 <Miracle>로 보아는, 벌써 국내 차트에 진입한 'Valenti'와 함께 변치 않는 라이브 실력, 현란한 춤사위로 다시 무대를 장악하며 예견된 성공의 미소를 보낸다. 발굴의 의미를 넘어 선 데뷔 전 3년간의 혹독한 트레이닝이 이제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가히 기적 같은 쾌속질주다.

한 곡에만 무게가 실리는 안일함이란 없다. 전 곡의 타이틀화! 2위를 차지했던 'Valenti'를 비롯하여 오리콘 차트를 공략한, 공신력 있는 곡들로 구성된 이 알찬 앨범은 완성도에 있어 여타 댄스그룹들의 지리멸렬한 앨범과는 명백한 분리선을 긋는다. 적어도 세 곡 이상은 울궈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국내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인정한 다국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이 완벽한 앨범에는 각 곡마다 어린 소녀의 지난 노력과 성의,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픔이 절절하게 묻어있다.

그러나 그 아픔이 정성으로 수 놓여진 땀방울이라기보다는, 그 아픔마저도 성공에 대한 절실한 욕망으로 점철된 인공의 공산(工産)품으로 보이는 것은 여전히 어쩔 수 없다. 한 가수의 소박한 애착을 담아내려는 노력은 애초에 없었다. 기계로 만들어져 기계로 움직이는 기계적인 결과다. 이는 성공의 공식을 제대로 과시하는 모범적인(?)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차차 어른이 되어 가는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어른 이상으로 뛰어 넘으려는 월반의 불안정성이랄까.

보아는 이번 앨범을 통해 대부분의 곡에 가사를 담았다.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마저 나이다운 순수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하나의 추측을 가능케 한다. 오랫동안 훈련받은 그녀의 다음 과제는 가사를 뛰어 넘어 음악의 주체로 성숙하는 게 될 것 같다. 10대의 끝에 서 있는 지금의 보아가 스무 살 문턱에 다다랐을 때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기계의 노예에서 벗어나 나이다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 순간이 기다려진다.

-수록곡-
1. 기적 (Destiny)
2. Every Heart
3. Valenti
4. Feelings Deep Inside (마음은 전해진다)
5. Share Your Heart (With Me)
6. Happiness
7. Snow White
8. Nobody But You
9. Next Step
10. Nothing's Gonna Change
11. Listen To My Heart (Bonus Track)
이민희(shamc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