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Overgrown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2013

by 이수호

2013.05.01

연관 음악이나 장르로 일렉트로니카와 덥스텝이 함께 등장하기는 하나,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음악을 이 두 단어만으로 재단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2010년에 발매되었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 < James Blake >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이 의구심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리듬 파트라는 이름으로 곡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일렉트로닉 노트들은 예상할 수 없는 박자로 듣는 사람들의 균형감을 단숨에 무너뜨렸고 팔세토(falsetto: 가성)의 수면에서 끊임없이 부침을 반복하는 보컬은 귀를 혼란스럽게 흔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는 하나 더 있다. 파편화된 리듬 위에서 은근하게 그루브를 타는 제임스 블레이크의 방식에는 R&B 소울의 자취가 담겨있다. 전작에서 특히 귀를 잡아끌었던 'Unluck'이나 'I never learnt to share'가 바로 적확한 예. 희미하나 맥이 살아있는 리듬 운영, 고음으로 향해가며 선을 끌어올리는 감정 처리는 아티스트가 받았을 영향의 위치를 충분히 제시한다. 문제는 배경에 배치된 일렉트로닉 음향이 무질서에 가까운 반면, 보컬에는 리듬감이 내재되어있다는 것이다. 상반되는 색채가 동시에 배치된 형상이랄까. 음악이 더욱 어지러워지고 정의내리기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허나 제임스 블레이크의 음악이 가진 매력의 결정체는 바로 이러한 모호함에 있다. 더 나아가, < Overgrown >으로 명명된 신보에는 한층 더 농도가 짙어진 모호함이 서려있다. 무엇보다도 리듬 파트에 대다수 집중되었던 전자 음향을 사운드 전체의 범위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변화의 결과가 보인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Overgrown'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작곡에 참여한 'Digital lion', 리드 싱글로 공개되었던 'Retrograde'를 들어보자. 데뷔 앨범에서는 자주 드러나지 않았던 뒤틀린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이번 작품에서는 분위기 전반을 지배하는 형상으로 트랙의 위로 올라 있다.

귓가에서 조성되는 공간감과 이를 가득 채운 몽환적인 기류는 앞서 언급한 음향의 구성이 자아낸 결과물이다. 앨범 전반에서도 물론 제임스 블레이크만의 공감각적 이미지가 잘 드러나 있지만, 특히나 돋보이는 지점은 우탱 클랜(Wu-Tang Clan)의 르자(RZA)가 랩을 더한 'Take a fall for me'다. 곡에 사용된 루핑 기법은 힙합 음악의 요소를 부여하나 스스로 보컬 파트와 사운드를 중첩시키며 자신의 색깔을 결코 잃지 않고 있다. 중심축에 배치된 르자의 래핑이 도리어 트랙의 분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니 이번 앨범에서 보이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시작하며 언급했던 전자음악이라 명명하면서도 쉽사리 전자음악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자리한다. 독일의 현대음악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이 제시한 전자음악의 네 표준 '통일된 시간의 조직화, 음향의 분열, 다층 공간적 작곡, 음향과 소음간의 균형 유지'에서 제임스 블레이크는 교집합만을 남긴 채 기준점과의 합일에서 교묘히 회피했다. 노래에는 분명 분열된 음향과 이를 이용한 공간감 있는 사운드스케이프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의 통일성과 음향과 소음간의 균형 유지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글쎄. 그 결과물이 어딘가 애매하다.

그 점에 있어 제임스 블레이크의 신보는 흥미롭다. 멜로디나 비트와 같은 개개의 피사체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며 각 트랙을 완성시켰다. 특유의 이미지를 펼쳐내기 위해 통상의 규칙을 와해시킨 결과라 볼 수 있다. < Overgrown >은 리듬을 캐치하는 행위를 쉽게 허락하지 않고 멜로디를 따라가 흥얼거리는 행위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아티스트가 풀어내고자 하는 세계관은, 그리고 듣는 사람들이 향하는 시선은 미시의 단위가 아닌 거시의 상(像)에 닿아 있다. 의구심을 품게 한 음악의 모호함이 오히려 최고의 무기로 활용된 셈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 Overgrown>이 아티스트와 음악 신 모두에게 있어 지표의 역할을 할 앨범이라는 사실이다. 사운드를 넓게 활용하며 작품을 풍성하게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고, 불규칙한 조각들을 유기적으로 직조했다는 완성도의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데뷔 음반 < James Blake >가 뮤지션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면 이번 작품은 가능성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보여준다. 그 대답은 팝 신을 만족시키기에 이미 충분해 보인다.

-수록곡-
1. Overgrown [추천]
2. I am sold
3. Life round here
4. Take a fall for me (Feat. RZA) [추천]
5. Retrograde [추천]
6. Dlm
7. Digital lion
8. Voyeur
9. To the last
10. Our love comes back [추천]
이수호(howard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