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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p Away
(Nell)
2012

by 김반야

2012.04.01

넬의 신보 발매 날. 오프라인 세상은 사소하지만 이례적인 조짐들이 나타났다.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넬'이라는 한 글자가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아이돌 음악으로 도배를 했던 음원차트도 (단 며칠간이지만) 밴드의 노래가 칠해져 있었다. 4년만의 '컴백'은 비록 빅뱅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흥분과 고무가 교차하는 사건이었다.

단시간에 결판나는 이 바닥의 야박한 기준에 비춰보면, 넬의 음반은 (일단 현재까지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타이틀 '그리고, 남겨진 것들'도 한 몫 거드는 듯하다. '기억을 걷는 시간', '멀어지다'와 같이 확장되며 폭발력을 가지기 보다는 무심히 중얼거리다 슬며시 끝나버린다. 이는 오랜 기대감에 공허함과 답답함마저 덧씌운다. 아마도 'Cliff Parade'의 '엇갈리고 뒤엉켰지'라는 가사가 '넬'의 연관검색어'로 따라다니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5집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멜로디의 설득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넬의 저력은 맴맴 거리는 '후렴'이나 얄팍한 감성 자극이 아니라 '멜로디'에 존재한다. 그 주요 기반이 약해지자 형식미도 함께 흔들린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가사 또한 빛을 바래 보인다. '초록 비가 내리고 파란 달이 빛나던(백색왜성),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 나가는 꿈을 꾸는(치유)' 넬 세계가 붕괴되어 가는 것이다. '짓궂은 기대로 애꿎은 원망만 늘어가(The Ending)'라는 현실성 짙은 가사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더욱이 다량의 영어 가사는 음악의 상징성과 신비로움을 퇴색시킨다.

여기서 잠시 서서 '하지만'이라는 접속부사를 꺼내든다. 전작들을 살짝 내려놓고 보면 < Slip Away >는 완성도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있다. 어찌보면 뮤지션 입장에서는 날선 의견에 억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비판은 그들의 특수한 위치에서 기인된다. 알다시피, 넬은 대중과 타협 없이 주류 무대에 설 수 있는 손에 꼽히는 '록'밴드다. 화살은 언제나 높은 과녁을 향하는 법이다.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반짝거리는 음표는 고급스럽고 찬란하게 발광(發光)한다. 특히 진보적인 걸음을 보여주는 곡은 'Beautiful Stranger'다. 록의 기본에 충실한 보컬은 김종완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흐느끼며 애원하는 대신 낮게 깔다가 치고 올라가며 소리감각을 요동치게 만든다. 'Hopeless Valentine'의 청아한 기타와 치솟는 리프도 전작들의 '장점'만을 모아 극대화시켰다. 'Standing in the rain'에서는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주는데, 리듬박수와 가스펠을 연상케 하는 합창으로 장르의 틀을 벌린다.

최근 굵직한 궤적을 남겼던 밴드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그 중에는 새로운 결심과 스타일로 완전히 변신한 그룹도 있고, 전작의 의지를 계속 이어나가는 팀도 있다. (다음 문장으로 넘기기 전에 밝혀두자면, 둘 중에서 어떤 것이 옳고 그러다를 논하는 것은 의미도, 재미도 없는 짓이다.) 넬은 그 후자다. 절대적인 '시간'의 독재 속에서도 '존재감'과 '정체성'을 꼿꼿이 쥐고 있는 이들을 확인하니, 안도감이 앞선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넬은 안주해서는 안된다. 이름 위에 올려져 있는 중압감은 이들이 달게 받아야 할 '황홀한 차별'이다.

-수록곡-
1. The Ending
2. Go
3. In Days Gone By [추천]
4. 그리고, 남겨진 것들
5. Standing In The Rain
6. Loosing Control
7. Beautiful Stranger [추천]
8. Cliff Parade [추천]
9. Hopeless Valentine [추천]
10. Slip Away
김반야(10_b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