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월, 다이아나 로스가 슈프림스(The Supremes)를 탈퇴한 후 상황은 예상외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애당초 자신의 첫 솔로 곡으로 계획되었던 'Someday we'll be together'를 슈프림스의 이름으로 당당히 1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곧바로 이어진 솔로 활동에선 부진을 면치 못한 이유에서다.
리드 보컬로 진 테렐(Jean Terrell)을 영입해 새로워진 슈프림스가 신곡 'Up the ladder to the roof'를 차트 10위에 올려놓으며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반면 다이아나의 솔로 데뷔 싱글 'Reach out and touch (Somebody's hand)'는 동시기 20위에 그쳤다. 이는 리드보컬로서 그룹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다이아나 로스에겐 성에 차지 않는 첫 성적표. 한때 백업그룹 취급을 받았던 슈프림스에게 그녀 자신이 오히려 밀리고 만 것이다.
이렇듯 잠시나마 위기설이 제기되던 그녀의 솔로 커리어를 성공으로 이끈 수훈갑이 바로 싱글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와 앨범 < Diana Ross >다. 이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을 통해 다이아나 로스는 미국의 대표 여가수로서, 또 바브라 스트라이잰드(Barbra Streisand)에 대한 흑인 음악계의 대항마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사내아이 같은 앨범표지와 달리, 음악엔 성숙한 여성미가 물씬 풍긴다. 니콜라스 애쉬포드(Nickolas Ashford)와 발레리 심슨(Valerie Simpson)이 전체 프로듀서를 맡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트랙은 역시 그녀의 클래식 송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다.
1967년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타미 테렐(Tammi Terrell)이 불러 싱글차트 19위에 오른 이 곡은 다이아나 로스가 슈프림스 시절인 1968년에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와 듀엣으로 리메이크한 바 있었다. 다시 부르기 위해선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던 점을 의식한 듯 애쉬포드와 심슨은 가사를 추가하고 곡 구성에 전면적인 수정을 가해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를 6분여에 달하는 전혀 새로운 노래로 탈바꿈시켰다.
마빈 게이와 타미 테렐 버전이 풋풋한 연인들의 청춘예찬가(靑春禮讚歌)라면 다이아나 로스 버전은 농밀한 성숙미가 깃든 원기회복가(元氣回復歌)다. 노래의 버스부분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한 것이 원곡과 차별화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칫 어색하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는 내레이션 부분을 조곤조곤 말을 건네듯 잘 살려낸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장엄한 스트링 사운드와 풍성한 백 보컬을 베개 삼아 다이아나 로스는 필로우 토크를 나누듯 듣는 이에게 은밀한 떨림을 전한다. 리메이크의 가치가 원곡과 대등해지는 순간이다.
그 밖에 앨범에는 다이아나 특유의 뇌쇄적 보컬을 한껏 살려낸 소울싱어 블링키(Blinky) 원곡의 'I wouldn't change the man he is', 훈훈한 가사와 멜로디로 인해 그녀의 콘서트에서 단골 엔딩 곡 자리를 꿰찬 'Reach out and touch (Somebody's hand)', 또 다른 리메이크 작 'You're all I need to get by'와 스케일 큰 현악사운드를 구현한 'Can't it wait until tomorrow' 등 우아한 팝 넘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특히, 2002년 발매된 확장 반에는 1969년 녹음된 곡들로 2년 뒤 바브라 스트레이잰드의 버전으로 히트한 'Stoney end'와 'Time and love' 등 프로듀서 본즈 하우(Bones Howe)와 작업한 미발표 4곡과 더불어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This things keep me loving you' 등의 미발표 버전이 담겨있어 차림새가 풍성하다.
대중 친화적이고 매끄러운 결과물을 담고 있지만, 흑인 특유의 소울 감성이 옅은 것은 약점으로 꼽힌다. 흑인으로서 백인 취향의 팝을 주로 부른 것은 디온 워윅(Dionne Warwick)과 다르지 않지만 모타운의 사장인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와 내연의 관계를 맺은 점은 치명적이었고 이 때문에 평단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다이아나 로스의 대중적 인기는 점점 높아져 갔다. 특색 없는 대중적 목소리라는 평도 있으나 그 덕에 그녀는 팝, 알앤비, 재즈, 디스코 등 수많은 장르에 안정적으로 적응해 큰 성공을 거뒀다. 슈프림스라는 둥지를 떠나 솔로가수로서 또 연기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다이아나 로스. < Diana Ross >는 그녀의 시작에 견고하고 야무진 주춧돌로 작용한 앨범이자 수많은 발표작 중 1980년 앨범 < Diana >와 더불어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수록곡-
1. Reach out and touch (Somebody's hand)
2. Now that there's you [추천]
3. You're all I need to get by [추천]
4. These things will keep me loving you
5.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추천]
6. Something on my mind
7. I wouldn't change the man he is [추천]
8. Keep an eye
9. Where there was darkness
10. Can't it wait until tomorrow [추천]
11. Dark side of the world
(Bonus Tracks)
12. Something on my mind (Live at the Grobe)
13.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Alternate mix)
14. Now that there's you (Alternate vocal version)
15. These things will keep me loving you (Alternate mix)
16. Time and love
17. Stoney end [추천]
18. The interim
19. Love's lines, angles and rhymes
트랙 1~3, 5~14 작사, 작곡, 프로듀싱: Nickolas Ashford & Valerie Simpson
트랙 4, 15 작사, 작곡, 프로듀싱: Johnny Bristol, Harvey Fuqua, Sylvia Moy
트랙 4, 15 프로듀싱: Johnny Bristol
트랙 16, 17 작사, 작곡: Laura Nyro
트랙 18 작사, 작곡: Jimmy Webb
트랙 19 작사, 작곡: Dorothea Joyce
트랙 16, 17, 18, 19 프로듀싱: Bones Ho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