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신인이 나왔다.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라는 디제이로, 영국에서 아주 반응이 좋다. 발표한 싱글 두 개('Acceptable in the 80's', 'The girls')가 연달아 차트 10위권 안에 진입했고, 일각에선 "올해는 캘빈 해리스의 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친구는 80년대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뉴 웨이브(New Wave), 디스코(Disco) 등을 자기 식의 클럽 댄스로 바꾸는데, 그 독특함이 꼭 괴짜 같아서 다른 신인들에 비해 더욱 주목이 된다. 복고 괴짜!
그는 주로 기이한 취향이나 코미디언 같은 캐릭터로 어필한다. 실제로 그는 영국의 어느 코미디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마치 벌집 같이 생긴 안경을 쓰고, 그걸 로고로 삼아 전신 의상으로까지 제작할 생각이 있으며, 수달의 체액을 뽑아 헤어스타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실험하는 내용의 뮤직 비디오를 찍는다. 도통 평범한 것들이 아니다.
그는 이런 우스꽝스런 모습들을 음악에도 적용한다. 첫 싱글 'Acceptable in the 80's'엔 초기 전자음악이 가졌던 구식의 촌스런 느낌들이 마구 난립한다. 그는 최신 장비들을 다 제쳐두고 아미가(Amiga)를 이용해서 음악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런 독특한 음색 취향에 하우스, 디스코, 뉴 웨이브를 뒤섞는다. 결과적으로 참 독특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얼핏 들으면 엠(M)의 'Pop muzik'이 생각나기도.
그래서 그의 음악은 일단 들으면 재밌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선하다. 때론 아주 자극적이기까지 해서 상큼한 과일을 아삭 깨무는 것 같은 톡 쏘는 맛이 있기도 하다. 독특한 것에 열광하는 마니아들, 평범한 팝에 넌더리가 난 청취자들이라면 아주 반길만한 음악이다. 영국 내에서 흥행을 거두는 이유도 이런 요소들 덕택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마냥 재밌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금 덜 코믹한 곡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영국 싱글 차트 4위에 오른 두 번째 싱글 'The girls'는 결코 마냥 장난기에 넘치는 곡은 아니다. 캘빈 해리스는 '디스코'란 소재를 가지고 1980년대를 캐리커처, 패러디하지만, 동시에 '전자음악'이란 소재를 가지고 일렉트로니카 특유의 포스트 휴먼적 아우라를 드리운다. 'This is the industry', 'Traffic cops'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댄스 뮤지션이지만, 한편으론 테크노 음악의 미래적 음색들을 구식 장비의 향기와 뒤섞는 마니아다.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는 앨범을 더 오래 재밌게 들을 수 있게 할 만한 멋진 구성, 좋은 멜로디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이건 꼭 “거장성을 갖추라!”는 오만한 강요가 아니라, 실제로 음반을 들으면서 생겼던 피곤함에 대한 항의다. 앨범은 특별히 발랄하게 들을 수 있는 몇 곡을 제외하고는 기대한 만큼 감탄을 안겨주지 않는다. 영국 싱글 차트 10위까지 올랐던 첫 싱글 'Acceptable in the 80's', 그리고 'Vegas'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 곡들은 “나의 지향은 이런 것이다”를 밝히는 데엔 보조할지 몰라도 개별로 떼어놓고 보았을 때는 즐길만한 무엇이 적다.
물론 여기에서 실험적 면모를 발견하고 뮤지션의 자유를 변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한 장난기와 재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아쉬운 부분이다. 신나려고 잔뜩 준비하고 있는데, 슬슬 맥이 빠지는 기분이랄까.
-수록곡-
1. Merrymaking at my place
2. Colours
3. This is the industry
4. The girls
5. Acceptable in the 80's
6. Neon rocks
7. Traffic cops
8. Vegas
9. I created disco
10. Disco heat
11. Vault character
12. Certified
13. Love souvenir
14. Electro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