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인터뷰
성시경
서글픈 목소리 너머에 자리 잡은 털털한 말과 행동에 사람들은 진심으로 감응했다. 글라스 한 잔을 곁들인 맛집 리스트와 창의적 레시피가 너른 주목을 받더니, 따뜻함을 품은 부사 ‘이윽고’가 재차 알고리즘을 타기 시작하면서 단숨에 성시경은 알고리즘의 패자가 되었다. 기세를 몰아 야간 음악 프로그램 < 더 시즌즈 >의 MC를 맡으며 다시금 전성기를 맞은 그를 이즘에서 세 번째 인터뷰로 만났다. < 처음 > 발매 당시 2011년 이후 15년만의 만남.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기 음악을 설명하는 명확한 언어와 당당한 태도는 그대로다.
2000년 첫 인터뷰가 데뷔 당시 학생에서 가수로 발돋움한 열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 두 번째 인터뷰가 가수로서 성시경의 7집 앨범 작업기를 돌아보는 음악적 토론장이었다면 이번 대담은 음악 너머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성시경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최근 일본 활동과 5월 콘서트 준비로 약간의 바쁨과 열기도 느껴졌지만 그는 모든 질문에 여유와 깊은 상념을 곁들인 채 화답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인생관, 현재 자기 위치와 역할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평가까지. 이날의 대화를 표상할 가장 적확한 단어 ‘솔직함’의 의미를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더 시즌즈 - 성시경의 고막남친 >으로 공중파 방송에 복귀했다. 진행해 보니 소감은 어떤가.
올해는 분위기를 바꿔 움직여보기로 결정했고 시기도 최적이었다. 제작진의 삼고초려가 있었고 타이밍 좋게 다이어트도 성공했으니. (웃음) 3회 정도 녹화하고 나니까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MC를 하고 싶었던 과거에는 기회가 없었지만 차라리 지금 진행을 맡아서 좋은 것 같다. 과거보다 선배들은 나를 대견스러워하고, 후배들은 어느 정도 나를 올려봐 주니 MC로서 밸런스가 좋은 상황이다. (성시경도 이제 연륜 있는 선배이자 인정받는 후배가 된 것 아닌가) 진행을 떠나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도 그렇다. 내 취향과 다른 음악이 멋지게 느껴지고 좋아하는 것 이상의 감정을 진심으로 가지게 되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며 밴드 음악에도 어느 정도 미적 감각도 생겼고 미술도 깨우치고 있다. 예술가라는 직업에 고심하는 지금 MC를 맡아 다행이다.
유튜브가 잘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상파를 선택한 것에 대한 걱정도 있을 텐데.
따지고 보면 라디오도 그렇다. 왜 굳이 상암동까지 가서 방송하고 녹음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아 물론 개인적으로 라디오는 정말 사랑스러운 매체라고 생각한다). 유튜브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방송국이라 성향이 더 맞긴 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옛날엔 놓치던 걸 깨닫게 되는데 개인 방송을 하다 보니 오히려 공중파의 힘과 편리함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공중파 방송은 수많은 스태프의 노력에 퍼포머는 숟가락만 얹는 형태로 진행되고, 분명 따라잡을 수 없는 단단한 품격과 완성도가 있다. 지금까지 모터보트로 부단히 달려왔는데 이제는 유람선을 타도 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자기 음악을 못 할까 봐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안 그래도 곧 녹음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신인인 만큼 더 열심히 음악 활동에 매진하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한국 팬들에게 큰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5월 콘서트 전에는 신곡을 내려고 하고 안되면 끝나고라도 꼭 내겠다.
최근 들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성시경 공연 수요가 늘고 있다. 유튜브 영향도 큰 것 같나.
< 먹을텐데 > 덕분인지 남자 팬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보통은 전체 관객의 20% 수준이고 그마저도 여자 관객을 따라온 분들이었다면 최근에는 남자 관객 비율이 절반을 넘은 적도 있다. 같은 남자로서 나이 들어가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국밥에 소주 마시는 모습에 털털한 친근감을 느끼는 걸까. 나는 쭉 그랬는데 그걸 몰라보다가 최근 정감이 들어 그 매력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음악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발라드 가수로서 성시경의 목표나 요즘 하고 싶은 음악이 있는지.
결국 좋은 가사와 멜로디를 찾는 인생이다. 사랑 노래가 기본이지만 여전히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 늘 언어 표현에 집중하고 그다음 멜로디, 마지막에 악기 연주를 본다. 곡도 쓰지만 나는 결국 ‘싱어’, 어떤 트렌드를 리드하는 프로듀서보다는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그 대본을 가장 잘 연기하는 보컬리스트가 되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시경은 언제든 노래를 불러주길 바란다면 좋겠다.
역시 성시경은 대중가수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본인 곡을 꼽아보자면.
최근에는 ‘너의 모든 순간’이다. 첫 소절인 ‘이윽고’가 갑자기 바이럴이 되었다. 자존심 상해서 그런 홍보는 생각한 적도 없는데 이 노래는 자연스럽게 잘되어 신기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나는 내 해석과 결정으로 모든 노래를 녹음해 왔기 때문에 모든 곡이 마음에 든다. 2집 이후로 녹음 디렉팅을 크게 받지 않고 엔지니어랑 혼자 작업한다.
보통 가수들의 작업 방식과는 다른 것 같다.
녹음실 밖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프로듀서의 요청에 따라 10번을 부르고 하나씩 이어 붙이는 그때 시스템과 맞지 않았다. 그건 프로듀서가 이용하는 악기로서 목소리지 가수가 아니다. 물론 내 음악은 지드래곤이나 BTS처럼 내 프로듀싱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목적을 둔 건 아니다. 내 목소리와 반주의 사운드가 맞게끔 조율하는 것이 성시경 노래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최근 가수들의 가창은 어떻다고 보는가) 공부해서 부르는 친구들이 많은데 근원적으로 노래는 감정의 전달이다. 우리는 대본을 연기하는 사람과 같기 때문에 첫 감정과 상상력, 그 표현이 중요하다. 연습과 음정 같은 기본은 어릴 때 완성해 놓고 프로 가수로 활동하면서는 메시지 전달에 집중해야 한다. 가끔 슬픈 노래를 웃으면서 부르거나 하는 것을 보는데 가수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가수 성시경과 인간 성시경은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하다.
인간은 극 외향형이고 가수는 내향형이다. 또 평소 성격은 이성적이지만 노래할 때는 감성적이다. 가수 성시경으로 살아온 삶이 일반의 삶보다 길어졌는데, 보통 이 각각의 자아가 하나가 되는 순간 많은 동료들이 힘들어하더라. 연예인은 필연적으로 요동치는 삶이고 이것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일상과 완전한 분리가 필요한데 그 끝없는 갈등 속에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가수는 감정 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감정을 자유자재로 통제하고 쓸 수가 있는데 어쩔 땐 감정을 쏟아내다 쓰러지지는 않을까. 인간 성시경은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고 두렵다.
‘희재’를 예로 들면 이 곡은 세상을 떠난 상대방을 향해 노래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여전히 날 살게 한 이유가 되고 곡이 끝날 때 거의 실성을 해야 마무리가 된다. 모든 걸 다 쏟아내고 나면 쓰러질 정도로 감정을 분출하는 카타르시스, 내가 생각하는 가창은 그렇다. 그런데 다행히 안전을 지향하는 성격 덕분에 나는 내가 정해둔 선 이상을 넘지는 못했다. 마치 컴프레서를 걸어 놓은 것처럼 노래하는 이유도 마지막에는 이성으로 이를 붙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효신, 전도연 등 이 선을 넘어서 본 사람들에게는 경외감이 든다.
‘너무 우는 노래’가 없는 것도 이런 균형감 있는 성격을 따라가는 건가. ‘안녕 나의 사랑’과 같은 곡은 묘하게 슬프면서도 밝다.
크게 망가지거나 극으로 치닫는 걸 조심하는 성격이다. 나는 화가 나면 목소리가 오히려 더 조용해지고 논리적으로 대응한다. 그러니까 노래할 때도 어느 정도 감정을 붙잡고 조절한다. 마이너 곡에서는 아예 끝까지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선을 지키면서 노래하고, ‘안녕 나의 사랑’과 같은 밝은 곡에서도 약간의 슬픔이 느껴지게 부른다. 따뜻하면서 슬픈 목소리 톤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한몫했지만 나는 가수로서 항상 노래할 때 이를 신경 쓰고 균형감을 유지하며 부른다.

최근 발라드가 약세라는 평가도 있는데 원인을 분석해 본다면.
기본적으로 발라드를 하나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지만 기술 발전과 정서의 변화로 답할 수는 있겠다. 이 장르의 기본 정서는 단절이다. 헤어진 후 그 사람을 볼 수 없을 때 듣는 노래가 발라드다. 그런데 지금은 보고 싶으면 언제든 SNS로 보면 되는 시대 아닌가. 노래를 들으며 그리워하기보다는 그냥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고, 더군다나 만남이 길고 깊었던 예전과 달리 이런 노래를 들을 만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 애절함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요즘 노래가 표현하는 언어와 방식과 다를 수밖에 없고 정서와 형식이 어울리지도 않는다. 지금 시대에는 후렴이 우선이고 긴 전주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후반부 변주를 기다리는 발라드는 너무 느린 음악이고 더군다나 사운드도 지친다. 그렇지만 하나 희망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변화가 워낙 빠른 편이라 한물갔다고 생각하는 음악이 언젠가 다시 뜰 수도 있다. 최근에 김광진도 다시 주목받는 것을 보니 그 조류가 어느 정도는 온 것 같다.
이런 상황 속 성시경 음악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공연으로 넓혀서 얘기한다면 내 음악을 들어주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열심히 오래 했다. 기술적인 장점 이상으로 정성이 꽤 작용하는 것 같다. 일전에 화사에게도 공연에서 ‘네가 멋있으려 하지 마라. 나를 위한 연출이 아니라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한 적도 있는데, 관객 분위기를 읽는 멘트나 현장에서의 조율 등 나는 이쪽으로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가수 생활 26년을 지탱하게 한 핵심은 무엇인지.
가정교육부터 시작이다. 무엇이든 하나 시작하면 꾸준하고 열심히 하도록 부모님이 가르쳤다. 2000년대 초반 연예계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이곳은 요즘 같이 편한 느낌은 아니었다. 배신도 많았고 상처도 받았는데 내가 정해둔 원칙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꾸준하게 이어올 수 있었다.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게 부모님이고 그렇게 컸다고 생각한다.
가수로서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옛날에도 좋아했지만 지금도 타마키 코지를 보면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시인과 촌장 하덕규 선배를 방송에서 처음 만나 뵈었는데 너무 좋았다. 이제는 사람마다 즐길 맛이 다양해서 누구 하나 정해서 그 사람만 좋아할 수가 없다.
이전 인터뷰에서 묻지 못했던 마지막 질문이다. 성시경을 음악으로 인도한 인생 음악과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두 누나가 좋아하던 음악과 앨범들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왬, 듀란듀란, 아하, 데비 깁슨, 릭 애슬리, 보이 조지 등 과거 여성 취향에 가깝다. 내가 처음으로 찾아 듣기 시작한 음악은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으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베이비 페이스와 데이비드 포스터로 이어졌고 시대에 따라 보이즈 투 멘, 테이크 식스, 브라이언 맥나이트, 에어 서플라이, 아바, 조지 마이클을 들었다. 이렇게 록 베이스보다는 코드워크와 화성이 있는 뮤지션을 좋아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이나 비치 보이스에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진행: 임진모, 손민현, 임동엽, 한성현, 신동규
정리: 손민현
사진: 신동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