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면도날 기타, 다임백 대럴ㅣ박수석의 겟 어 기타
다임백 대럴(Dimebag Darrell)
대중음악의 곁은 기타가 지켰다. 이 무한한 가능성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분신 삼아 많은 사람들이 연주 혼을 불살랐고 소수의 혁신가들이 일으킨 현의 진동은 시대의 거대한 흐름마저 뒤흔들었다. 이즘은 흘러간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빛낸 기타리스트의 전설들을 선정해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지판(指板)이라는 대지 위에 그들이 남긴 굵직한 발자국을 좇는다.

너바나가 하루아침에 가져온 천지개벽을 맞아 1980년대의 수많은 밴드가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동시에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통했다. 텍사스 출신의 비니 폴과 다임백 대럴 형제가 결성한 판테라에겐 이는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이번 주인공은 메탈에 내린 사형 선고를 온몸으로 들이받은 판테라 사운드의 축, 다임백 대럴이다.
멤버들 스스로 < Cowboys From Hell >을 사실상의 데뷔로 여기기도 하고 음원 사이트에서조차 그 이전의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이들은 1983년에 첫 정규앨범을 낸 이후 이름도 바꾼 적 없이 쭉 활동했다. 전형적인 팝 메탈을 따르며 큰 반응을 얻지 못하던 중 4집 < Power Metal >로 합류한 보컬 필립 안젤모가 변화의 계기를 가져왔다. 그로울링, 스크리밍 등의 과격한 창법부터 때로는 감성적인 멜로디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창력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당대 꽃 피우던 스래쉬 음반들을 권유하며 다른 차원의 사운드로 나아가게 할 새 맥박을 소생시킨 것이다.

신선한 피를 수혈받은 이들은 구시대의 유산인 찰랑찰랑한 헤어 스타일과 가죽옷을 버리고 같은 밴드가 맞나 싶을 정도의 변신을 이뤘다. 눅진한 머리카락 혹은 반항하듯 밀어버린 스킨헤드, 그리고 잔뜩 늘어난 민소매와 카모 팬츠로 잘 알려진 마초적 이미지도 이때 구축했다. 연주야 처음부터 인정받은 확실한 강점이었고 다임백 대럴은 그 까다로운 유아독존 데이브 머스테인에게 메가데스 합류를 제안받을 정도였으니, 기술적인 역량은 진작에 갖춘 상태였다.
1990년 발매한 < Cowboys From Hell >은 자신들의 음악에서 ‘팝’을 떼버리고 그 자리에 ‘그루브’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다. 이들은 계속 휘두르는 것보다 여백을 주며 한 번 쉬고 가격하는 게 훨씬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표곡으로 꼽히는 타이틀 ‘Cowboys from hell’을 필두로 미국 남부의 쫀쫀한 리듬과 난폭한 질주의 속도감을 완벽히 결합했고, 서정적인 아르페지오의 ‘Cemetery gates’는 난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앨범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이듬해 붕괴 직전 소련에서 열린 공연 < Monsters Of Rock >에서의 ‘Domination’ 무대는 팬이라면 꼭 챙겨야 할 필수 시청 라이브. 원곡보다 한층 느린 템포로 짓누르는 브레이크다운은 영상 너머로도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행사한다.

기본적으로 1980년대까지 풍성한 부피가 필요한 장르에서의 정석적인 기타 운용이라면 코드 위주의 리듬 부분과 멜로디를 담당하는 리드 부분으로 두 사람이 나눠 맡는 식이었다. 따라서 팀에서 홀로 기타를 멘다면 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진영의 또 다른 굵직한 세력을 일군 드림 시어터는 깔끔하고 정갈한 음색으로 빈틈없는 기타 연주를 보여준 존 페트루치의 역량에 더해 키보드와 베이스에게도 선율의 몫을 상당량 할당하며 장대하고 복잡다단한 구성을 소화했다.
한편 판테라는 순수한 파괴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터질 듯이 내리치는 비니 폴의 드럼과 근음을 받치는 렉스 브라운의 베이스가 단단히 다진 지반 위로 다임백 대럴은 묵직하게 꽂히는 핵심 테마와 쨍하게 치고 나오는 속주를 오가며 모든 음역대를 고루 이끌었다. 흔히 그의 스타일을 ‘면도날’이라고 많이 묘사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날카로운 날과 무게를 겸비해 무엇이든지 쪼개버리는 도끼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소름 끼치는 비명처럼 들리는 하모닉스와 아밍의 조합도 빼놓을 수 없는 주특기 중 하나였다.
나날이 거세지는 얼터너티브의 돌풍을 뒤로 하고 이들은 더 하드코어하고, 더 어두운 방향으로 무기를 갈고 닦았다. 제목 그대로 폭력적인 앨범 커버를 내건 < Vulgar Display Of Power >의 ‘Walk’와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 < Far Beyond Driven >의 ‘I’m broken’, ‘5 Minutes alone’ 등 한층 증량한 리프를 앞세워 주류 시장과 메탈헤드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팀 내 갈등이 심각해진 때에도 특유의 헤비니스만은 여전했다. 이 시기에 발매한 두 작품 모두 차트 4위까지 올랐고, 특히 < The Great Southern Trendkill >에 수록된 ‘Floods’는 7분에 달하는 호흡 속에서 감정적인 기승전결과 폭발력을 모두 갖춘 커리어 최고의 기타 솔로로 손꼽힌다.

밴드 해체 이후 형과 데미지플랜을 꾸린 다임백 대럴은 공연 도중 총격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재결합은 절대 없을 것이라 못 박았던 비니 폴마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뒤, 다시 뭉친 판테라는 2022년부터 지금까지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생전 절친했던 잭 와일드가 참여하며 나름의 의미를 챙겼지만 그럼에도 대체 불가능한 그의 소리가 자꾸 아른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메탈의 새로운 돌파구를 연 기타리스트. 그를 앗아간 때아닌 이별이 그저 원통할 뿐이다.
이미지 제작 : 박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