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음악] #6 소설가 김수영

김수영(소설가)

by 박승민

2026.04.13

글에는 소리가 없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선율을 붙잡아 언어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일은 언제나 고된 작업이다.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창작까지 동반된다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러던 차에 단편소설집 한 권을 접했다. 제목은 < 무성음악 >, 그러니까 소리가 없는 음악이라고? 호기심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을 덮은 뒤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그 중앙에는 단연 이 어려운 도전을 완수한 작가들을 향한 경탄이 있다. 이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차근차근 옮겨 보고자 한다. 여섯 번째 주자는 < 탱글우드 >를 쓴 김수영 작가다.


공연을 즐겨 찾는 이라면 한 번쯤 음악 페스티벌의 열기 속에서 크나큰 환희를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리가 좋은지 나쁜지, 하루 종일 뛰어노느라 행색이 얼마나 추레한지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순간. < 탱글우드 >의 우언과 탁진 역시 젊음의 한가운데에서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들으며 왈츠를 춘다. 허나 한때의 들뜸을 영원히 붙들어 둘 수 없는 노릇이니, 끝내 다가올 이별은 좋았던 나날만큼이나 아리는 상처를 남길 테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결국 현실로 돌아와 다시금 살아가야만 함을, 꽝 하고 터져 나오는 대포 소리와 문장을 통해 또렷이 깨달았다.




< 무성음악 > 전부터 일곱 작가가 깊은 관계를 이어 왔다고 들었다. 평소에도 음악을 많이 즐기는 편인가.

제일 늦게 모임에 합류했기에 음악을 함께 들은 적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릉 작가와 서울역 근처 재즈 바에 갔던 일은 생생히 기억난다. 나를 위해 특별히 연주해 주시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또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글보다 음악이 먼저였던 것 같다. 의식하지 않고 항상 틀어 두는 음악과 달리 글은 작정하고 써야 하니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평소 즐겨 듣는 것과는 별개로, 소설을 집필할 때 특히 찾게 되는 음악이 있는가?

다른 소리를 몰아내고 집중하기 위해 가사가 없는 음악을 주로 듣는다. 최근에는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을 비롯한 국내 유수의 피아니스트들을 찾고 있다. 밝고 기쁜 정서 속 조금의 슬픔이 스며든 차이코프스키의 곡에 손이 자주 간다.


대중음악이 아닌 클래식을 소재로 삼았다. 해당 곡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탁진과 차이코프스키의 생애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불행한 개인사와 성적 지향, 의문의 죽음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그렇다. ‘1812년 서곡’을 고른 까닭은 내 개인적인 감상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러시아의 프랑스군 격퇴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었기에 대포 소리가 계속 울리지만,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사랑에 실패한 후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담아낸 게 아니었을까.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같은 곡이 2번 등장한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젊은 시절 음악제에서 열정을 발산한 등장인물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서로의 속마음을 감춘다. 우언과 탁진이 서로에게 호감을 지녔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위의 ‘1812년 서곡’에 대한 해석과 이들의 관계성을 연결 짓고자 했다.


음악을 이야기의 소재가 아니라 리듬, 구조, 호흡 같은 서사적 형식으로까지 의식했는가?

초반부에서는 음악이 잔잔하게 시작하듯 조용한 감각을 의식했다. 이후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지점을 일종의 2악장, 3악장처럼 인식해 변주를 표현하려 했다. 특히 결말부를 구상할 때는 ‘1812년 서곡’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 서양 음악이 대체로 화려한 피날레로 치닫는 것과 달리 이 곡은 대포 소리로 마무리되며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그 인상이 강하게 남았기에 작품 역시 다른 방식의 마무리를 택한 것이다.


배경인 ‘탱글우드 음악제’는 실제로 존재하는 음악 페스티벌이다. 해당 축제를 직접 경험한 적 있는지.

아주 옛날이라 이제는 많이 흐릿해졌지만 그렇다. (웃음) 당시의 행복했던 감정을 소설 앞쪽에 담으려 했다. 작중에서도 티켓에 쓰여 있는 ‘환불 불가’라는 말이 좋았다. 일견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생 역시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저렴한 표를 골라 메인 홀 밖에서 연주를 들으며 싸구려 와인을 맛있게 마셨던 기억이다.


탁진의 죽음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납기 기한을 맞춰야만 하는 우언의 모습을 보며 수많은 현대인의 삶을 떠올렸다. 

세 인물의 삶을 현실 속 우리의 삶과 닮게 쓰려고 노력했다. 독자분들께서 소설을 읽으며 우언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역할은 다한 셈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굴레에서 음악이 탈출구 혹은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일정 부분 가능할 것 같다. 나 또한 요즘 글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라디오헤드의 ‘Creep’을 미친 듯이 듣는다.




글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하며 여러 고비가 많았을 것 같다. 글쓰기를 하며 제일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이 어디인가?

근본적으로 글쓰기 자체가 늘 어렵다. 매번 백지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해서 그 경험이 다음 작업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기에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한숨이 먼저 나오고는 한다. 그럼에도 나만의 시각을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다. 마냥 편한 글보다는 읽는 이로 하여금 잠시 멈춰 서 생각하게 만드는, 약간의 불편함을 남기는 문장에 더 끌린다.


201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시작으로 여러 작품을 집필해 왔다. 자신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핵심이 무엇이라고 정의하는가.

소외된 이들이나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해 있었다. 화려하게 잘 풀린 삶보다는 어딘가 어긋난 인생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느끼는 까닭이다. 그 중심에는 결국 결핍이 존재한다. 사랑일 수도 있고 물질이나 관계일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그 결핍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지닌 여러 모습을 붙잡아 드러내고자 했다.


차기작에 대해 간단히 예고해 줄 수 있는지.

현재 집필 중인 장편은 죽음을 선택하는 이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그렇다면 삶의 끝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단편과 장편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다를까?) 단편이 100m 달리기라면 장편은 마라톤에 가깝다. 단편은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몰입하는, 하나의 장면이나 단면을 포착하는 데 가까운 작업이다. 반면 장편은 인물들의 삶 전체를 다뤄야 하기에 톤을 유지하는 것부터 훨씬 어렵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물에 깊이 몰입하게 되고, 어느 순간 인물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때가 찾아온다. 그 순간이 장편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추후 음악을 주제로 다른 작품을 집필한다면 소재로 삼고 싶은 것이 있나.

늦은 시간에 재즈 바에 도착해 결국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이미 문이 닫히고 주변도 거의 정리된 상태였는데, 아쉬운 마음에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한 무명 연주자의 버스킹을 마주하게 됐다. 그가 어두운 밤길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깊이 와닿았다. 그때 한참을 앞에 서 있다가 울고 말았다. 지금은 기억이 많이 흐릿해졌지만 그 순간의 감각만큼은 또렷하게 떠오른다.


가장 존경하는, 혹은 닮고 싶은 작가를 말해 달라.

사소한 이야기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을 열심히 읽으며 그런 작품을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존경하는 작가로는 이언 매큐언을 꼽을 수 있겠다. 그의 데뷔작인 < 첫 사랑 마지막 의식 >에 수록된 단편 < 나비 >를 처음 접했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최근 발간된 < 레슨 >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국내 작가 중에서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히 잘 드러내는 오정희 작가가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아티스트,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하는 음악가가 늘어나 단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애정하는 곡들이 쌓였다. 최근에는 비틀스의 ‘Let it be’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핸드폰의 컬러링으로 설정해 둘 정도다. (웃음)  ‘그대로 두라’는 말이 이전과는 다르게 들려왔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나 감정 속에서 스스로를 견디게 하는 하나의 태도로 느껴졌다. 또 힘들 때에는 동요를 들으며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목소리로 마음을 정화한다.




진행: 임동엽, 손민현, 박승민, 박시훈
정리: 박승민
사진 및 이미지 제작: 박시훈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