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 ACADEMY | 음악 비평 첫걸음 수강생의 '내 인생의 음악'

IZM ACADEMY < 음악 비평 첫걸음 > 2026년 첫 강의에 함께 한 수강생들은 열정과 고뇌가 뒤섞인 표정으로 ‘나’의 음악을 표현할 가장 ‘나’다운 언어를 차분히 갈구했다. 자신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자마자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싱글과 앨범을 들었고, 매주 이론 교육과 과제 작성을 견뎠으며 마지막 서로의 글을 읽어보는 뜻깊은 합평 시간을 가졌다. 치열하게 전개된 강의의 종착지이자 음악과 비평 탐구의 출발선에서 이들의 글이 당당히 첫걸음을 뗀다. 각자의 삶과 음악관을 고루 녹인 ‘내 인생의 음악’을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손민현)

오케이루(Oklou) ‘Ict’
성숙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내면의 어지러운 감정들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 Choke Enough > 표지의 푸르스름한 빛은 내 20대 끝자락의 정서를 투영하듯 평온하면서도 은은한 생동감이 감돈다. 창밖을 바라보는 인물들과 어딘가를 응시하는 오케이루,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공간까지. 저채도의 색감 속에서도 묘한 ‘온기’가 느껴진다. 이 모든 요소가 자아내는 어우러짐은 내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모습과 똑 닮아 있다.
이러한 시각적 평온은 수록곡 ‘Ict’가 머금은 청각적 질감과도 일치한다. 에이 지 쿡(A. G. Cook)의 손길 아래 하이퍼 팝을 머금으면서도, 오케이루 특유의 ‘포근한’ 전자 음악이 신비로움을 극대화한다. 부드러운 신시사이저와 퍼커션이 박자를 잘게 쪼개며 내달리는 구성은 후반부로 갈수록 벅찬 감동을 자아낸다. 미세한 음들이 모여 커다란 세계를 이루듯 내 삶의 파편들도 단단한 자아를 향해 차곡차곡 쌓여간다.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를 아이스크림 트럭을 향해 달리던 어린 날의 노스탤지어, 그 벅참을 안고 나 역시 질주하고 싶다. 가장 평온한 마음으로. (김보림)

이소라 ‘Track 9’
우연히 들어 익숙해진 곡과 내가 골라 듣는 음악은 다르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찾고 나를 달래거나 다잡기 위해 그 노래를 찾는다. ‘Track 9’을 언제 처음 접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시작 지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라면 그만큼 스스로를 붙잡아야 했던 순간들이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노래를 찾게 되는 이유는 가사에 있다. 태어나 걷고 말하고 배우는, 한 인간의 성장을 담담하게 읊는 첫 소절은 나만 겪는 일 같아 서럽지만, 동시에 누구나 지나온 시간이라는 사실에 묘한 위로가 된다. 그리고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내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 속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 내"라는 대사 한 줄이 생각나는 다독임이다.
가사의 무게를 온전히 받쳐주는 건 이소라의 목소리다. 먹먹하게 눌린 발성은 감정을 터뜨리는 대신 꾹 참는 느낌을 주고, 그녀의 육성에서 터져 나오는 커다란 울림은 슬픔을 품은 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을 떠올린다. 비극 앞에서도 감정을 숨기지 않는, 그러나 흔들리지는 않는 목소리이기에 이 노래와 이렇게 잘 어울린다. 특히나 자신의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관객들의 티켓 값을 환불해줬던 가수였기에, 완벽주의 성향의 보컬이 전하는 위로가 더 크게 와닿는다. 사실 ‘Track 9’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노래가 아니다. 가사 속에서 반복되는 '나'와 '너'는 결국 같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고, 그 대상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다. 삶이 쉽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살아갈 용기를 끌어내기에,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고통의 순간마다 이 노래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위로가 된다. (김세령)

레드벨벳(Red Velvet) < The Red - The 1st Album >
인생에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돌이다. 덕분에 팬덤 문화에 눈을 떴다. 그리고 레드벨벳의 정규 1집은 주구장창 타이틀 곡만 듣던 내게 수록곡의 매력을 알려준 앨범이기도 하다. 중독적인 비트와 독특한 컨셉의 ‘Dumb dumb’도 타이틀로서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진정한 백미는 수록곡에 있다. 레드벨벳은 다양한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제일 가는 것은 연습을 통해 맞춰진 그들의 화음과 멤버 고유의 음색이다. 특별한 음악적 장치 없이도 이들은 이 장점 하나로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
‘Oh boy’는 소울풀한 알앤비 장르의 곡이기에 부르는 사람의 가창력이 중요하다. 멤버들은 그 핵심 요소를 완벽히 충족했다. 빈틈을 내어주지 않는 촘촘한 백보컬과 매끄러운 구성의 조화. 이 기세는 8번 트랙 ‘Don’t u wait no more’까지 이어진다. 비트가 간결해진만큼 보컬의 역할은 커졌다. 멤버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인 후렴구의 더블링은 심심했을 뻔한 노래를 풍부하게 채워준다. 어느덧 데뷔 12년 차다. 여전히 대중은 그들의 단체 활동 소식을 기다린다. 다시 한번 한국 가요계에 머물러줄 날을 기대할 뿐이다. (남경임)

이진아 ‘편하다는 건 뭘까’
‘인생 음악’의 탄생에는 음악의 내외적 요소 모두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가수의 사유를 글로 직접 듣고 같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진아의 ‘편하다는 건 뭘까’는 누군가의 인생 음악이 되기에 충분하다. 팝 산업에서는 음악 외적 요소의 영향력이 크고, 이진아 역시 이 흐름에서 활동하며 뮤직비디오에 소속사 식구들을 출연시키거나 SM 가수와의 콜라보를 통해 주목도를 높여왔다. 이러한 흐름의 결과로 < 진아식당 Full Course >의 타이틀곡이 그레이와 협업한 EDM ‘Run’인 것은 계산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다만 동 앨범의 두 번째 트랙 ‘편하다는 건 뭘까’는 결이 다르다. 직접 쓰인 이진아의 가사가 놀랍도록 담백하게 돋보인다. 이 곡에서는 음악적 요소를 절제해 중음역대 악기와 최소한의 퍼커션을 사용하고, 하이 신스로 반짝이는 분위기만 더해 자연스럽게 가사에 집중하게 한다. 결국 청자는 곡과 가사라는, 음악 감상의 내외적 요소 모두를 다루게 된다. 대표 곡들에 비해 전략적인 ‘음(音)‘악은 아닐지라도, 생각 많고 미숙한 자신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럼에도 언젠가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꿈을 담은 노래와 오래 함께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백지영)

티에라 왝(Tierra Whack) < Whack World >
스트리밍 사이트의 1분이 미리듣기라면, 티에라 왝의 세계에서 60초는 그 자체로 완성된 마침표다. 모든 곡을 정확히 1분으로 제한해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표현의 본질만 남겼다. 각 트랙은 파편처럼 보이지만 추가적인 확장이나 반복이 필요 없는 완결성을 지닌다. 트랩부터 알앤비까지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스타일은 각 장르의 전형적인 문법을 따르는 대신 오직 핵심적인 정서만을 숏폼에 응축해낸다. 이런 파격은 공연 무대에서 몰입의 흐름을 끊는 단편적인 토막들의 연속 같은 구조적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전곡에 대응하는 독창적인 뮤직비디오 세트는 소리에 입체적인 육체를 부여한다.
이 프로젝트는 완곡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감각이라는 예술적 해방감을 준 이정표다. 아티스트는 ADHD 기질을 결핍이 아닌 창작의 동력으로 삼아 기승전결보다 찰나에 집중함으로써 공식을 개성으로 대체한다. 영감의 크기만큼만 음악을 잘라내는 그녀의 괴짜 미학은 나의 창조적 한계를 긍정하게 만드는 명쾌한 해답이 되었다. 처음의 조각들이 이뤄낸 콜라주를 보는 순간 이미 한 작품임을 깨닫는 쾌감을 준다. ‘Zine’을 연상시키는 DIY 감성은 유기적인 흐름을 통해 변주되는 목소리들을 한 권으로 제본한다. 이 다층적 자극의 집합은 단순한 예고편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하고 작은 세계다. (육승준)

넬(Nell) < Healing Process >
아니길 바라던 간절함이 결국 현실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저 멀리 심장 고동과도 같은 드럼 소리가 울려온다. 이내 귀를 감싸는 몽환적인 오르간 선율은 어느덧 현실과 격리된 외딴 섬으로 청자를 안내한다. 끝내 이루지 못한 관계에 대한 집착, 그로 말미암은 고독과 슬픔, 나아가 자기부정의 극단에 이르기까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 표류하는 섬, 그 가운데 웅크려앉아 오롯이 이들의 음악만을 의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반복되는 트랙을 끝내 멈추지 못하던 어린 소년이 바라던 것은 희망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영글지 못한 내면을 향한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그들은 ‘치유 과정’ 이라 불렀다.
넬의 < Healing Process > 는 음악적으로 분명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 브릿팝 계열이라는 대중과 평단의 인식에서 벗어나,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다양한 레이어를 쌓아올린 사운드는 ‘소리’가 아닌 ‘공간’으로 확장되며 이후로도 변치 않을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17곡에 이르는 기나긴 치유 과정은 마음의 회복이 아닌 심연을 통과하는 여정이다. ‘섬’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소외감, ‘치유’의 그로테스크한 질감, ‘오후와의 대화’ 속 자기파괴적 정서는 ‘안녕히 계세요’에 이르러 극단으로 치닫는다. 상처입은 마음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감상 끝에 남는 것은 해소가 아니라 침잠, 비워진 뒤에 남는 감정의 잔향이다. 오래도록 이 앨범을 놓지 못했던 이유이다. 20년을 지나 단단해진 마음에도 또다시 균열을 일으킨다. (이승용)

히츠지분가쿠(羊文學) ‘そのとき(sonotoki)’
유독 방황했던 작년, 정서불안에 고생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상을 지내다가도 이유 없이 슬퍼졌고, 용기를 내다가도 곧 아무것도 해내지 못 할 것 같았다. 히츠지분가쿠의 < Don’t Laugh It Off >가 그 무렵 발매됐다. 청량하면서도 호흡이 느껴지는 보컬, 잘게 부서지는 듯한 밴드 사운드, 그 위에서 세계는 아름답다 외치는 모습에 마음을 줬던 밴드다. 이들이 희망을 말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기에, 이번에는 그 첫머리에 ‘그때’ 라는 제목의 이 곡이 놓였다. 섬세한 피아노 선율 위를 덮치는 거친 기타에 완전히 몰입했던 기억이 난다. 사운드의 대비가 당시 나를 압도하던 불안정한 감정 같았던 탓이다.
개인적인 첫인상과 달리 노래의 방향은 의지적이다. 초반의 간절한 목소리는 거센 악기 위에서 더욱 강인해진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노랫말은 ‘그 저주가 끝나기를, 슬픔마저 춤추기를’ 바라는 염원이면서도, ‘그 저주가 끝나도록, 슬픔마저 춤추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도 읽힌다. 그러니 휘몰아치듯 고조되는 사운드도 결국은 결의의 에너지로 바꿔낸다. 내게는 슬픔과 불안이 투영됐던 음악이 결심과 미래의 의미로 바뀐 셈이다. 그건 복잡다단한 감정을 의지로 바꿔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이 곡을 이정표마냥 꺼내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そのとき(sonotoki)’를 들으며, 지금까지도 나는 스스로를 딛고 나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임소언)

퍼퓸(Perfume / パフュ_ム) ‘Dream fighter’
타인이 생각하는 ‘중간이 아니라 이상에 가까운 보통’에 균열을 내고, 자신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야 할 때마다 꺼내 듣는 곡이다. 퍼퓸을 처음 접한 것은 NHK 홍백가합전 무대에서였다. 당시 개성을 지운 기계음, 립싱크인지 분간되지 않는 무심한 창법, 보라색 독버섯처럼 무리 지어 핀 채 고난도 스텝을 밟는 세 사람을 보며 나는 절대 좋아할 리 없는 그룹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부감을 단숨에 무너뜨린 것이 바로 이 곡, ‘Dream fighter’였다. 화려한 전자음 뒤에 숨겨진 지독한 성실함과 비장미를 발견한 순간, 나의 편견은 경탄으로 바뀌었다.
보코더와 오토튠을 극단적으로 활용해 개별 보컬의 정체성을 소거했지만, 이는 오히려 곡이 가진 보편적인 메시지를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1999년 히로시마 지역 아이돌로 시작해 상경 후 나카타 야스타카를 만나 ‘폴리리듬’으로 만개하기까지, 그들의 고난 서사가 이 곡의 가사와 맞물리며 퍼퓸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다. 혹자는 '2000년대 후반 클래지콰이의 원더걸스 버전’이라며 이들의 세련된 음악성과 폭넓은 대중성에 갈채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룹들이 자취를 감춘 2026년 현재까지도 퍼퓸은 건재하다.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확신이 남는다. 남들이 정해 놓은 ‘보통’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최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