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 링스 크리스탈 최 인터뷰
피비 링스(Phoebe Rings)
거리도 멀고 음악도 아직은 낯선 뉴질랜드로부터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지닌 밴드가 찾아왔다. 한국 태생 멤버인 최수정(활동명 ‘크리스탈 최’)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4인조 피비 링스(Phoebe Rings)는 오클랜드의 따사로운 풍광을 닮은 음악으로 차근차근 뉴질랜드 밖에서도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고향 흑석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리드 보컬 크리스탈 최는 음악처럼 화사한 표정과 함께 내한 일정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4월 4일 서울 예스24 원더로크홀과 5일 부산에서 두 차례에 걸쳐 첫 단독 공연을 앞둔 피비 링스의 이야기를 이즘이 들어봤다.

뉴질랜드 밴드를 이끌고 있지만 본인은 한국계이고 한국말도 전혀 서툰 느낌이 없다. 자라온 과정을 조금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한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인 2000년까지 살다가 이민을 갔다. 맞벌이 부모님을 둬서 대신 일곱 살 터울의 오빠와 시간을 주로 보냈는데, 오빠가 말수가 많은 편이라 한국어를 잊어버릴 일이 없었다. (웃음) 한국을 방문할 일은 가족 행사 정도가 전부였지만 말은 영어가 편해도 글은 여전히 한글이 더 익숙하다. 책도 한국 책을 읽는다.
음악, 그리고 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작곡이 좋아서 음대 재즈과에 진학했으나 재즈 피아니스트의 길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션과 외주 작업으로 방향을 돌리다가 프린세스 첼시, 조너선 브리와 함께 2018년 투어를 돌게 되었고, 마지막 일정으로 홍대 내한 공연을 마치고 나니 내 음악을 만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에 협업 상대로 점찍어둔 뮤지션들에게 데모를 건네면서 밴드가 시작되었다. 드러머 알렉스는 나처럼 재즈과 출신이고 베이시스트 벤과 기타리스트 시미언은 팝 전공인데 건물이 같아서 익숙한 얼굴이었다. 뉴질랜드가 워낙 좁아서 음악가들은 서로를 모를 수가 없다.
팀 이름인 ‘피비 링스’의 뜻도 궁금하다.
토성 여러 고리 중 맨 끝에 있는 것을 위성 포에베의 이름을 따서 ‘포에베 고리’라고 한다. 거기서 착안한 작명이다. 천문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없지만 막연히 우주적 이미지를 떠올렸다. 요즘 밴드 굿즈를 만들고 있는데 캐치프레이즈로 ‘There’s no Phoebe in Phoebe Rings(피비 링스에는 피비라는 사람 없다)’를 밀고 있다. (웃음)
스스로 피비 링스의 음악을 ‘Sleepy disco(졸린 디스코)’로 소개하고 있다.
한 관객이 SNS에 올린 리뷰에서 본 문장으로 표현이 인상 깊어서 사용하고 있다. 첫 셀프 타이틀 EP까지는 내가 전곡을 작곡했고 정규 앨범 < Aseurai >부터는 멤버들이 각자 곡을 만든 후에 함께 다듬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넷 중에서는 내가 이런 몽환적인 느낌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처음에 알렉스는 내 취향이 ‘빈티지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보사노바’라 하기도 했다.

< Aseurai >는 제목도 한국어 ‘아스라이’에서 따왔고, 동명의 첫 트랙은 아예 한국어 가사로만 채우기도 했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가?
평소 멜로디를 먼저 짜고 가사를 마지막에 붙이는 편인데 ‘아스라이’는 한국어가 더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사용했다. (언어별로 작사의 차이점이 있는지) 한국어로 쓰면 더 진지해야 할 것 같다. 노래마다 다르긴 하나 영어가 대체로 일인칭이라면 한국어로 쓰면 이인칭, 삼인칭처럼 거리를 두게 된다. 영어 작사가 어려울 때는 멤버들, 특히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대부분은 본인이 리드 보컬을 맡았지만 남성 보컬이 이끄는 곡도 있다.
‘Get up’과 ‘Static’은 벤의 목소리가 들어갔고, ‘Drifting’은 시미언과 듀엣으로 가다가 나중에 멤버 넷이 함께 부르는 트랙이다. 다 각자가 데모를 가져왔으며 ‘Get up’의 경우는 내가 벤의 목소리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아서 보컬을 시켰다. 가창 자체는 열어두고 있지만 멤버들은 본인의 목소리가 들어가면 개인 프로젝트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해 나에게 보컬을 대부분 맡기는 중이다.
부드러운 음악 성향에는 뉴질랜드 환경이 녹아있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들의 템포가 확실히 한국에 비하면 느긋한 편이고, 자연 친화적인 성격이 있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뉴질랜드 음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율만 봐서는 그런지 느낌의 거친 팀이 더 많기도 하다.
얘기가 나왔으니 독자들에게 뉴질랜드 아티스트를 추천해줄 수 있는가.
우리의 선배라고도 할 수 있는 소프트 록 밴드 베스(The Beths). 작년에 우리가 미국 투어 오프닝을 맡아서 함께 공연에 서기도 했고 < Aseurai > 앨범 녹음 당시 정말 감사하게도 이들 덕분에 스튜디오를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국의 지미 키멜 쇼에도 출연해 라이브 연주를 보여주는 등 주목받고 있는 팀이다.
최근에는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커버하기도 했다.
레이블에서 미국 투어 기간 동안 공백기가 너무 길어지지 않게 싱글을 내자고 제안해서 커버하게 되었다. 오빠가 신승훈과 김동률 등 1990년대 발라드 가수를 좋아했고 나는 그 갈래에서 자연스럽게 윤상 음악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평소 ‘기억’이라는 소재를 좋아하다 보니 비슷하게 어린 시절 추억을 노래하는 이 노래를 고르게 되었다.
많이 들었던 한국 뮤지션 음악은 무엇이 있는가?
당시에는 오빠의 영향인지 이승환과 이소라도 좋아했고, 양희은과 이병우가 함께 제작한 < 양희은 1991 > 앨범도 정말 많이 들었다. 최근 가요는 잘 모르지만 웹툰을 보다가 작품에 삽입된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에 뒤늦게 빠지기도 했다.

작년에 아시안 팝 페스티벌을 통해 처음 내한하기도 했고, 미국에서도 공연을 해봤다. 국가별로 관객 분위기는 어땠는지 묻고 싶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한 손에 맥주를 들고 굉장히 차분하게 관람한다. 태연한 성격 때문인지 밴드를 마주쳐도 별로 아는 척 안 하는 쿨한 사람들이다. (웃음)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역시 호응이 격렬한 한국 관객이 참 좋다. 그냥 가볍게 코멘트를 해도 반응이 좋고, 대부분 무대를 한 번 보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게 고맙다.
가까이 있는 일본은 정반대로 정말 공연에 집중하고 경청하는 식이다. 그러나 현장의 과묵함과는 달리 트위터에 열정적으로 후기를 남기고 동영상도 잘 찍는다. 미국은 또 정말 외향적이다. 굿즈를 팔고 있으면 관객들이 큰 목소리로 무대 엄청 좋았다고 칭찬해 주고 가는데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가끔 힘들 때도 있다. (웃음)
이번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일단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세트리스트에 넣었다. 올해 마무리를 목표로 작업하고 있는 두 번째 정규 앨범의 곡도 기회가 된다면 미리 들려드릴 계획이다.
마지막은 이즘 인터뷰의 공식 질문이다. 피비 링스의 크리스탈 최를 음악의 길로 인도한 노래, 앨범, 혹은 아티스트를 꼽아달라.
첫 번째 터닝 포인트는 어릴 때 들었던 보사노바 음악이다. ‘Corcovado (Quiet nights of quiet stars)’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그 신선한 충격이 내 취향을 일깨웠다. 두 번째 이정표는 밴드 스테레오랩이다. 갓 재즈과를 졸업했을 때 그들의 음악을 듣고 인디에서 이런 음악을 하는 팀도 있구나 하면서 한창 푹 빠졌다. 뿅뿅 대는 신시사이저와 재즈 코드 진행, 현란하게 오가는 보컬 멜로디의 조합이 참 좋다.
진행: 한성현, 박승민, 박시훈
사진: 박시훈
정리: 한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