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음악] #3 소설가 오선호
오선호
글에는 소리가 없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선율을 붙잡아 언어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일은 언제나 고된 작업이다.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창작까지 동반된다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러던 차에 단편소설집 한 권을 접했다. 제목은 < 무성음악 >, 그러니까 소리가 없는 음악이라고? 호기심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을 덮은 뒤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그 중앙에는 단연 이 어려운 도전을 완수한 작가들을 향한 경탄이 있다. 이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차근차근 옮겨 보고자 한다. 세 번째 주자는 < 진통제 >를 쓴 오선호 작가다.
"총알보다 빠르고 폭탄보다 시끄러운··· 진통제?" - 작중 메탈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는 승선에게 상현은 이렇게 답한다. 이 설명을 마주한 승선은 자신이 주다스 프리스트를 듣는 동안 문주에 대한 상념에서 벗어나 있었음을 실감한다. 소설 밖 우리의 삶도 과연 그렇다. 장르와 곡은 다를지언정, 소란스러운 세상을 등지고 이어폰을 귀에 꽂음으로써 고통에서 해방되었던 경험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문학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 때 마스토돈의 'Pain with an anchor'를 재생하고 < 진통제 >를 찬찬히 읽기를 권한다.

< 무성음악 > 전부터 일곱 작가가 깊은 관계를 이어 왔다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줄 수 있나.
소설 작법 수업에서 만난 인연이다. 당시 이릉 작가가 주도한 음악 감상 모임과 안덕희 작가의 독서 모임 모두에 속해 있었는데, 두 그룹 간의 교류가 깊어지다 결국 하나로 합쳐졌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비롯한 음악 축제를 주기적으로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등단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그냥 아이 엄마였다. (웃음) 잠깐 잡지 에디터 일을 했었기에 문장을 쓸 줄 알았고,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망이 생겨났다. 또 전업주부로 집안일을 주로 하며 돈을 벌지 않는 상황에 놓이자 이 세상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인가를 새삼스럽게 의식하게 되었다. 아이들도 잘 키우며 문제없이 살고 있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깊은 곳에 존재했던 열등감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글의 형태로 표출했다는 느낌이다. (신춘문예 당선 당시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가?) “당선됐다고 해서 읽어 보긴 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웃음)
글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작업이 까다롭지는 않았는가.
음악을 문학적 영감의 자극제 정도로 사용했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평소 청취 생활에서 떠올린 단상들을 조금씩 모아 완성했다는 인상이다. 출간까지의 과정 역시 안덕희 작가의 마요네즈 출판사에서 모두가 함께했기에 큰 고비는 없었다.
< 진통제 > 속 승선과 상현의 대화에서는 ‘메탈 헤드’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으며, 신춘문예 당선작 < 버드워칭 >에서도 가상의 밴드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이런 대목들을 보며 작가의 취향이 궁금해졌다.
나의 취향과 음악 듣는 방식을 많이 반영했다. 마스토돈은 작품을 구상할 당시 기분에 따라 헤비메탈 플레이리스트를 찾다가 발견한 팀이다. < 버드워칭 > 역시 2000년대 초 동네 영어 학원에 다닐 때 고향에서 밴드를 했었다는 캐나다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착안했다. 또 이상하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자꾸 음악을 하더라. 옛날부터 여러 악기를 배우려 번번이 노력했지만 남들보다 진도가 많이 느려 포기하고는 했어서, 마음속의 동경이 무의식 중에 투영된 걸지도 모르겠다. (웃음)
소재가 된 마스토돈 ‘Pain with an anchor’의 가사처럼 상실과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든 견디며 살아가는 인물의 내면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고 느꼈다. 곡에서 특히 강하게 공명했던 정서가 있다면 무엇이었나.
극복의 정서다. 다른 곡들 사이에서 ‘Pain with an anchor’의 제목을 발견했을 때 정말 멋지다는 생각에 단숨에 꽂혀 ‘진통제’라는 단어와도 이으며 소설을 써 나갔다. 과거 < 폴더명_울새 >에 실었던 단편 역시 이승열의 ‘시간의 끝’에서 시작된 것이다.
‘I've turned the grief to medicine / Into my mouth will enter’같은 노랫말과 소설의 내용이 절묘하게 연결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주로 소리 자체에 집중하곤 하는 메탈에서 가사를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있다면.
본래 가사에 더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김사월과 김수영 같은 포크 가수들도 자주 찾는데,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에 차 있었던 나의 젊음을 떠올린다. 지금의 나에겐 없는 감성이라 더욱 그렇다. 반대로 대학생 시절 좋아했던 쥬얼(Jewel)의 곡은 이젠 도저히 못 듣겠더라. (웃음)
< 진통제 >라는 제목이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직접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주제 의식과 결말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감각이 무엇인가.
주인공 문주를 통해 현재의 생활, 내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과 상관없는 일상생활에서의 균열을 나타내고 싶었다.

스스로 오선호라는 소설가의 성향을 규정한다면.
사람으로서 다정한 것은 중요하지만 소설까지 다정할 필요는 없다. 요즈음 소설을 그냥 일이라고 생각해 예술이라 말하기를 주저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나는 감히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면 소설의 예술적 미학을 구현해냈다고 생각하는 작가를 말해줄 수 있나.
참 어려운 질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재미있어서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작가로는 필립 로스, 존 쿳시, 존 파울즈, 이언 매큐언 등이 먼저 떠오른다. 모두 영어를 쓰는 백인 남성 작가들이라 그런지 닮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말이다. 감탄하며 읽어서 필사까지 해본 작가는 톨스토이다. 또 나보코프도 각별히 아껴 그의 소설을 매년 펼치곤 한다. 한국문학에서는 은희경, 권여선의 단편소설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문학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다른 예술가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
모든 음악가에게 경이로움을 느낀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철학 과목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데, 담당하는 학생들이 모두 음악 전공이다. 실기 시험 관리 교사로 들어가 그들을 지켜보노라면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악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에 일종의 존경심까지 들었다. 특히 현악기 연주에 힘이 실릴 때 새어 나오는 거친 숨소리에서 음원엔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
< 나희 > 이후 2년만의 작품이다. 현재 구상 중인 신작이 있는가?
띄엄띄엄 발표했던 단편들을 합친 소설집 하나가 올해 나온다. 내년 발간을 목표로 장편 역시 쓰는 중이다. 문주가 주인공이고 기타리스트 역시 등장하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아티스트,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미래에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옛날, 아이가 유치원에 등원하면 매일 자전거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도서관으로 가 소설을 읽었다. 그때 MP3 플레이어에 통째로 넣고 다니던 앨범이 아웃사이더의 < Maestro >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 고질적 신파 >, 레이첼 야마가타의 < Happenstance >다. 2년 가까이 계속되었던 당시의 일상이 세 장의 음반 안에 담겨 있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박승민, 박수석, 박시훈
정리: 박승민
사진 및 이미지 제작: 박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