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음악] #2 소설가 도수영

도수영

by 박승민

2026.03.16

글에는 소리가 없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선율을 붙잡아 언어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일은 언제나 고된 작업이다.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창작까지 동반된다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러던 차에 단편소설집 한 권을 접했다. 제목은 < 무성음악 >, 그러니까 소리가 없는 음악이라고? 호기심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을 덮은 뒤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그 중앙에는 단연 이 어려운 도전을 완수한 작가들을 향한 경탄이 있다. 이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차근차근 옮겨 보고자 한다. 두 번째 주자는 < 겨울 바다에 다녀오다 >를 쓴 도수영 작가다.


우연히 재생한 곡이 분위기를 완전히 누그러뜨리는 순간이 있다. 꽁꽁 숨겨 두었던 서로의 취향을 통해 진심을 확인하는 찰나. < 겨울 바다에 다녀오다 >는 바로 그런 감정을 다룬다. 두 주인공이 현실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바다로 떠나는 차 안에서 돌연 울려 퍼진 백예린의 ‘Rest’는 이후의 여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비록 음악과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이지만 도수영 작가의 단편에 빠져들었던 때 역시 비슷했다. 이야기에 스며든 따뜻함만큼이나 화기애애했던 대화의 현장을 공유한다.




먼저 < 무성음악 >으로 뭉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 청취를 즐기는 편이었는가.
< 무성음악 >에 참여한 일곱 작가 모두 ‘인디소회’라는 소모임에서 만남을 시작했다. 이릉 작가가 주도해 만들었는데, 결국 모두 등단하게 되어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다. 함께 감상한 공연 중에서는 2016년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코린 베일리 래가 기억에 남는다. 본래 약간 아는 정도였지만 무대를 보고 완전히 반했다.

< 무성음악 > 작업 과정을 작년 출간한 장편 < 작고 귀엽고 통제 가능한 것 >과 비교한다면 어떤가?
주제를 정할 때부터 작가끼리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나눴다. 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연스레 애정과 관심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단편을 모아 놓고 보니 각자의 색깔이 많이 다르더라.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우리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우리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서로의 방식을 존중했다.
 
글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하며 여러 고비가 많았을 것 같다.
취향이 굉장히 잡다한 편이다. (웃음) 문체가 멋진 소설가를 찾아 읽는 것처럼 가수도 음색이 좋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다. 깊이 파고들지 않아 그런가 음악 소설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부끄러웠고, 백예린의 곡을 소재로 삼아도 될까 하는 마음에 고민이 많았다. (다른 후보도 있었는가?) 앨런 워커의 전자음에서 착안한 이야기도 있고, 쏜애플의 ‘게와 수돗물’을 들으며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물씬 느끼기도 했다.
 
< 겨울 바다에 다녀오다 >에서는 음악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기보다는 두 인물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짧은 가사로 스쳐 지나간다. 곡을 이야기의 중심 장치로 사용하기보다 이러한 방식으로 배치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등장인물은 모두 정체되고 매여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어떻게든 바다로 보내는 게 큰 목적이었다. 결국 바다로 이동하는 장면에서도 남은 어색하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깨는 게 음악의 역할이다. 작품에서 ‘Rest’를 트는 순간 감정이 풍부해지며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이 생기기 시작하기에 해당 대목에서 꼭 노래를 같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Rest’를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처음 들었을 때 목소리의 진동이 참 크다고 생각했다. 또 가사가 완벽한 ‘집순이’와 ‘집돌이’의 이야기 아닌가. 묵묵히 일하는 남자 주인공을 위해 준비한 선택이다.
 
작가 노트를 통해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된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 들었던 음악이 궁금하다.
오래전 강원도 인제 산골에서 교사로 근무했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직 찾아오지 않은 듯한, 시간의 흐름이 다른 인상에 굉장히 놀랐다. 그곳에서 매번 차를 타고 학교와 군청을 오가며 겪은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또 관사 수리 때문에 근처 학교 건물에서 대신 살던 시기가 있었는데 출퇴근마다 당시 히트한 데이브레이크의 ‘들었다 놨다’를 틀어 두곤 했다.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자동으로 그때가 떠오른다.

책을 덮은 후 독자들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이 있는가?
지금 어딘가에 얽매여 계신다면 꿈틀거리듯 움직여 벗어나셨으면 좋겠다.



추후 비슷한 작업을 한다면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아티스트의 의도와 서사를 더 깊이 고민해 긴밀히 연결되는 소설을 쓰고 싶다. 밀란 쿤데라처럼 교향곡과 소나타의 형식을 빌려오는, 챕터 별로 음악의 구조를 적용한 경장편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상황을 음악에 맡겨버린 순간이 있었는지.
어릴 적 접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Sound of silence’를 즐겨 들었다. 가사를 잘 몰랐지만 제목이 주는 울림이 컸기에 침묵에도 분명 어떤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이후 교사로 처음 부임해 초등학교 3학년을 맡은 후 점심시간 식당이 너무 시끄러워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 앉아 멍하니 밥을 먹고 있으면 그 소란 속에서 자꾸 이 노래가 떠올랐다. 너무 시끄러운 상황을 오히려 ‘사일런스’처럼 간주하고 싶었던, 조금은 반어적인 감정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가사가 사실은 침묵을 긍정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웃음) 여전히 사랑하는 곡이다.

평소 즐겨 듣는 것과는 별개로 소설을 집필할 때 특히 찾게 되는 음악이 있는가?
가사가 있으면 오히려 방해되어서 연주곡이나 외국 곡을 주로 듣는다. 글이 잘 나오지 않고 막혀 있을 때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의 음악을 찾는 편이다. 특히 ‘Misread’는 스위치가 켜지는 듯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 글쓰기를 시작하며 트는 게 일종의 루틴이 되었다.

가장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작가를 꼽는다면 누구일까.
이언 맥큐언의 모든 작품을 좋아한다. 경쾌한 재미가 있으면서도 시대성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작가다. 70세를 넘긴 나이에도 굉장히 왕성히 활동하며 현대 사회의 쟁점도 예리하게 짚어내는 데다 일단 내용이 재미있다. 국내에서는 한강 작가님의 독보적인 문장이 떠오른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굉장히 시적인 동시에 특유의 감성을 너무나 정확하게 옮기는 문체에 감탄한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아티스트,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잔나비와 그들의 가사를 애정한다. 특히 < 전설 > 앨범 전체와 수록곡 중 ‘꿈과 책과 힘과 벽’을 꼽을 수 있겠다. ‘텅 빈 마음 노랠 불러봤자 누군가에겐 소음일 테니’라는 노랫말을 보며 소설가인 내게도 글이 비슷한 존재라는 생각에 완전히 관통당했다. 장기하와 우효, 새소년처럼 우리말을 잘 사용하는 가수들 역시 사랑한다.

술에 취하면 니나 시몬과 쳇 베이커를 자주 찾는다. 중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남아공 출신 친구 덕에 알게 되었는데, 집에 초대받아 칵테일을 함께 마실 때 그가 정말 멋진 목소리로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을 불렀던 순간이 기억난다. 



진행: 박승민, 박시훈
정리: 박승민
사진: 박시훈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