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음악] #1 소설가 이릉

이릉

by 박승민

2026.03.09

글에는 소리가 없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선율을 붙잡아 언어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일은 언제나 고된 작업이다.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창작까지 동반된다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러던 차에 단편소설집 한 권을 접했다. 제목은 < 무성음악 >, 그러니까 소리가 없는 음악이라고? 호기심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을 덮은 뒤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그 중앙에는 단연 이 어려운 도전을 완수한 작가들을 향한 경탄이 있다. 이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차근차근 옮겨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주자는 < 이릉의 악인(樂人) 열전 1: 째즈마스터 조풍각 >을 쓴 이릉 작가다.


이릉 작가는 스포츠 기자 출신이다. 숫자로 둘러싸인 세계를 정확히 기록해야 하는 저널리즘에서 발을 옮긴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소설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데뷔 장편 < 쇼는 없다 >는 그 시절 프로레슬링의 향수를 불러오고, < 이릉의 악인(樂人) 열전 1: 째즈마스터 조풍각 >은 음악과 쾌락에 파묻혀 살아간 한 인간의 일생을 그린다. 작품을 읽는 내내 그가 창조한 인물이 실재하는 듯한 환상에 빠졌다. 두 영역의 완전한 융합! 이야기와 대화를 차례로 따라간다면 독자 역시 같은 감각을 마주할 것이다.



먼저 < 무성음악 >으로 뭉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 청취를 즐기는 편이었는가.

7명 모두 소설 습작생 시절 만나 10년 넘게 함께 꿈을 키운 사이다. 그런데 모임마다 쓰라는 소설은 안 쓰고 홍대에서 라이브 클럽 데이를 보러 다녔다. 오히려 글보다 인디 신과 밴드 이야기를 더 많이 했을 정도니까. (웃음) 그러다 각자 등단하며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 무성음악 >으로 뭉쳤다.


글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하며 여러 고비가 많았을 것 같다.

불완전 혹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의 특성을 반대로 글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내 의도와는 다른 무언가를 상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차이나 긴장감, 진폭에서 마법이 생겨나는 것 같다.


< 이릉의 악인(樂人) 열전 1: 째즈마스터 조풍각 >은 한 인물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의 역사를 세세히 훑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기자 생활도 문체에 영향을 주었을까?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이를 정보화해 다른 것들과 연결하는 감각이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의 화법과 다르게 내용을 직접 전달해야 하는 기사문에 익숙했던 만큼 힘든 지점도 많았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차라리 기사체를 주로 쓰자는 결정을 내렸다.


음악을 소설의 소재가 아니라 리듬, 구조, 호흡 같은 서사적 형식으로까지 의식했는가?

작품의 초중반은 기사체지만 결말부에 가서는 소설가 이릉이라는 등장인물이 나타나며 급격히 문체가 바뀐다. 음악으로 치면 일종의 트랜지션이다. ‘Stairway to heaven’, ‘November rain’, ‘Let it be’처럼 잔잔하게 시작해 막판에 휘몰아치는 명곡들의 구조를 차용하려 시도했다.


주인공 조풍각은 작중 직접 언급되는 로버트 존슨뿐만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음악가들을 연상케 하는 다층적인 모습을 가졌다. 한 인물을 구상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오래 전 초고를 썼을 때에는 소설보다 평전을 더 많이 읽었다.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결국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를 다시 느꼈다. 다만 변화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고 각자의 시작점은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계절을 예로 들면 모두가 순환을 겪게 되지만 누군가는 봄부터 순탄히 시작하고 누군가는 수확기인 가을부터 시작하는 식이다. 조풍각의 인생에도 그러한 흐름을 반영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모티브로 둔 실존 인물이 있을까.

국내 가수로는 전인권, 조덕배 씨가 먼저 떠오른다. 해외에서는 쳇 베이커를 비롯한 재즈 아티스트들의 삶을 빌려왔고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여러 전기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들을 한데 결합하면 전혀 다른 방향의 결과물이 튀어나오는 화학 작용을 노렸다. (추후 비슷한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제목의 ‘1’은 재미로 붙였지만 추후 후속편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논픽션이나 르포르타주에 대한 관심이 커져 음악가의 평전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은 뒤, 독자들이 조풍각의 일대기를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가.

독자 분이 SNS에 남겨 주신 글 중 ‘실제 나는 라이브로 14분가량 조풍각의 신기루 같은 재즈 공연을 들었다는 기록을 여기에 남긴다’라는 문장이 정말 감사했다. 이 책을 접하신 분들도 다 함께 조풍각의 전설적인 공연을 보았다는 감각을 느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장편 < 쇼는 없다 >도 꼭 찾아봐 주시라. (웃음)




스스로 생각하는 소설 작법의 핵심이란 무엇인가?

다른 예술처럼 ‘낯설게 하기’와 ‘불편하게 하기’가 필요하다. 글 전체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중간에 낯설거나 불편한 지점이 존재해야 여운을 남길 수 있다. 너무 큰 동요보다는 피식 웃거나 약간의 짠한 감정을 느끼며, 나중에 다시 책을 펴 들게 하는 정도의 여운이 맺혔으면 좋겠다.


가장 존경했거나 닮고 싶었던 소설가를 꼽는다면 누구일까.

오르한 파묵의 < 순수 박물관 >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세세한 소재에 대한 묘사가 정말 충격적이었다. < 이릉의 악인(樂人) 열전 1: 째즈마스터 조풍각 >에서 마지막에 글쓴이가 직접 나타나는 구성 역시 < 순수 박물관 >에서 힌트를 얻은 전개다. (국내 작가 중 떠오르는 이는?) 수림문학상의 심사위원장이시기도 했던 성석제 선생님이나 이기호, 김희선 작가 같은 ‘이야기꾼’들을 좋아한다.


평소 즐겨 듣는 것과는 별개로 소설을 집필할 때 특히 찾게 되는 음악이 있는가?

초고를 쓸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모든 초고는 끔찍하다’라는 말처럼 나의 볼품없는 글을 계속 이어 나가는 과정이 너무 괴로워 오롯이 원고에 집중해야만 한다. 반면 구상과 퇴고 단계에서는 쓰는 소설의 스타일에 따라 다른 음악을 찾는다. 장편은 일관성이 필요한 만큼 호흡이 긴 클래식을, 단편은 빠르고 경쾌한 곡조를 주로 즐긴다. 요즘은 샬롯 드 비테(Charlotte de Witte)와 유스케 유키마츠(¥ØU$UK€ ¥UK1MAT$U) 같은 DJ의 에너지 넘치는 셋에 빠져 있다.


최근에도 공연을 자주 감상했는지.

작년에만 펜타포트와 부산 록 페스티벌부터 건스 앤 로지스, 콜드플레이, 오아시스 같은 팀의 내한과 일본의 사카이 블루스 페스티벌 등을 다녀왔다. 그러나 이런 경험과 소설을 특별히 연결 짓지는 않는다. 그런 강박이 오히려 번아웃을 일으킬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무용하거나 비효율적인 것을 좋아해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갈 예정이다.


차기작에 대해 예고해 줄 수 있나.

< 사상계 > 3월호에 단편 < 빙글 >이 실릴 예정이다. 새 중장편으로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패턴을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에 고민 중이다. 이즘 독자분들께서도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웃음)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아티스트,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펄 잼의 오랜 팬이다. 젊은 시절 데뷔작부터 CD로 소장했을 정도로, 라이벌이었던 너바나보다도 좋아했다. 불꽃을 활활 태우고 가 버린 다른 밴드들과 달리 꾸준함의 대명사로 남았다는 점이 정말 멋지다. 반골 정신을 잃지 않은 채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고, 35년간 한 분야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며 저런 각오와 태도로 중장년을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국내 음악 중에서는 1987년 처음으로 산 앨범인 < 이문세 4집 >이 떠오른다. 이문세뿐만 아니라 유재하, 이영훈, 박주연 작사가 같은 분들이 내겐 국어 선생님과도 같았다. 그토록 뛰어난 음악가들을 모실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박승민, 박시훈
정리: 박승민
사진 및 이미지 제작: 박시훈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