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곡 ‘그렇게, 나도 모르게’를 듣자마자 아팠다. 쓰라리고 슬펐다. 당신의 아픔을 헤아려 주리라는 여느 책임 없는 위로와 달랐다. 저마다의 상처를 짓누르며 부단히 살아가는 일상을 노래할 뿐, 그 안의 문장은 직관의 매력 속 선 굵은 시와 같았다. 10년 전, 이즘은 흔적만 남아있던 마포의 행화탕에서 권나무를 만났다. 2집을 발매한 직후였다. 그사이 그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이번 네 번째 앨범까지 두 장의 음반이 더 나왔고, 다양한 공연을 이어갔으며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하면서도 발령에 따라 거취를 옮겨야 했다. 무엇보다 가정을 꾸려 새로운 환경과 감정 안에서 쉼 없이 걸었다.
2년, 3년 주기로 작품을 선보여왔던 그가 신보를 발매하기까지 이전에 비해 배수를 뛰어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을 이제 이해한다. 그는 묵혀둔 열정과 무대에 오르고 노래할 때 벅차오르는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 삶의 향기 >는 그만큼 농축된 갈망과 메시지가 겹겹이 쌓인 소리 위에 한데 뭉쳐 갈수록 잃어가는 우리 사회의 온기를 채운다. 작년 한 해, 인디 록 밴드 열풍의 저편에서 포크 신을 달궜던 권나무. 십수 년 전, ‘포크 신의 신성’으로 불렸던 그가 어느덧 베테랑 면모를 장착한 ‘큰 나무’로 비치기까지 그간의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전한다.

2016년 2집을 발매하고 이즘과 인터뷰를 가진 적 있다. 당시 공연에 대해 “한창 배우고 있다”,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꼬박 10년 전 생각인데, 이제는 꽤 노련해졌겠다. 언제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또 해야 하는 무언가에 집중하려 한다. 그리고 감정을 어떻게 더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노련해졌다고 자평하기는 머쓱하지만, 아무래도 계속 해 왔지 않나. 그간 수많은 공연으로 심화 반복해 왔으니 익숙해져서 수월한 부분도 물론 있으나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공연인 것 같다.
스스로 무대 체질인 것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관객 앞에만 서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면 이 정도면 그래도 잘 받아들이는 거 아닌가 싶었다. 즐길 줄 안다고까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기회로든 무대에 오르는 일이 좋았고, 어디에서건 크게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10년 넘게 활동하면 더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무거워질 때가 많더라. 아무도 나에게 압박을 주지 않았는데, 혼자서 앓고 있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고, 특히 이번 신보를 내면서 나름대로 편안해지는 시기를 만난 것 같다.
이번 4집 < 삶의 향기 >와 3집 사이 6년의 공백이 있다. 보통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사실 이번 작품도 내기 어려울 뻔 했다. 꼭 전작과의 거리가 아니어도 2집을 발매한 때로부터도 지금이 꼬박 10년을 지나고 있는데,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느꼈다. 사회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더구나 그사이 가정도 꾸리게 되었다. 나 역시도 시대의 파도에 떠밀리듯 일상을 보낼 때가 많았던 점이 크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전까지 발매한 세 장의 앨범이 관념적으로 나에게 주는 중압감도 있었다. 3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 같은 것이다. 정반합이랄지, 아침 점심 저녁이랄지. 3집을 준비하며 나 스스로 그려둔 생각의 틀이기도 했지만, 음악가로서의 한 시기를 크게 한 바퀴 돈 것 같았다. 20대 때는 어린 생각일지 모르는 나의 젊은 단편을 세상에 어떻게든 정리해서 던져 보아야지 싶었다. 그렇게 세 장의 앨범을 냈고, 이제 그 시기는 지났다. 세상에 던지기는커녕 여전히 스스로 답도 못 찾았다. 작업도 공연도 꾸준히 해왔을 뿐이다. 그 사이 정말 많은 곡을 썼으나 앨범으로 묶어내기 어려웠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던 중 한 곡이 탁 튀어 오르면서 작품 단위로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확신을 준 그 음악이 궁금하다.
곡마다 머리 위에 고리가 걸려 있는 상상을 종종 한다. 하나하나 알록달록하게 떠다닌다. 그런데 앨범으로 묶기 위해선 이게 하나로 꿰어져야 한다. 어떤 결정적 실마리가 있으면 그것에 맞춰 연결하겠는데, 그게 없어 골머리를 앓았다. 그때 ‘청춘’이라는 곡을 만들게 되면서 “됐구나. 이제 할 수 있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4집을 듣고 놀란 건 가사의 다양성이었다. 앞서 언급한 환경의 변화가 주효했겠으나 이전까지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글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자신을 위한, 혹은 자녀를 위한 구체적 문장이 빛난다. 노랫말을 쓰면서 스스로 많이 달라졌다고 느낄 때도 있었을 것 같다.
의식한 건 아니지만 부정할 순 없다. 많은 게 달라졌고, 자연스레 나의 문법도 변했을 것이다. 물론 바뀌고 싶은 구석도 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 같지는 않으니까. 그때를 부정하려는 것도, 당시의 생각들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권나무의 언어가 지금의 나 자신에 조금은 더 가깝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더 다양한 보컬 색을 구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2집에 수록된 ‘너를 찾아서’나 ‘아무것도 몰랐군’ 같은 곡이 사실은 나에게 익숙한 형식의 음악이다. 그러나 내 안에는 그런 곡을 부르는 나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런 말도 하고 싶고, 저런 말도 하고 싶다. 그걸 매끄럽게 표현하는 동시에 스스로 해소하려면 조금은 더 다채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첫 트랙 ‘그렇게, 나도 모르게’의 솔직한 가사가 이 음반을 끝까지 듣게 했다고 생각한다. 동감하나.
열세 곡을 줄 세웠을 때 선두 타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게, 나도 모르게’였다. 그래야 뒤에 길이 열린다고 느꼈다. 알아봐 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일상적 가사들이 좀 드러나는 곡이라 생각하는데, 권나무 음악에서 가령 ‘부동산’ 같은 단어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해왔던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집을 갖는 다는 건 아직 내겐 먼 풍경을 그리며 걷는 산책 같아”라고 말했겠지만, 이젠 “부동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복권을 살 수밖에 없었어”가 한편으론 오히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영감 혹은 참고가 된 게 있다면.
당연히 영향은 받았을 테지만, 잠재적이지 직접적이진 않다. 의식하지 못하는 영향이 분명 있을 테다. 다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작업 당시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의 프론트맨 마크 코젤렉의 음악을 참 많이 들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굉장히 다채롭게 활용하는데, 모름지기 자연스레 표현되지 않았겠나 싶다. 꼭 이 예시가 아니어도 누군지 모를 많은 창작자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과거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한동안 매너리즘 식의 부침이 생겨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한 적 있다. 또 약 80% 정도 회복된 것 같다며 이제 활력이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어떤가.
매번 찾아와주셨던 관객분께 죄송해서 말하기 어려웠던 이야기지만, 언젠가 연속적으로 공연이 불만족스러웠던 긴 시간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무대를 쉬지 않았고, 관객분들은 늘 좋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마 언급하신 인터뷰가 그 터널을 통과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시기나 그때의 나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기보다는 그런 시기들을 모두 껴안은 채 지금에 도착해있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걸을 뿐이다. 그 사이 더 많은 경험들도 쌓이고, 배우고 느낀 것들도 많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 덕분에 조금은 더 밝아졌고 나름대로 믿음도 생겼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든 비슷한 어둠이 찾아 오더라도 또 잘 통과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서 이번 < 삶의 향기 >를 내기까지의 어려움을 짚어줬다. 3이라는 수가 주는 중압감에 대해 말했는데, 숫자 5가 가진 의미도 상당하지 않나. 다음 앨범은 얼마나 걸릴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직감적으로는 4집과 전작 사이의 기간보단 짧을 것 같다.
앞서 말한 관념 체계를 빌려 말해보겠다. 1이 점이라면, 2는 점과 점을 이은 선이자 1의 점에 대응하는 ‘반’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3은 그에 점 하나를 더해 비로소 삼각형으로서의 면이 되며 정-반에 이은 ‘합’의 의미를 갖는다. 나아가 4에 대해 생각할 때 어려웠던 건 또 하나의 점을 어디에 어떻게 찍느냐는 것이었다. 참 애매하고 불안한 수라고 느껴졌다. 단지 3 근처에 평면적으로 점 하나를 더하여 사각형의 모양이 되는 것도 원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막연한 고민들을 마음에 품고 시간을 보내다 문득 4번째 점은 공간 속에, 정사면체의 꼭짓점에 두어야 겠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평면에서 입체로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네 장의 앨범이 만들어 내는 공간 속 어딘가에 음악가로서 권나무가 지향해왔고 지향하고 있는 음악이 놓여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공간 속에 나름의 음악적 시도들과 새로운 변화들을 채워나가고 싶었다.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점, 즉 5집에 관한 생각도 쉽지만은 않겠다.
5는 어떤 의미와 표상을 갖게 될까 생각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세 번째에서 네 번째로 넘어가는 도약은 나에게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낼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 여겼다. 5집은 더 힘든 과정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피라미드가 될 수도 있고, 다른 형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명확해지는 순간이 오지 않았다. 해왔던 것처럼 때를 기다릴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관념 체계 자체가 일종의 도그마가 되는 것은 아닐까 경계도 조금 해본다.
주말에는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 평일에는 작업과 학교 일을 병행한다는 게 체력적 부담으로 다가올 텐데.
힘들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려 하지 않았던 건 결국 내가 선택한 삶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다. 한편으론 곡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의 가사처럼 조금씩 잃어왔던 것들에 대해서도 늘 생각했다. 체력도, 낭만도, 젊은 날의 열정도 말이다. 그런데 과연 잃어버리기만 했겠냐는 것이다. 유연한 태도, 귀중한 사람, 조금은 더 성숙한 생각 등 얻은 부분도 적지 않다.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갈 때에도 분명 지치겠지만, 덕분에 이렇게 즐겁고 의미있는 자리를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얻는 만큼 내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힘들어도 훌훌 털어버리려 한다.
< 삶의 향기 >에서 가장 애정이 큰 곡을 하나 고른다면.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누구 하나 뽑기 어렵다. ‘청춘’이 이 앨범을 낼 수 있었던 열쇠가 되었다 한들 다른 곡보다 내 마음속 비중이 특히 더 크진 않다. 각자 자기 자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 교실의 스물여섯 명 친구들이 다 자기 자리가 있듯이. 그래서 타이틀곡을 정할 때 어려웠다. 그렇게 몇 곡을 정한 순간 대중은 그 곡들만 들여다 보지 않을까 미리 걱정도 조금 했다. 나에게는 각 종목의 국가대표를 모았는데, 여기서 일이등 가리는 일과 같다.
그렇다면 권나무를 모르는 대중에게 직접 권해주고픈 음악은 어떤가.
지난 앨범이지만 정규 3집의 ‘LOVE IN CAMPUS’를 고르고 싶다. 당시 내가 말하고자 했던 날카로움과 거침도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선율의 힘도 있고, 그러면서도 애틋함도, 어떤 결연함도, 심지어 다소 지루함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꼭 완벽해서가 아니라 좋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면이 함께 있기에 그것이 오히려 나답고, 우리 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들려줘도 괜찮을 음악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은 공식 질문이다. 지금의 권나무를 만든 인생 음악을 알려달라.
멀리 있는 위대한 음악가들의 음악들을 떠올리기보다는 늘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든 적 있다. 좋은 음악이란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거구나 하는 확신을 안겨준 형이 있었다. 당시 나는 창작을 하리란 생각도 안 했던 시기였다. 형이 직접 만들고 불러주었던 몇 곡이 나를 바꿨다. 작은 손동작, 떨리는 목소리, 진지한 태도, 그날과 그 순간들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많이 멀어져 왔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 느끼고 배웠던 창작자로서의 태도와 진실한 노래의 힘 같은 것들은 언제까지나 마음속 변치 않는 기준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진행: 신동규, 정하림, 장대휘
정리: 신동규
사진: 정하림, 장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