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연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다, 2026년 조용필&위대한탄생 전국투어 콘서트
조용필
생경한 활기가 느껴졌다. 부모님의 문화생활 지원을 위해 곳곳에 배치된 자녀들과 그들의 아이까지 3대가 포괄적으로 분포된 올림픽공원, < 2025-26년 조용필&위대한탄생 전국투어 콘서트 >가 열렸다. 먼저 무엇보다 신경 쓴 건 관객이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곡 리스트와 구성은 물론이고 깨끗한 음향과 공간이 기억에 남은 첫 이미지다. 입장할 때부터 진행은 원활했고 어르신 대상 안내와 완급 조절도 친절했다. 시야와 미감을 고려한 무대 배치 역시 빼놓지 않은 그는 음악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공연'에도 그만큼 진심이었다.
25곡으로 가득 채운 2시간 30분은 그의 열정과 헌신으로 요약되었다. 그 정도 시간을 무대에서 노래로만 채우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나 우리가 마주한 이는 언제나 이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역사적 인물. 영속의 멜로디가 현장에 울려 퍼지고 익숙한 소절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금세 과거로 회귀했다. 이곳에서 오빠와 형님을 연발하는 관객들은 모두 세월이 데려간 그 소녀로, 엄마를 부르짖는 소년으로 돌아갔다. 각자가 각자의 조용필을 만났던, 가슴 울리는 현장의 음성을 돌아본다.

광복 80주년 기념 공연도 너끈히 소화한 조용필은 우리 현대사가 지닌 문화적 칭호이자, 동시에 열성적 음반 발매와 공연으로 늘 현재와 교감하는 아티스트다. 수많은 이들이 숨죽이며 이 전설의 등장을 기다렸다. ‘물망초’와 ‘자존심’ 등 신시사이저와 여러 세션을 충분히 활용한 오프닝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무대 장치가 화염을 분출하고 주인공은 붉은색 기타를 직접 타현하며 이 열기에 직접 불을 지피니 빽빽한 관객석에서는 팝콘 튀듯 한두 명씩 기립하기 시작했다. 강렬한 매혹에 휩쓸린 이들은 빛나는 응원봉이나 머리띠를 흔들며 무아의 지경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거대한 역사와 키 높이를 맞춘 그가 둔 공연의 초수는 대담하게도 본인의 현재다. 히트곡이 많을수록 곡의 구성과 배치가 더 어려운 법. 초반부를 무대의 기획 의도와 목차를 적확하게 설파하기 위해 할애했다. 곡을 따라 부르며 옛 시절을 반추하는 것이 오늘의 전부가 아니고,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하는 조용필의 공연임을 당당히 말한 것이다. 멤버 소개나 솔로 파트에서 카메라 줌인도 관객에게 참여자의 역할을 각인하지만 그 정체성을 초장부터 묵직하게 말하는 음악부터 압도적이었다.

이어서는 히트곡 난사다. ‘비련’, ‘단발머리’, ‘고추잠자리’ 연타석부터 이미 객석은 싱어롱 축제였지만 조용필이 공식적으로 선언한 따라 부르기 구간은 ‘허공’부터였다. 어쿠스틱 기타와 깨끗한 피아노 선율 위로 멜로디가 가진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초반부 록 이미지가 쉽게 흩어지고 반세기 전 한국 정서, 지금 기성세대보다 더 윗세대의 마음을 울리는 비정한 선율과 서글픈 제창이 경기장에 안개처럼 퍼졌다. ‘그 겨울의 찻집’처럼 과거와 동행한 곡을 부르며 모두가 완급과 감정을 조율했다.
유난히 몇 곡의 감상이 특별하게 남는다. 최근 세상을 떠난 고 안성기 배우의 발인이 마침 공연 당일, 떠나간 벗에게 바치듯 그는 ‘친구여’를 열창했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다는 구절에서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는 프로답게 공연을 이어갔다. 곧이어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울림이 전해진다. 선율로 우리 가슴을 무장 해제하는 이 곡은 확실히 어른들의 소유물이다. 각자가 성장하던 시기에, 그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늘 조용필의 음악이 있었을 것이다. 힘겨운 20세기를 살아낸 개개인 삶의 기억에 그의 노래가 수없이 새겨졌고, 이곳에 온 관객들은 입 맞춰 노래하며 그 흔적을 어루만졌다.

상기된 좌중을 가라앉히며 그는 반전을 꾀했다. 관객보다는 아티스트와 공연의 교감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 하이라이트는 반주와 가사가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찬 ‘고독한 Runner’가 맡았다.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늘 멋진 음악과 아름다운 멜로디에 정진한 마라톤 같은 삶, 환희와 고독을 포효한 조용필 표 아레나 록. 다른 거대한 유행가보다는 인지도가 소박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을 농밀하게 집약한 자작곡이다. 수천 명의 박수를 직접 확인한 직후에 그는 가장 진중한 곡을 택했고, 본인을 위해 이 곡을 불렀다.
결국 이 콘서트의 핵심은 ‘조용필과 밴드’다. 오프닝부터 하이라이트, 후반부까지 그는 프론트 맨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기존 곡을 신선하게 편곡해 무대에 올렸고, 무대용 의상을 입은 ‘못찾겠다 꾀꼬리’와 ‘단발머리’ 등은 화려하게 빛났다. 연주가 배제되지 않았고 피킹 하나, 타건 하나에도 장인의 지향이 묻어났기에 가능했다. 다섯 손가락, 봄여름가을겨울, 벗님들, 사랑과 평화, 부활, 송골매 등 위대한 탄생 멤버 모두 우리 음악사의 굵직한 획을 그은 주인공이다. 덕분에 원곡이 주는 감동과 무게감은 유지하면서 악기의 개성이 잘 표출되었고, 그 어느 라이브와 비교해도 무엇보다 음향이 조화롭고 깔끔했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이번 공연을 관람한 명분에는 효도의 지분이 컸지만 사적으로는 우리 가요 전설이 내뱉은 명제의 당위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후반부 담담한 내레이션 속 세대를 연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조용필의 현재가 눈앞에 펼쳐졌고, 외로운 표범의 당당한 선언에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왕의 테제는 아직 유효하다. 월드컵 4강 진출조차 모두를 뭉치기 어려운 지금 사회에서 이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가 되었다. 취향, 성별, 세대 등 갖가지 분열 요소가 마치 세상에 없는 듯 10대부터 80대까지 ‘꿈’, ‘Bounce’, ‘모나리자’를 따라 부르며 하나가 되었다.
음악적으로는 조용필의 모든 모습을 포괄한 현장이었다. 그는 활동 내내 수많은 히트곡으로 국민 삶을 감싼 인기가수였다. 그의 노래가 단순히 유행가의 지위에 그치지 않고, 시공간의 단절을 넘어 영속의 생명력을 지닌 이유다. 나아가 혹독한 정진을 꾀하는 예술가, 선명하고 객관적으로 창작물을 바라볼 수 있는 프로듀서, 팝과 록을 필두로 프로그레시브와 싸이키델릭까지 조용필의 너른 이름 안에 포용한 실험가였다. 그 치열한 노력과 헌신을 직접 목격하고, 잠시나마 가늠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감사하게도 그 찬란한 광경을 가족과 함께했다. 평생 음악과 동행하고 시대에 맞선 진정한 대중가수의 공연, 즐기고 배울 것이 넘쳐났다.
사진: YP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