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1986년은 제네시스(Genesis)의 세상이었다 | 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제네시스(Genesis)

by 소승근

2026.01.03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제네시스는 ‘버티는 자가 이긴다’는 그 짜증나고 진부한 관용적 어구를 몸소 입증한 독종 같은 팀이다. 1967년 영국에서 결성된 제네시스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단단해졌고 마침내 그룹 결성 19년 만인 1986년에 전 세계의 인기차트를 장악했다. 또 그해는 그룹 제네시스 외에도 직계, 방계 뮤지션들도 거대한 성공을 거두면서 자신들의 창세기를 다시 새롭게 작성했다. 2026년을 맞이해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6년에 그들은 과연 무슨 활동을 했고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 알아보자.



필 콜린스


제네시스의 원년 리더 피터 가브리엘은 1970년대 중반에 그룹을 떠나 솔로활동을 시작했고 그 후임으로 팀의 두 번째 드러머인 필 콜린스가 마이크를 쥐었다. 유럽의 미신과 일본의 가부키 연극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피터 가브리엘 시절의 제네시스는 망하기 좋은 비상업적인 대곡들이었지만 흑인음악 특히 모타운 노래들을 좋아했던 필 콜린스는 제네시스를 대중적인 팀으로 변화시켰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발표한 < ... And Then There Were Three... >, < Duke >, < Abacab >, < Genesis > 같은 음반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도출하면서 필 콜린스의 지위는 한층 강화됐다. 


이때 자신감을 얻은 필 콜린스는 1981년부터 독립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의 드럼 사운드를 정의한 ‘In the air tonight’, 슈프림스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You can’t hurry love’, 영화 주제가 ‘Against all odds’, 어스 윈드 & 파이어의 드러머 필립 베일리와 듀엣으로 부른 ‘Easy lover’, 마릴린 마틴과의 듀엣으로 부른 영화 < 백야 >의 삽입곡 ‘Separate lives’ 그리고 1985년에 공개한 솔로 3집 < No Jacket Required >의 세계적인 히트로 필 콜린스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백인 싱어 송라이터로 부상했다. 그의 세 번째 음반에서는 두 곡의 빌보드 넘버원(‘Sussudio’, ‘One more night’)과 두 곡의 탑 텐 싱글(‘Take me home, ’Don’t lose my number’)이 1985년과 1986년에 걸쳐 긴 호흡으로 인기를 누렸다. 


마이크 앤 더 메카닉스


제네시스의 베이시스트인 마이크 루더포드는 마이크 & 더 매카닉스를 결성해서 1985년 10월에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이 명반에는 진중하고 심오한 ‘Silent running’과 밝은 곡 ‘All I need is a miracle’이 빌보드 탑 텐에 진입해 세계인들과 상견례를 가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Silent running’이 금지곡으로 묶이는 바람에 ‘All I need is a miracle’이 상대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허나 이 음반의 보석은 포근하고 여유로운 ‘Taken in’과 고즈넉하고 쓸쓸한 ‘Par avion’이다. 1989년에는 ‘The living years’로 마침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고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라디오의 붙박이 신청곡이 됐다. 명곡 ‘Silent running’과 ‘The living years’의 소울풀한 보컬은 1970년대에 에이스라는 밴드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던 영국의 블루 아이드 소울 싱어 폴 캐릭이다. 


피터 가브리엘


원년 리더였던 피터 가브리엘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1986년 5월에 통산 다섯 번째 앨범 < So >를 공개해 전에 없는 성공과 호사를 누렸다.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오른 싱글 ‘Sledgehammer’를 시작으로 세네갈 가수 유쑨두가 참여해 월드뮤직을 끌어들인 감동적인 노래 ‘In your eyes’, 펑키(funky)한 ‘Big time’, 당시 파업 중이었던 광부들에게 바치는 케이트 부시와의 듀엣 곡 ‘Don’t give up’이 대중음악의 품격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전에는 ‘Solsbury hill’, ‘Biko’, ‘Shock the monkey’처럼 전문가 집단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노래들을 발표했지만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침내 그는 < So >를 통해 ‘전미 차트 넘버원을 보유한 인기가수’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 



제네시스


허나 방점은 제네시스가 찍었다. 1986년 6월에 공개한 13번째 음반 < Invisible Touch >에서는 무려 5곡이 빌보드 싱글차트 5위권 안에 들었고 미국에서만 120만장 이상의 앨범이 영수증과 맞교환됐다. 타이틀곡 ‘Invisible touch’가 빌보드 넘버원에 오르면서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예스의 ‘Owner of a lonely heart’에 이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서는 역사상 세 번째로 빌보드 1위를 차지했고 ‘Throwing it all away’, ‘In too deep’, ‘Land of confusion’, ‘Tonight tonight tonight’이 싱글차트 탑5 안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으로서는 최초의, 최고의 기록이었다. 


이처럼 제네시스 패밀리에게 1986년은 영광의 해였다. 15년 이상 평단과 대중 사이에서 괴리감을 피부로 경험한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편하고 들을만한 음악으로 인기를 누렸고 상업적인 성과도 일궜지만 프로그레시브 록 마니아들은 제네시스의 변화를 변절이라 매도했고 그들의 재능과 노력으로 일군 성공을 경멸했다. 그러나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은 지금도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나 ‘The musical box’보다 ‘Invisible touch’와 ‘That’s all’, Land of confusion’을 듣고 기억한다. 대중가수답게 소수보다 다수를 선택한 결과다. 피터 가브리엘, 마이크 루더포드, 토니 뱅크스, 필 콜린스는 이제는 노병이지만 그들은 아직도 40년 전과 똑같은 목소리로 우리의 추억을 환원한다. 

소승근(gicsuck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