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 유튜브,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죽음?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가 몇 개월 전 20억 조회수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나온 마당에 이게 맞는 제목이냐 물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K팝은 뮤직비디오 촬영에 열심이고 해외에서도 촉망받는 뮤직비디오 감독들은 꾸준히 불려 다닌다. 그러나 넓게 봤을 때 뮤직비디오 시장은 확실히 죽어가고 있다.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마 현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미국 MTV 채널의 유럽 철수 선언일 테다. 1981년 런칭 6년 후 고향인 미국을 넘어 유럽 진출에 성공했으나 2025년 12월 31일 이후 산하 5개 음악 채널 송출을 중단하는 영국을 필두로 여러 지역에서 발을 뺄 예정이다. 1994년부터 개최된 유럽 뮤직 어워드, 일명 ‘EMA’도 올해는 취소되었다. 플래그십 채널 하나는 남겨둘 예정이나 음악이 아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곳이다.
물론 대세 플랫폼의 변화로 볼 수도 있다. 사실 MTV야 그 가세가 흔들린 지는 오래다. 2000년대 유튜브의 등장과 발달로 굳이 TV 앞에 앉아 기다릴 필요 없이 원하는 뮤직비디오를 찾아서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탓이다. 1990년대부터 일찌감치 애니메이션을 송출하긴 했으나 2010년대 들어서는 음악이 아니라 사실상 리얼리티 쇼 방송국 취급을 받게 된 상황이고, 그나마 대상을 ‘올해의 비디오’로 마련한 비디오 뮤직 어워드(Video Music Awards) 정도가 음악 채널로서의 명맥을 이었다.
그렇지만 주권을 넘겨받은 유튜브에서도 뮤직비디오 시장은 하락세다. 이제는 슈퍼스타들도 높은 조회수를 찍기 어려워한다. < 록키 호러 픽쳐 쇼 > 오마주와 엔딩 수정으로 이목을 끈 사브리나 카펜터의 ‘Tears’는 두 달 반 동안 5천만 뷰를 기록했고, 현재 팝의 최고 빅 네임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으로 Hot 100 차트 정상을 달리는 ‘The fate of Ophelia’가 1억뷰를 달성하는 데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빌보드 2위에 머물렀던 2019년 ‘Me!’가 79시간 만에 같은 수치를 돌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시 찾아온 ‘듣는 음악’의 시대?
일차적인 원인은 역시 스트리밍 플랫폼의 약진이다. 특히 코로나19를 전후로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2020년 1분기 기준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2.86억 명이었던 스포티파이는 같은 해 3분기 3.2억 명을 능가하더니 2025년 2분기에는 6.96억 명으로 사용자 급증을 경험했다. 유튜브에서 ‘프리미엄’ 요금제와 같이 제공하는 유튜브 뮤직도 상승세를 겪었다. 2021년 가입자 수 5천만 명이었던 것이 이듬해 11월에는 8천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2025년 3월에는 1억 2천 5백만 명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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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튜브 뮤직비디오는 영상 감상의 목적도 있지만 유료 스트리밍 요금제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이 음악을 찾아 듣는 수단 중 하나이기도 했다. 즉 스트리밍 플랫폼의 점유율 상승은 뮤직비디오가 지닌 ‘대체제’로서의 지위를 축소하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스포티파이는 무료 요금제도 시행 중이다. 광고와 랜덤 재생 강제 등 일부 기능에 제한을 둔 식이긴 하나 수동적인 음악 청취에 만족하는 대다수에게는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유튜브에서도 유튜브 뮤직 사용 시 자동 생성 오디오 영상이 우선함에 따라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더 낮은 경우도 빈번하다. 미국에서는 4위, 영국에서는 2위까지 오른 채플 론의 히트곡 ‘Good luck, babe!’는 2025년 11월 기준 유튜브 자체 음원 영상이 1.6억 뷰를 기록한 반면 공식 가사 비디오는 그보다 낮은 1.2억 회다. 국내 인디 밴드에서도 양상은 비슷하다. 실리카겔의 인지도를 크게 올려준 ‘No pain’의 뮤직비디오가 600만회 중반인 것에 반해 음원 영상은 그 4배 이상인 2,700만 회를 뛰어넘는다.
이렇다 보니 뮤직비디오를 큰돈 들여 제작하는 일이 필수가 아니게 된 상황이 되었다. 옛날 같았으면 차트인 직후 뮤직비디오 촬영에 착수했을 채플 론의 ‘Good luck, babe!’는 가사 비디오 하나가 전부이며, 올해 3월 발매한 ‘The giver’도 스킵하더니 8월에 ‘The subway’를 발매할 때가 되어서야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2023년 8월 ‘Hot to go!’ 이후 꼬박 2년 만이었다.
숏폼, 그리고 라이브 클립의 급부상
뮤직비디오를 대체하여 흥행을 견인하는 요인은 역시나 숏폼이다. 익숙한 안무 챌린지 같은 콘텐츠도 그렇지만 최근에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바이럴 히트 요인으로 자리하는 모양새다. 이 분야에서는 사브리나 카펜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상업적으로 큰 두각을 나타낸 2024년 ‘Espresso’ 전부터 그의 공연 영상은 화제였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The Eras)’ 투어 오프닝을 선 당시 2022년 앨범 < Emails I Can’t Send >의 수록 싱글 ‘Nonsense’를 부르며 마지막 파트를 현지 상황에 맞게 개사하는 것이 온라인에서 주목받았고, 더불어 섹슈얼한 메타포까지 곁들이면서 그의 캐릭터를 새롭게 정립한 바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지평선’의 뒤늦은 차트 등반도 윤하가 대학 축제를 돌며 가창력을 뽐낸 게 계기였으며, 2017년 백예린의 ‘Square’부터 시작된 미발매 곡 라이브 영상 바이럴 흥행은 올해 초 송소희의 ‘Not a dream’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여기에 군대라는 키워드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2021년 군 위문열차 공연이 입소문을 탄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은 이 분야의 대표 주자이며, 군인 신분일 때 부른 영상이 화제가 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와 최근 우즈의 ‘Drowning’처럼 남성 아티스트들은 건실한 이미지까지 얻어가고는 한다.
현장 무대의 존재감 상승 자체는 코로나19 이후 크게 늘어난 페스티벌과 공연 수요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으나 온라인 전파 면에서는 심리적인 측면이 크다. ‘직캠’이 아이돌의 음악방송에서 끊이지 않듯이 지금은 감독의 지시 아래 잘 기획된 뮤직비디오보다 직접 관객을 마주 보는 영상에서 느낄 수 있는 친밀감에 더 만족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고, 더군다나 밈(meme)이 되기에 적절한 요소는 돌발성을 갖춘 현장에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K팝 아이돌의 ‘실수 모음’ 영상이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가장 먼 대안에서 전통을 사수하게 된 K팝
음반사 관계자가 발로 뛰던 스타 발굴 시스템이 쇠락하고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하여 주류에 입문하는 아마추어들이 대세를 이루는 영미권에서는 뮤직비디오의 몰락이 꽤 체감되지만 K팝 시장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다년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육성한 멤버들을 극도로 분업화된 프로덕션 팀이 단장하는 시스템 내에서 뮤직비디오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콘텐츠다. 요즘에는 ‘트랙 비디오’라는 제목 하에 러닝타임을 줄여서라도 기타 수록곡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단순 연습실 촬영이 아닌 세트를 활용한 안무 영상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MTV의 개막 이래 시작된 ‘보는 음악’의 타이틀을 K팝이 물려받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종종 음악에 앞설 정도로 퍼포먼스와 불가분적 관계를 유지하는 특성, 그리고 인구학적으로는 유튜브 시청자가 많은 동남아시아 소비자의 높은 비율 때문이기도 하다.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플랫폼 사용량이 마찬가지로 늘어나고 있고, 자국 내 뮤지션에 대한 관심도가 늘어나는 등의 변화는 있으나 아직 동남아권에서 유튜브의 영향력은 크다. 태국 출신 멤버를 보유한 베이비몬스터와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상황을 보면 이를 체감할 수 있을 테다.
눈도장보다는 결집의 도구로서의 뮤직비디오
서구권 위주로 봤을 때 뮤직비디오는 부인할 수 없이 하락세를 겪고 있으나 완전한 종말을 속단하고 싶지는 않다. 신흥 팝스타 중에서도 뮤직비디오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남아있다. 틱톡 인플루언서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음악계로 들어선 애디슨 레이(Addison Rae)의 경우 12트랙 데뷔작 < Addison >에서 절반인 여섯 곡에 뮤직비디오를 동봉하기도 했다. 2025년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후보로 하나도 지정되지 못하자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표한 그의 제스처는 시대가 바뀌어도 비주얼 중심의 전통적 팝스타 모델의 명맥이 이어진다는 표시다.
또 하나 재밌는 흐름은, 한창 유행했던 ‘가사 비디오(Lyric video)’에 이은 ‘비주얼라이저’ 붐이다. 정지 이미지나 반복 애니메이션을 사용한 오디오 영상보다는 공을 들이되 일반적인 뮤직비디오보다는 규모를 간소화한 정도의 중간 개념이다. 릴리 알렌의 신보 < West End Girl >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도 만들지 않았으나 대신 분장을 하고 세트 위에서 찍은 비주얼라이저를 14곡 모두 만들었다. 가끔은 그 구분이 헷갈리기도 한다. 걸그룹 리틀 믹스에서 솔로로 나선 제이드의 비주얼라이저에 대해 팬들은 ‘이 정도 급의 영상이면 뮤직비디오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라고 묻기도 했다.
뮤직비디오가 이전처럼 대중의 시선을 낚아채는 도구였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그 몫은 각종 라이브 클립과 바이럴 밈으로 넘어갔다. 대신 그 목적이 변했다. SNS를 통해 유입된 팬을 붙잡는 ‘락인(Lock-In)’ 콘텐츠가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뮤직비디오는 이제 아티스트와 팬 간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기능한다. MTV가 죽고, 유튜브가 몰락한다 한들 음악에 힘을 쏟아붓는 ‘팝스타’라는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뮤직비디오의 죽음은 조금 더 유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주얼라이저’든 ‘가사 비디오’든 뭐가 중요한가. 명칭이야 어쨌든 알찬 팬서비스를 마다할 이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