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 땅’ 정광태 인터뷰

정광태

by 임진모

2025.11.03

아리아로, 유로팝으로, 힙합으로, 록으로 장르 가리지 않고 무수히 독도 노래가 만들어졌지만, 또 서유석이 발표하고 평양에서 조용필도 부른 ‘홀로 아리랑’도 유명하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으뜸은 누가 뭐래도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이다. 1982년 발표돼 53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어도 독도 노래 상징이자 그 주도적 목소리로서의 위상은 굳건하다. 올해 부산 영도구청서 열린 독도의 날 행사 < 나라 사랑 독도 사랑 문화제 >에서도 여전히 ‘독도는 우리 땅’은 즉각 연상의 언어가 된 정광태에 의해 장쾌히 불렸다. 

그는 독도의 주권과 관련해 이 노래가 재미와 의미의 층위를 모두 파고들었기에 인정받는 것에, 지금도 무수한 우리 국민이 부르고 있다는 것에 무한 감사를 표했다. 행사장 근처의 카페에서 그와 짧은 대담 시간을 가졌다. 그는 독도 노래 꽃이 만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함께 자리한 독도 전문가이자 한국해양대 최홍배 교수도 말했다. “이제부턴 독도를 대중가요의 신바람으로 깨워야 합니다. 독(獨)도 아닌 흥(興)도로요! ”



데뷔가 1974년이네요.
얼마 전 작고하신 전유성 형이 도와줘 연예계 데뷔를 가수 아닌 코미디언으로 했다. 1974년 1월3일 흑백 TV 시절 남산 소재 KBS에서 처음 방송에 출연했다. 원래 스탠딩 코미디를 했다. 최인호의 < 겨울 이야기 >를 기타 치며 재밌게 낭송 식으로 이야기를 풀었더니 웃겼는지 반응이 왔다. 그러면서 후에 평론가로 유명해지신 PD 출신 이백천 선생님이 운영하신 명동 음악감상실 < 르 시랑스 >에서 일하게 됐다. 

어느 날 KBS PD가 놀러 와 실내 장식과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는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프로에 출연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고 그는 진짜 < 젊음의 행진 >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여기에 고정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내 잘못에 의한 사정으로 프로에서 하차했고 3년을 꼬박 쉬었다. 다시 게임 프로그램의 보조 MC로 방송을 재개했고, 1980년대로 넘어가면서 < 유머 1번지 >라는 프로가 생겨 여기에 투입되었다.

< 유머 1번지 >에서 ‘독도는 우리 땅’을 불렀나요? 
그렇다. < 유머 1번지 >는 나중 KBS 코미디 간판 프로그램으로 성장하는데 1982년에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이란 그 프로 코너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원래는 임하룡, 장두석, 한 신인 코미디언과 나 해서 모두 넷이 합창했다. 이걸 본 음반사 < 대성음반 >의 제작자가 요청해 약속이 잡혔다. 그런데 그 제작자의 도착 시간이 늦어졌고 그러자 바쁜 셋은 자리를 떴고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 그 자리에 남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만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게 된 것이다. 

가사는 물론 곡 자체를 프로그램 PD가 만들었습니다.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 코너를 만든 게 담당 박문영 프로듀서고 그 코너에 넣으려고 PD 본인인 작사 작곡한 것이다. 피디가 어떻게 그런 곡을 썼는지 정말 신기하다. 예술적 재능을 가진 분이었고 본인도 예술 활동을 하는 게 꿈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덜 기억되지만 ‘독도는 우리 땅’ 말고도 ‘김치 주제가’, ‘대한민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도 부르지 않았나요. ‘도요새의 비밀’은 라디오 전파를 많이 탔고 애창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요새의 비밀’은 KBS 노랫말 대상에서 동상을 받았다. 지금 말한 곡 외에도 ‘광개토대왕’, ‘의병대장 곽재우’, ‘화랑 관창’ 등도 불렀다.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교육적인 노래들이 대다수였다. 학교에서 널리 불렸던 것으로 안다. 참 ‘아인슈타인’이란 노래도 있었다. 이 곡의 반응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 곡들 모두 박문영 PD가 썼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도는 우리 땅’이 수록된 옴니버스 앨범은 전설이 됐습니다. 
신형원이 ‘불씨’와 ‘유리벽’으로 데뷔한 게 바로 그 앨범이고 젊은이들의 애창곡이 된 해오라기의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수록되어 있다. 당시는 여러 가수의 컴필레이션이라 할 ‘옴니버스’ 앨범 형식이 유행했다. ‘독도는 우리 땅’ 외에 내가 부른 ‘코끼리 아저씨’도 실려있다. 앨범 타이틀은 아까도 말했듯 < 유머 1번지 >의 코너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나중 2집도 나왔다.

그 무렵 일본 교과서 왜곡 사건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 등의 외교적 이슈 때문에 ‘독도는 우리 땅’에 대한 반응이 바로 나타나지 않았나요. 
맞다. 나오자마자 팬들이 바로 주목했다. 특히 일본 교과서 왜곡 사건이 터지면서 일본에 대한 감정이 ‘독도는 우리 땅’으로 폭발하다시피 했다. 그땐 온 천지가 ‘독도는 우리 땅’인 듯했다. 대학교를 비롯해 길거리에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현수막이 엄청나게 내걸렸던 때였다. 노래도 라디오 전파를 많이 탔다. 

그런 ‘독도는 우리 땅’이 한때 사실상 방송 금지되기도 했다는데 맞습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정부 혹은 방송이 일본과 관련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뭐랄까 과잉 반응 혹은 과잉 충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처분을 내린 건지 무슨 이유로 금지했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한동안 방송을 타지 못한 게 사실이다. 나도 활동이 갑자기 정지되었으니까. 

어떻게 (금지가) 풀렸나요?
정부의 고위관계자가 방송에 협조를 구해 풀린 것으로 안다. 1983년 일이다. 노래가 다시 전파를 타면서 난 KBS 연말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여자 신인상은 정수라가 받았고. 그날 최고가수상을 받은 조용필이 “개그맨 출신으로 연말 가요제에서 신인가수상을 받은 건 흔치 않은 일!”이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던 게 기억난다.


조용필과의 사진

개그맨 출신으로 노래 불러 상 받은 사람이 없나요?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의 방미처럼 코미디언 출신 인기가수는 있었는데 상 받은 사람은 기억나지 않는다. 

박문영 피디는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을 맘에 들어 했는지 궁금합니다. 
노래가 전국적 히트했고 신인가수상까지 받은 것에 나보다 더 기뻐하더라. (웃음) 하긴 우리 국민 가운데 ‘독도는 우리 땅’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 그보다 더 기쁜 게 어디 있겠나. 

지금까지 부른 노래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곡은요? 
‘음치는 불치의 병이 아니다’란 곡이 있다. 내 생각과 일치해서 이 곡을 좋아한다. 나는 결코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광태 같은 사람도 노래하는데... 그런 희망을 주고 싶어서 노래하는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을 본인은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나와 동의어 아닌가. 그런 즉각적 일치는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게다가 거기엔 현실 역사가 새겨져 있지 않나. 내 평생의 영광이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진행: 임진모
정리: 임진모
사진: 임진모, 정광태 제공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