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기타리스트 이성렬ㅣ박수석의 겟 어 기타
이성렬
대중음악의 곁은 기타가 지켰다. 이 무한한 가능성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분신 삼아 많은 사람들이 연주 혼을 불살랐고 소수의 혁신가들이 일으킨 현의 진동은 시대의 거대한 흐름마저 뒤흔들었다. 이즘은 흘러간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빛낸 기타리스트의 전설들을 선정해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지판(指板)이라는 대지 위에 그들이 남긴 굵직한 발자국을 좇는다.

존재를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좋은 음악을 위해 묵묵히 땀 흘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세션’이다. 악기를 다루는 전문 연주자인 이들에게는 최상급의 연주력은 기본이요,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기 위한 너른 음악적 이해와 빠른 판단력까지 요구된다. 이 분야에서 기타리스트 이성렬은 두말할 필요 없는 베테랑이다. 조용필, 이승철, 박정현, 백지영, 임영웅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함께한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타고난 유연함으로 수많은 명곡에 자신의 선율을 남겼다.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무대를 지원하던 그가 이제 전면에서 자신의 소리를 들려줄 준비를 마쳤다. 11월 2일 여섯 명의 기타리스트(이근형, 이성렬, 타미킴, 이선정, 찰리 정, 샘 리)가 나선 ‘G6’ 콘서트와 음반을 준비 중인 그는 겸손하면서도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어느샌가 깊은 통찰을 내비쳤다. 차분함에 쌓인 단단한 내공이 롱런의 원천임을 가늠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겟 어 기타’ 시리즈와 이어질 G6 인터뷰의 첫 주자, 명품 기타리스트 이성렬을 경기도 고양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6인의 기타리스트가 모인 G6로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나.
앨범 제작에서 시작해 공연까지 오게 됐다. 보통 세션으로서 다른 가수의 뒤를 받치는 경우가 많은데 흔치 않게 연주자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라인업도 화려해 여기에 낄 수 있다는 점도 기쁘다.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정상급 연주자로서 다수의 곡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작업이나 공연이 있나.
‘가왕’ 조용필 선생님의 ‘Bounce’. 곡이 수록된 < Hello >의 프로듀서가 마침 같은 작업실을 쓰고 있어 운 좋게 참여하게 됐다. 곡에 맞춰 팝적인 감각 위주로 가볍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공연 중에서는 송골매의 앵콜 콘서트가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에너지가 정말 대단한 데다가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음악이다 보니 더욱 재미있었다.
그 외에도 궁합이 잘 맞았던 가수를 꼽아본다면?
제일 케미가 좋았던 건 한영애 누나다. 연주 환경이나 대우 등의 문제로 10여 년간 공연을 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유일하게 영애 누나 공연은 했었다. 음악, 노래, 퍼포먼스, 모든 부분에서 존경하는 음악가다.
기타 인생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려 한다. 올해로 기타를 잡은 지는 얼마나 되었나.
공식적인 데뷔가 1989년이니 36년 정도 됐다.
지금이야 교재나 유튜브, 레슨 등으로 정보를 얻기 쉽지만 과거에는 여러모로 악기를 독학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실력을 키웠나.
헤비메탈에 푹 빠진 뒤 몇몇 악보를 겨우 구해 연습했었다. 당시에는 일본 책을 카피한 게 대부분이어서 일본 잡지를 구하기 위해 중국 대사관 앞 서점에 많이 갔다. 그러다 보니 초킹(줄을 밀어 올려 음정을 올리는 ‘벤딩’의 일본식 표현)같은 이상한 연주 용어도 그때 국내에 많이 들어왔다.
가장 많은 영감을 얻은 기타리스트는 누구인가?
어렸을 때 제일 꽂힌 건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다. 처음 그 연주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연주적으로는 스타카토를 굉장히 맛깔스럽게 많이 사용하는데, 어떤 음을 과하게 강조하다가도 딱 끊는 강약 조절로 맛을 기가 막히게 낸다. 이런 표현법들을 은연중에 많이 배웠다.
또 다른 한 명은 제프 벡을 꼽아야겠다. 우리나라에 오기 1년 전에 일본에 가서 공연을 봤는데 좋은 자리가 아니었는데도 말 그대로 죽였다. 하모닉스로 배음(倍音)을 더하는 등 다양한 주법을 노래하듯이 너무 자연스럽게 음악에 녹여낸다. 테크닉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기타라는 악기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써 정확히 사용한다. 물론 나도 기술적으로 따라 할 수는 있지만 그 형처럼 멋있게는 못한다. 그 형은 그걸로 음악을 만든다.

부단한 노력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이성렬 기타의 핵심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리프(Riff)나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순발력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리듬의 패턴을 들으면서 그대로 맞춰갈지, 아니면 살짝 비껴가면서 포인트를 줄지를 고민한다. 주어진 코드 안에서 멜로디를 해치지 않는 것도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즉흥적 생산력이 뛰어나다’라고 표현해도 될지.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어떤 곡을 던져줘도 빨리 해결해 주는 해결사랄까. (웃음)
그 능력을 바탕으로 소녀시대, 동방신기 같은 아이돌부터 조용필, 한영애 같은 거장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음악의 가장 보편적인 지점을 추구하려고 한다. 여러 장르를 보다 보면 조금씩 다른 점은 있지만 음악이라는 게 사실 다 통하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최근엔 많은 장르들이 서로 섞이며 더욱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들으며 공부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선배로서 기타리스트가 지켜야 하는 책무를 후배들에게 말해준다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매일매일 어느 장소든 연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계속해서 연주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빛을 발하려면 당연하게도 기본기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기타에서 기본기란 어떤 게 있을까.
음(音)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기타뿐만 아니라 어떤 악기에서도 음감 훈련은 필수적이다. 학생 중에서도 피아노를 치다가 기타로 넘어온 친구들이 종종 있는데, 그런 친구들은 음감이 기본적으로 탄탄하다 보니 확실히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단순히 곡을 카피하는 사람과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발전 속도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36년의 세월을 오롯이 기타리스트로서 살아왔다. 긴 시간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눈앞에 당근 하나 매달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오랜 시간 해온 일이지만 아직도 재밌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음악만 해서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타리스트라면 꼭 들어야 할 10곡을 꼽아달라.
1. 제프 벡(Jeff Beck) - < Blow By Blow >
가능하면 한 곡을 정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명반이다. 전곡이 필청 트랙.
2. 데프 레퍼드(Def Leppard) - ‘Animal’
이 곡이 수록된 < Hysteria >는 대중적인 멜로디, 사운드 메이킹 등 버릴 게 하나 없다. 팝 기타의 모든 것이 담긴 교과서 같은 작품.
3. 딥 퍼플(Deep Purple) - ‘Highway star’
가장 깊게 빠졌었던 리치 블랙모어의 기가 막힌 솔로가 담긴 곡.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4.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 ‘Rain song’
변칙 튜닝으로 리프를 만들어 내는 지미 페이지의 역량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곡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5. 지지 탑(ZZ Top) - ‘Blue jean blues’
느린 템포로 흐르는 반주 속에서 진득한 블루스 기타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6. 에이씨디씨(AC/DC) - ‘Back in black’
이미 너무나 유명한 곡. 단번에 귀에 꽂히는 기타 리프 하나로 설명이 끝난다.
7. 에어로스미스(Aerosmith) - ‘Walk this way’
기타 리프도 훌륭하고 곡 전반의 리듬감이 끝내준다.
8. 스틸리 댄(Steely Dan) - ‘Peg’
산뜻한 리듬과 멜로디, 연주는 지금 들어도 아주 세련됐다.
9.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her Cross) - ‘Sailing’
서정적인 연주와 대중적인 멜로디가 조화롭다. 1980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10.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 ‘Something in the way she moves’
어쿠스틱 기타의 매력을 알게 해주는 곡. 깨끗하게 흐르는 선율이 너무나 아름답다.
진행: 임진모, 박수석, 박시훈, 한성현
사진: 한성현
정리: 박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