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오프만(Lewis OfMan) 인터뷰
루이스 오프만(Lewis OfMan)
재밌는 음악을 발견했다. < Seoul Mixtape >. 아트워크마저 동양적인 이 믹스테이프의 아티스트는 놀랍게도 한국인이 아니라 프랑스 뮤지션 루이스 오프만이다.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의 흥행으로 ‘한국적인 것’을 둘러싼 시선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보다 조금 먼저 서울을 배경삼아 탄생한 음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루이스 오프만과 한국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다. 2024년부터 개인 퍼포먼스와 합동 연주, 올해 4월에는 단독 콘서트까지 진행했고 ‘Seoul disco night’의 뮤직비디오에도 서울 풍경이 가득하다. 과연 이곳의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궁금증을 풀고자 이즘이 루이스 오프만과 대화를 나눠봤다. “발 닿는 곳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라는 소개처럼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인터뷰였다.

제목부터 서울이 담긴 최근 발매작 < Seoul Mixtape >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어떻게, 그리고 언제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투어 휴식 기간인 2024년 4월 서울에 2주가량 있을 때 솔 스튜디오라는 곳의 주최로 음향기기 판매점 ‘레몬 서울’에서 작은 공연을 열게 되었다. 제목은 ‘서울 베리에이션(Seoul Variation)’. 이후 꾸준히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며 클럽, 음반 가게, 바 등 여러 장소에서 들은 음악, 한강과 망원에 있는 내 스튜디오 주변에서 돌아다니며 느낀 분위기를 모아 한 편의 음악 노트를 만들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크레딧에 한국인 이름이 많다. 어떤 사람들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여러 트랙에서 노래와 나레이션을 맡은 김도연은 서울에서 만난 내 사랑이다. 음반 작업도 대부분 그의 집에서 창문 너머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진행했다. 아트워크는 화가 배재민의 그림이다. 작년 그의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 숨이 탁 막히면서도 겸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명상하는 듯한 분위기. 구석에서 발견해 마음에 담아둔 그림 한 점이 1년 후 믹스테이프 제작 과정에서 마치 나를 이끄는 시처럼 작용했다. 아름다운 작품을 아트워크로 사용하게 해준 재민에게 감사를 표한다.

‘Seoul disco night’은 1978년 희자매의 ‘아리랑 내님아’를 샘플링했다. 이 노래를 알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엄청나게 덥고 구름이 낀 8월, 모자이크 레코드에서 음반을 둘러보다 한국 사이키델릭 섹션을 발견했다. 살면서 본 가장 멋진 커버의 바이닐이 많았고 그중 희자매도 있었다. ‘아리랑 내님아’ 도입부의 브레이크다운 파트를 듣고 이거다 싶어 곧바로 음반을 구매했다. 다음날 앨범을 다시 틀며 브레이크 부분에서 샘플을 땄고, 전날 술을 마실 때 친구들에게 배운 한국어의 “있다”와 “없다”를 활용해 목소리를 얹었다.
뮤직비디오도 독특하다. 장소를 알려줄 수 있나?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는지.
작년에 한국에서 스튜디오를 차리고, 매일 금호에서 망원까지 오가고,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삶을 살았다. 매일 월드컵로를 걸으며 커피를 마시고 비빔냉면을 먹은 망원동처럼 자주 놀러가거나 또는 발견한, 의미 있는 장소를 카메라에 담게 되었다.
낙원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다. 지하까지 악기로 가득한 미로에서 내 신시사이저를 수리해주신 분과 함께 인스턴트 커피도 마셨다. 친구들과 일주일에 네 번씩 녹사평 인근 큐섹이라는 바에 들리기도 했다. 참고로 바 이름은 내가 지어줬다!
‘Jeju flute’라는 트랙도 믹스테이프에 실려 있다. 제목처럼 제주도에서 만든 곡인가.
원본은 2020년 파리에서 만든 ‘Story of love’로, 확 느껴지는 것이 없어서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다 2024년 4월 제주도에서 ‘레몬 서울’ 레지던시 공연을 하게 되면서 선보일 곡을 찾다가 이 노래가 떠올랐는데, 제주에서 본 풍경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기분인 것이다. 그때 더 다듬어 곡을 완성했고 ‘Jeju flute’라고 부르기로 했다. 음악은 꼭 제목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책 같다. 잊고 있다가 살짝 불꽃이 붙으면 다시 빛나게 된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한 음반을 만든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인상 깊었다. 한국의 어떤 것이 당신에게 매력적이었나?
내 음악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나를 초대한 음악, 내가 발견한 사랑, 친구, 여러 사람들과 예술가 등. 한국은 독특한 취향과 열정적인 사람들이 서로 놀라운 것을 공유하는 곳이다. 선선한 망원 거리를 걷고, 꽃향기를 맡으며 남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조용한 독서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멋진 사운드 시스템에서 초현실적인 댄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정말 멋진 도시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음악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
한국에서 공연을 꽤 열었다. 작년에는 드러머 김다빈과 즉흥 연주도 있었고, 올해 5월에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콘서트가 있었다.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무더운 8월 여름 밤, 빈속에 막걸리를 마시며 고성의 슬로우댄스라는 바에서 공연하는 까데호를 보며 드러머에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웃으면서 그루브로 바를 뒤집어 놓는, 광기와 차분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있다니. 마침 키보드와 MPC, 드러머 구성으로 무대를 기획하고 있을 때라 곧바로 그 다음주에 다빈을 만났고, 몇 시간동안 음악을 연주하면서 서로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통제할 수 없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서핑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Takin’ College’라는 타이틀로 서울과 파리, 런던에서 쇼를 열었다. 정해진 러닝타임도 없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주를 했는데 다빈의 엄청난 에너지에 나중에는 내가 끌려 다녔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공연은 마치 꿈 같은 시간이었다. ‘Seoul disco night’을 연주했는데 발매 전이었음에도 사람들이 이미 아는 곡처럼 반응했다. 마지막에는 다들 가사를 따라 부르며 미친 것처럼 뛰어 놀았고, 마지막은 ‘Frisco blues’와 ‘Je pense à toi’ 같은 감성적인 트랙으로 마무리했다.
이외 교류했거나 관심이 가는 한국 아티스트가 또 있는가?
한국에서 까데호, 이오(EOH), 씨피카 같은 팀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고, DJ 채(Chae)와 해방촌 펍 힐즈앤유로파에서 연주하는 준모라는 뮤지션에 반했다. 음악 외로는 5월 성수동에서 있었던 프로젝트 퍼포먼스 ‘ceiling service’도 엄청났던 기억이 난다.

엠프레스 오브와 칼리 래 젭슨 등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을 펼쳤다. 보통 이런 콜라보레이션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공동 작업물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곡도 궁금하다.
보통은 가까운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음악을 만드는 식이고, 엠프레스 오브와 칼리 래 젭슨처럼 음악을 듣고 연락을 먼저 보낸 이들도 있다. 공동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LA에서 싱어송라이터 알래스카 레이드(Alaska Reid)와 함께 만들었던 ‘Come & gone’이다. 목소리가 엄청난 아티스트다.
칼리 래 젭슨과는 2022년 싱글, ‘Move me’와 2023년 < The Loveliest Time > 수록곡인 ‘Stadium Love’로 두 차례 협업했다. 어떤 경험이었는지.
사촌을 통해 내 음악을 알게 된 칼리 래 젭슨으로부터 작업 제안을 받았다. 나는 파리에서, 그는 LA에서 온라인으로 마주본 채 서로 인생 이야기를 공유하며 소통했다. ‘Move me’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을 때 만들어졌다. 당시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공연을 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어느 날 이 노래가 딱 떠올라 들려줬더니 칼리 래 젭슨이 마음에 들어했다. 그 후에는 그의 영국 공연에서 내가 오프닝을 서기도 했다.
루이스 오프만의 음악은 디스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떻게 음악의 길로 들어섰는지 묻고 싶다. 롤모델이 있다면?
내 롤모델은 음악가보다 부모님처럼 작가 혹은 화가다. 어린 시절 열정이 직업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큰 성공이나 명성이 아닌 예술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것 자체가 목표인 것이다. 나도 그런 방식을 따랐고, 참 운이 좋게도 내 작품을 듣고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 음악으로 먹고 사는 중이다.
다음 한국 방문 일정은 언제인가? < Seoul Mixtape >를 한국 무대에서 보여준다면 좋은 경험일텐데.
아마 9월 정도! 언젠가는 < Seoul Mixtape >를 첫 트랙부터 마지막 곡까지 연주하고 싶다. 작품을 완전하게 무대에서 전달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진행 및 번역: 한성현
사진: 루이스 오프만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