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이즘 x 문화도시부평] #58 릴보이
릴보이(lIlBOI)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부평과 함께 하는 < 애스컴 아카이브 부평사운드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쉰여덟 번째 주인공은 대중과 마니아를 모두 잡은 래퍼 릴보이다.
‘Officially missing you’의 첫인상은 더없이 친숙했고, < Good Time For The Team >을 통해 힙합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 쇼미더머니 9 >에서는 압도적이었다. 어느새 데뷔 15주년을 눈앞에 둔 릴보이는 힙합의 모든 하위 장르를 넓게 아우른다. 당신이 어떤 스타일을 원하든 이 ‘작은 거인’은 탄탄한 실력으로 빈틈없는 래핑을 구현해 보일 것이다.
순간순간의 임팩트가 참으로 강렬했던 까닭일까, 한국 힙합 신에서 과작의 아쉬움을 논할 때 항상 언급되곤 하는 이 역시 릴보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내놓은 EP < Get Back >은 그간의 아쉬움을 적잖이 해소할 만큼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었다. 데뷔부터 신보까지 그간의 발자취를 넓게 톺아보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한결같이 겸손한 모습이었지만, 곧은 심지와 뛰어난 역량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었다.
< 쇼미더머니 9 > 우승 이후에도 활동이 뜸한 기간이 더러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원래 활동을 그리 활발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음악 외 매체 출연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기에 내겐 이런 삶이 자연스럽다. < 쇼미더머니 >로 이름을 알리고 고삐를 당기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나는 일상에서 자극을 찾으러 나간 것이라 더 그렇다.
릴보이의 태도는 항상 유유자적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본래의 천성과 래퍼 생활을 하며 터득한 삶의 방식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원래 성격도 그러한 편이고, 뮤지션 생활을 하며 길러 간 면도 있다. 어렸을 때 오로지 음악만 해서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고, 자기 삶을 살아야 그 안에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다는 로린 힐의 시상식 영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는데도 계속 찾아가 돌려 봤던 기억이다. 힙합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가사에 스며든 여러 이야기이기에 그 말대로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게 되었다.
릴보이라는 아티스트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키워드 중 겸손이 있다. < 쇼미더머니 > 등의 방송에서도 뛰어난 실력에 비해 예의 바른 모습이 화제가 되었는데.
스스로 뽐내는 랩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라는 사람 자체도 과시하지 않는 편이다. < 쇼미더머니 > 우승 이후 구매했던 BMW 차량도 조금 타 보니 맞지 않아 부모님께 드렸다. (웃음) 아무래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역시 나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생각해 굳이 억지로 자만하지는 않으려 한다.
지금까지 만든 음악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항상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곡마다 작업하던 순간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가령 ‘Officially missing you’의 경우 이십 대 초반의 혈기가 담겼고, 당시 나나 루이 형이나 잘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찌질한 감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다. 영화 < 바닐라 스카이 > 속 꿈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던 ‘David’도 떠오른다.
< Meantime > 발매 이후 3년이 지났다. 지금 와서 정규 1집을 돌아보고, 또 2집에 대해 귀띔해 준다면?
아직까지 정말 좋아하는 앨범이다. 밴드 셋에 대한 환상이 있어 세션과 함께 공연하는 것을 꿈꾸며 만들었다. 그래서 작년 단독 콘서트 < The Camp >도 정말 재미있었는데, 아쉽게도 멀티트랙이 날아가 버려 MR로는 공연하지 못해 아쉽다. 정규 2집은 랩에 더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작년 발매한 < Get Back >의 연장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정의하는 자신 음악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인간 오승택의 취향과 즐겨 듣는 음악이 음반에 담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마이클 잭슨의 경우에도 그의 유년기에 유행했던 장르를 다 담아내지 않았나. 예전부터 재즈를 자주 들어왔고, 펑크(Funk)나 힙합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으니 앞으로는 그런 요소를 많이 집어넣을 생각이다.
그렇다면 < Get Back >도 그러한 지향점이 반영된 것인가?
작업 과정에서 페기 리부터 비교적 최근의 마이클 부블레까지 재즈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계속 틀어 두었다. 프린스와 앤더슨 팩 등 펑크(Funk) 쪽도 빼놓을 수 없겠다. 또 수록곡 중 ‘슈퍼스타’에서는 록의 요소를 많이 도입해 보고자 했다. 최근 너바나와 스매싱 펌킨스를 즐겨 들은 경험이 반영된 것 같다.
한편 우주비행(WYBH) 크루 멤버들과 함께한 ‘Freestylin’ remix’의 타이트한 벌스가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빅나티가 먼저 내게 피처링을 부탁했고, 마침 기리보이와도 오래 교류하고 지냈다 보니 흔쾌히 받아들여 싣게 되었다. 내 의견을 그대로 풀어놓는 게 오랜만이라 가사를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장르에 몸담으며 느끼는 불안감은 없는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음악을 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한다. 즐겨 들었던 음반이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음반 역시 오로지 상업성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만약 돈이 궁한 상황이 오더라도 그것을 음악으로 해결하려 억지로 만들진 않을 것 같다.
요즈음 한국 힙합 신에서 눈여겨보는 아티스트를 말해 달라.
유행하는 음악은 무조건 다 들어 보려 한다. 포티 몽키와 몰리 얌처럼 소위 이야기하는 도파민을 추구하는, 자극적인 스타일도 재미있더라. 나도 저런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웃음)
본래 인천 출신이 아님에도 인천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학창 생활을 보낸 적이 있는데.
어쩌다 보니 합격해 다니게 되었는데,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고향과 너무 멀어져 전학을 갔다. 다만 아버지가 젊은 시절을 보내신 곳과 큰집 역시 인천이라 인천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랩은 학생 때 처음 시작한 것인지?) 수능 치기 한두 달 전이었다. (웃음)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빨리 찾아 행운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어 이후 본격적인 활동도 빠르게 이어졌다.
인천은 유독 힙합과 관계가 깊은 지역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힙합뿐만 아니라 모든 새로운 문화는 자유를 토대로 태동한다고 생각한다. 규제하는 것들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가령 그래피티도 처음에는 불법 행위로 시작했고, 무법적인 성향을 가지지 않는가. 소위 ‘양아치스러움’으로 대표되는 인천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크게 일조하지 않았을까.
< 부평 청소년페스티벌 >과 < 오늘도 무사히 > 등 부평 지역 콘서트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공연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힙합을 좋아하는 지역 두 곳을 꼽자면 인천과 대구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덕에 그 에너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또 단골 냉면집이 있어 공연 때마다 꼭 찾는다. (웃음)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앨범, 곡 혹은 아티스트를 꼽아 달라.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의 모든 음악을 다 찾아 들었다. 둘 중에는 프린스에게 더 마음이 간다. 특히 ‘Kiss’를 정말 좋아하는데, 곡도 곡이지만 섹시하지 않은 사람이 섹시함을 우기는 모습이 큰 영감을 주었다. 다른 이들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쭉 밀고 나가면 결국 언젠가는 납득시킬 수 있지 않나. 나도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임하려고 한다.
힙합의 매력을 알게 해준 아티스트로는 아웃캐스트가 있다. 유학 생활 당시 ‘Ms. Jackson’을 처음 듣고 왜 저렇게 사과를 반복하는지 궁금증이 들어 가사를 찾아봤는데 그 대상이 바로 에리카 바두의 어머니더라. 이를 계기로 에리카 바두, 더 나아가 로린 힐을 비롯한 다른 뮤지션들의 곡을 접하게 되었고 가사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랩 네임 역시 아웃캐스트의 빅 보이에서 따왔다. 처음엔 키가 커서 그런 이름을 붙인 줄 알고 반대로 릴보이란 이름을 착안했는데, 알고 보니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빅 보이를 쓰는 게 멋이었던 거였다. (웃음)
최근 아티스트 중에서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프랭크 오션을 꼽을 수 있겠다. 프랭크 오션 특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가사, 예를 들면 ‘Pink + white’에서 태풍이 지나간 후의 풍경을 지붕 위에서 바라보는 묘사를 좋아한다. 일반적인 힙합과 다르게 인종을 초월한, 한없이 넓은 동시에 또 개인적인 관점이다. 물론 앨범을 너무 안 낸다고 비판도 받지만 (웃음) 그런 음악은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즐긴 상태에서만 나올 수 있다. 내 마음가짐 역시 그에게서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