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을 만드는 사람들] #3 프로듀서 김혜수

김혜수

by 박시훈

2025.07.10

과연 무엇이 K팝을 정의하는가? 장르로 본다면 마땅한 해답이 없지만 산업의 관점에서 K팝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분업화’다. 관객을 바라보며 노래하고 춤을 추는 아이돌 뒤에서는 찬란한 아우라와 무대를 꾸미기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앞에 나서지는 않아도 조용히 K팝을 진두지휘하는 이들을 만나고자 이즘이 인터뷰 시리즈 ‘K팝을 만드는 사람들’을 시작한다. ‘K만사’ 세 번째 주인공은 프로듀서 김혜수다. 


작년 한 해를 빛낸 곡들을 논할 때 리센느의 ‘Yoyo’와 ‘Love attack’은 빼놓을 수 없다. 갓 데뷔한 신인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아름다운 화음과 선율을 자랑했으며 그룹은 기세를 몰아 EP < Glow Up >과 싱글 ‘Deja vu’로 2025년 K팝 신을 활보 중이다. 핵심은 음악 곳곳에 배어든 ‘향’. 이즘은 이 향기의 근원을 찾고자 소속사 더뮤즈 엔터테인먼트로 향했고 사내 이사이자 프로듀서 김혜수를 만났다. 


갖고 있던 궁금증은 1시간 내외의 인터뷰를 통해 쉽게 해소되었다. 버클리 음악 대학을 졸업한 후 소속사 대표 이주헌과 작곡팀을 꾸려 어느덧 걸그룹 리센느를 기획하기까지. 그는 대화 내내 차분함을 유지하면서도 풀어내는 낱말엔 기획에 대한 열정과 멤버들을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사실 리센느의 ‘은은한 라벤더 향’은 김혜수라는 사람의 마음이 투영되었단 걸 깨닫는 순간. ‘K만사’ 취지에 걸맞은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현재 더뮤즈 엔터테인먼트의 이사직으로 재임 중이다.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회사의 경영진으로서 이주헌 대표와 함께 제작 업무를 수행한다. 대표님은 PR, 매니지먼트에 치중하고 나는 비주얼, 음악 등 제작파트에 집중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A&R 팀이 존재하지만 아직 회사 내 팀장 직책은 없어 팀장 역할도 도맡아 리센느를 프로듀싱한다.  


직접적으로 작곡에 관여하는지.

이주헌 대표와 내가 같이 곡을 만들고 ‘The Muze(더 뮤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더 뮤즈’는 원래 작곡팀으로 시작하였다가 이후 회사로 변경한 것이다. 하우스 작곡가 겸 이사직을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이주헌 대표와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알고 있다. 프로듀싱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거나 다른 부분은 있는지. 

사실 프로듀싱뿐만이 아닌 모든 면이 나와 다르지만 상호 보완 관계라 생각한다. 프로듀싱 측면에선 대표님은 대중성에 집중하고 나는 음악적인 완성도에 신경 쓴다. 업무적인 성향으로 봤을 때도 대표님은 추진력을 기반으로 일을 넓히는 편이라면, 나는 섬세하게 다듬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서로의 의견이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하나.

타이틀 곡은 대표님의 의견에 더 힘이 실리는 편이나 수록곡은 내게 맡겨주는 경우가 많다. 예시로 이번 리센느의 싱글 수록곡 ‘Mood’와 이전 앨범의 수록곡 ‘In my lotion’, ‘Pinball’, ‘Yoyo’에선 나의 색채가 짙다.   


이주헌 대표와의 업무적 합은 어떤가. 

타이틀과 수록곡은 메인 디시와 사이드 디시로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레스토랑의 철학과 정체성은 사이드 디시에서 더 묻어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대표님이 대중성이란 메인 디시를 꾸리는 동안 나는 수록곡인 사이드 디시에 리센느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더 담아내려 한다. 팬들이 타이틀 ‘Love attack’으로 입덕하고 ‘Yoyo’와 ‘Pinball’로 정착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대표님과 나의 시너지가 좋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음악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궁금하다. 

가족의 영향이 컸다. 친언니를 따라 3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클래식으로 예술 중학교 입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입시 곡을 잘못 준비하는 바람에 원했던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13살 무렵 음악의 꿈을 접을 생각까지 했으나 이에 대한 애정을 쉽사리 놓을 수 없었다. 


그 뒤로 다시 한번 동네 피아노 학원에 가게 되었고 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재즈를 접했다. 사실 그 당시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했는데 재즈 음악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친구들에게도 ‘젓가락 행진곡’ 같은 곡을 재즈 버전으로 보여줬을 때 괜스레 멋있어 보이는 느낌도 들었다.(웃음) 재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버클리 음악대학 입학 과정은 어떠했는가.

매년 심사위원들이 한국에 직접 온 뒤 오디션을 열어 학생들을 선발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입학했다. 다른 국가에서도 진행하니까 일종의 글로벌 오디션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버클리는 입학 후 세 번째 학기 때 학과를 정한다. 작곡, 음악교육, 음악치료 등 여러 선택지 중에서 퍼포먼스 학과를 선택했고 재즈 피아노 실연을 공부했다. 


퍼포머로서 활동하다 작곡가로 들어서게 된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재즈를 사랑하지만 버클리에서 공부하면서 성취감이 부족했다. 클래식은 완곡했을 때 보람을 느꼈지만 재즈는 즉흥 연주를 위한 연습이 많았고 깊이 들어갈수록 더 어렵다고 느꼈다. 심지어 아무런 연관 없는 수학 문제집까지 따로 풀며 성취감을 찾을 정도로 힘들었다. 작곡은 열심히 하면 결과물이 나와서 나의 성향과 맞았다.  


또 대학원 진학을 앞둔 상황에서 학교 측의 전산 문제로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겼다. 계획과 다르게 한국에 돌아와야 했고 그러던 중에 1년 먼저 들어온 이주헌 대표한테서 작곡팀을 결성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당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라’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발판 삼아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재즈에서 K팝으로 방향을 튼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전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르의 분간은 희미해진다고 생각해 그간 배워온 분야와는 달랐을지라도 K팝으로 방향을 튼 것에 있어 부담이 들진 않았다. 또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대화했을 때 그 사람의 견문이 보이듯 다양한 음악을 듣고 경험한 시간은 작곡에 녹아든다. 재즈를 배우면서 체득해 온 경험과 지식을 작곡에 반영하고 내가 가진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는 등 K팝을 표현하는 방법을 더 다채롭게 꾸릴 수 있었다.  


비투비의 ‘피날레’는 처음으로 상업적인 성과를 얻어낸 곡이다.

당시 이주헌 대표가 울 정도로 감격스러워했다. 버클리 졸업 후 우리가 만들어낸 첫 결과물이니까. 친언니가 비투비의 광팬이라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왔다.(웃음)


리센느라는 팀의 기획 의도와 정체성이 궁금하다.

빠르게 소비되고 급변하는 K팝 시장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리센느를 기획할 때 가장 큰 과제였다. 고민하던 중에 이주헌 대표가 불현듯 ‘향’이란 키워드를 제시했고 팀원들은 여기에 ‘프루스트 효과’를 덧붙였다. 리센느의 음악이 청각적 경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후각적인 향이 느껴질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모든 앨범 콘셉트는 이러한 기조 아래 제작된다. 


리센느는 리브와 미나미, 두 명의 메인 보컬이 있지만 전체적인 화음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정확하다. 사실 대표님은 멤버들의 역할을 한정 짓고 싶지 않아 했다. 각자 고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잠재력을 특정 틀 안에 가두는 느낌이라. 리센느는 모든 멤버가 메인 댄서이자 메인 보컬이다. 여기에 나는 서로가 돋보일 수 있는 구간을 세심하게 작업하고 멤버들의 음색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통한 화합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 Glow Up >의 첫 트랙 ‘Crash’다. 왠지 모르게 눈물 나는 포인트가 있었고 이 감정을 직접 표현할 멤버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곡을 작업할 당시 멤버들에게 개인적으로 상담해 줬던 경험을 녹여내었다. 또한 멤버 제나가 노래에서 감정을 표현한 게 ‘Crash’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추억할 거리가 많은 곡이다. 


‘Crash’를 들으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비행기에서 가사를 썼는데 이 감정이 잘 전달된 것 같다.(웃음) 감사하다.   


작년 리센느와의 인터뷰에서 멤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고 들었다. 

곡을 제작할 때 대표님은 멤버들의 의견을 자주 묻고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특히 멤버들이 아이돌 생활을 마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귀감이 되는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동적인 모습보단 능동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자의식을 키워주고 싶다. 수평적인 사내 구조랄까. 멤버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적용되는 더뮤즈 엔터테인먼트의 가치관이다.


K팝 신에 있어 김혜수 이사만의 철학은 무엇인지.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똑같은 형태로 오진 않는다. 시대적인 특성과 아티스트의 표현 방식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해 새로운 유행으로 번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이전 세대의 음악과 작금의 문화 현상 등 다방면의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K팝을 만드는 사람들’의 공식 질문이다. 김혜수가 생각하는 좋은 프로듀싱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곡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우선 아티스트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선결 조건인데 이를 위해 노력한다. 이를테면 아티스트가 사랑을 해본 적이 없더라도 곡의 감정선을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세심한 작업을 진행한다. 


마지막은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김혜수를 음악의 세계로 인도한 인생 음악과 음반 혹은 아티스트를 말해달라.

원더걸스는 나의 뮤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장을 뛰게 만든 K팝 그룹이고 지금의 K팝 기획자인 나로 인도해 준 아티스트다. 리센느를 기획하기 전 선예의 ‘Just a dancer’의 곡을 작곡했었고 실제로 발매가 이루어졌다. 흔히 말해 ‘성덕’이 된 순간이었고 아티스트에게 개인적인 팬심도 전달했다.


또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재즈 피아니스트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의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미국 블루노트 재즈 클럽에서 그분의 마지막 공연을 관람한 적도 있었다. 




진행: 소승근, 손민현, 임선희, 박시훈, 남강민

정리: 박시훈

사진: 임선희


박시훈(sihun66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