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윌슨을 기억하며: 비치 보이스의 영원한 선율 20선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by IZM

2025.06.25


지난 11일,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기간 병마와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들었음에도 막상 접한 별세 소식은 세월을 체감케 했다. 재즈의 시대를 지나 로큰롤과 팝의 문법이 정착한 1950년대부터의 본격 대중음악 역사 속 지대한 영향력을 획득한 거장들의 부고는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이야기의 도래를 알리는 듯했다.


영국에 비틀스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비치 보이스가 있었고, < Rubber Soul >을 꺼낼 때면 이들은 < Pet Sounds >로 응수했다. 그가 없었다면 <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브라이언 윌슨이 남긴 그림자는 짙다. 이즘은 그간의 발자취를 축약했던 이전 특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비치 보이스를 대표하는 스무 곡을 소개하며 그를 기억해 보려 한다. (신동규)



'Surfin' U.S.A.' (1963)

우리나라에 여름을 대표하는 불후의 대명사로 키보이스의 1970년 곡 ‘해변으로 가요’가 있다면, 미국에는 ‘Surfin’ U.S.A.’가 존재한다. 캘리포니아의 이름난 서핑 명소를 열거하며 미 서부의 온습도를 한데 품은 하기(夏期)의 클래식은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올라 비치 보이스에게 첫 번째 한 자릿수 순위를 안겼고, 나아가 당해 연말 차트 최상단에 오르며 1960년대 미국의 이상을 응축한 명실상부 메가 히트곡으로 남았다. 유대인이었던 레오나드와 필 형제가 설립한 체스 레코드의 얼굴이자 로큰롤의 아버지 척 베리가 1958년 발표한 ‘Sweet little sixteen’과의 표절 시비 끝에 저작권을 넘겨야 했으나 이와 별개로 브라이언 윌슨의 노랫말과 동생 칼 윌슨의 연주가 처음으로 봉오리를 틔운 기념비적 작품이다. (신동규)



‘Surfer girl’ (1963)

처음 만든 노래로 빌보드 차트 7위를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슬로우 효과가 걸리며 첫눈에 반하는 장면에 사용될 것만 같은 ‘Surfer girl’은 그의 첫 여자친구를 소재로 가사를 쓸 만큼 로맨틱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이전보다 하모니가 더욱 짙어졌다. ‘Surfin’ U.S.A.’나 ‘Surfin’ safari‘ 같은 초기 곡들은 화음을 메인 멜로디와 분리하거나 후렴에만 사용하지만 ‘Surfer girl’에선 거의 모든 부분에 여러 음정을 쌓아 올렸다. 여기에 자주 사용하지 않던 느린 템포까지 더해지며 초기 비치 보이스 곡 중 뚜렷한 개성을 가진 곡으로 꼽을 수 있다.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예시로 브라이언 윌슨의 남다른 재능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이재훈)



‘Don't worry baby’ (1964)
비틀스를 필두로 한 영국의 문화침략은 비단 미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로큰롤의 압력 속 미국은 비치 보이스를 선택했다. ‘Surfin U.S.A.’의 따스한 서프 뮤직에서 < Pet Sounds >의 실험적 사운드로의 과도기에 탄생한 ‘Don’t worry baby’는 경쟁 속에서 피어난 선율이다. 당시 비틀스에게 부족했던 코러스 하모니를 중심으로 전개한 반격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은 차츰 밴드에 아름다운 화음을 더하기 시작했고, 브라이언 윌슨은 침략자의 예술적 사운드에 동화되어 예술 포화 상태로 들어서게 된다. 배경을 차치해도 윌슨 형제의 하모니로부터 쌓여가는 소리의 벽(Wall of sound)은 성공의 이유를 설명한다. (장대휘)


‘I get around’ (1964)
깔끔한 코러스와 보컬 하모니로 서프 록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비치 보이스에게 즐기지 못할 파도는 없었다. 비틀스가 몰고 온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미국 본토를 빠르게 집어삼키며 록의 대중적 부흥과 자유로운 반문화가 유행 이상의 현상으로 불리던 1964년. 기세를 몰아 질주하던 영국 록 밴드 사이에서도 ‘I get around’는 2주 간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매니저인 아버지 머리 윌슨의 통제에서 벗어나 마이크 러브와 단독으로 작곡한 비치 보이스의 첫 넘버 원은 브라이언 윌슨이 프로듀서로서 주도권을 갖게 된 중요한 기점이다. 실험적인 믹싱 기법과 반전을 주는 구성으로 기존의 라이브 지향적 음악을 탈피한 그의 시도는 ‘무적’ 비틀스에게 라이벌을 선사한 ‘미국의 반격’이었다. 해변의 낭만을 노래한 캘리포니아 사운드는 저물었지만 브라이언 윌슨이 디자인하는 팝 혁신의 태양은 뜨겁게 떠올랐다. (남강민)


‘Fun, fun, fun’ (1964)
‘Surfin’ U.S.A.’의 대성공 이후 비치 보이스는 뿌리를 향해 손을 뻗었고, 1년 뒤 발매한 음반의 첫 트랙에는 블루스의 향기가 짙게 배어있다. 가사와 도입부의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는 척 베리의 ‘Nadine’과 ‘Johnny B. good’에서 소재를 취했고, 초반 화음 구성과 멜로디는 크리스탈스(The Crystals)의 ‘Da doo ron ron’와 닮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빌보드 5위에 오른 데 반해, 영국 차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도 작업 과정 전반에 깔린 흑인 음악의 영향이다. 점차 서프 뮤직의 틀에서 벗어나는 과정 속 ‘Fun, fun, fun’의 구성은 그야말로 ‘재미’있다. (장대휘) 


'When I grow up (to be a man)’ (1964)
비치 보이스의 정규 8집 < The Beach Boys Today! >가 나오는 시점에 브라이언 윌슨은 겨우 23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경험을 겪은 후 드디어 스스로에 대해 얘기하는 ‘When I grow up (to be a man)’은 바쁜 투어 일정과 불안정한 결혼 생활로 지칠 대로 지친 그의 상태가 숨겨져 있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만큼 음악도 기존과 다르다. 정박을 짚어주는 기존의 패턴과 다르게 변칙적인 드럼이 서프 뮤직과 확연히 구분되며 그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한다. 불협화음과 여러 키를 오가는 방식 역시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사용되었으며 복잡한 구성은 그의 음악적 성장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이때부터 이미 < Pet Sounds >의 초석을 다진 브라이언 윌슨은 더 이상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헤엄치기 시작한다. (이재훈)


‘California girls’ (1965)
캘리포니아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자유로운 서프보드와 해변, 아름다운 소녀들이 등장하는 가사로 그려낸 지상 낙원이자 브라스와 하프시코드의 하모니로 정교하게 조립한 현실의 도피처였다. 히피 문화와 사이키델릭 감수성이 태동하던 1965년, 브라이언 윌슨이 LSD를 복용한 후 처음으로 작곡한 ‘California girls‘는 시대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곡이다. 바로크 교향곡의 화려함이 느껴지는 도입부터 구간을 거듭할 때마다 달라지는 리듬, 교차하는 브라스 사이 밀도 있게 음향을 채우는 전기 기타는 전과는 다른 비일상적인 환각과 공간감을 선사한다. 브라이언 윌슨이 설계한 이상향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0년 케이티 페리의 'California gurls'로 계승되어 팝 유토피아의 재건과 시대정신 너머 주체적 향유의 새로운 메시지를 만나기도 했다. 'California girls'는 마치 불변하는 해변처럼 세대를 건너며 살아남은 팝의 유산이다. (남강민)


'Help me, Rhonda' (1965)
동생 칼 윌슨에게 ‘God only knows’와 ‘Darlin’’이 있다면 친구 알 자딘에게는 ‘Help me, Rhonda’가 존재한다. 서핑 문화와 서부의 지명을 연거푸 뱉어내며 서프 록의 선봉장으로 자리매김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장르 획일을 경계하고, 예술 저변을 넓혀가던 과도기에 던져진 곡으로 캘리포니아 사운드의 박동을 유지하면서도 이듬해 발매된 < Pet Sounds >의 예고편으로 볼 수 있을 만큼 탄탄한 매무새가 압권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 해 전 본격 발화한 영국 침공의 여파 속에서, 그 중심축이었던 비틀스를 향한 의식이 얼굴을 드러낸 결과.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내며 화음과 선율에 눈을 맞춘 선택은 끝내 비틀스의 ‘Ticket to ride’를 차트 꼭대기에서 끌어내렸고, ‘I get around’에 이은 이들의 두 번째 넘버원으로 빛났다. (신동규)


‘Barbara Ann’ (1965)
비치 보이스의 원곡은 아니다. 1961년에 발매된 뉴욕 5인조 보컬 그룹 더 리젠츠의 곡을 1965년에 들어 리메이크한 것. 그럼에도 이들의 숱한 명곡 반열에 당당히 한 자리를 꿰찬 이유는 브라이언 윌슨의 탁월한 음악 해석에 있다. 그는 전형적인 두왑 형식의 원곡을 미국 서부의 낙관적인 분위기로 풀어내 비치 보이스식 서프 록으로 탈바꿈했다. 잰 앤 딘의 딘 토렌스와 브라이언 윌슨의 주창을 중심으로 멤버들의 백킹 보컬이 곡조 전반에 경쾌함을 자아내고, 연신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와 통기타의 선율이 이를 배가한다. 서부 해변가의 낭만이 깃든 비치 보이스의 히트곡. (박시훈)


'God only knows' (1966)
비틀스의 < Rubber Soul >이 일깨운 부재의 존재는 결국 < Pet Sounds >를 낳았고, ‘Wouldn’t It be nice’의 B면 트랙으로 출발한 ‘God only knows’는 곧 비치 보이스 예술성의 정점이었다. 불과 45분 만에 매듭지은 브라이언 윌슨의 영적 감각과 토니 애셔의 노랫말은 그 어떤 의미로든 대중음악사의 판도를 바꿨다. 일관된 형식을 깨뜨리고 보컬의 대위와 스무 층 넘게 쌓은 스트링 세션을 앞세우는 동시에 19세기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의 낭만주의 흔적을 여실히 드러낸 선율은 당시로선 꽤나 큰 충격. ‘신(God)’을 곡명에 담기도 어려웠던 시대 탓에 일부 방송에선 출연을 제한받기도 했으나 비정형의 곡선으로 창조한 소리의 가능성은 그것과 별개로 널리 퍼졌다. 가히 ‘모든 것이 담긴 단 하나의 곡’. 영화 < 러브 액츄얼리 >의 삽입곡 정도로만 알고 있기에는 그대와 눈을 맞추지 못한 수많은 미학이 여전히 넘실거린다. (신동규)


‘Good vibrations’ (1966)
경쟁의식이 일으킨 물결은 이내 기분 좋은 떨림을 선사할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비틀스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에 다시 한번 자극을 받은 브라이언 윌슨은 치열한 랠리를 이어갈 반격을 도모했다. 그는 그간 다져온 혁신적 녹음 기술로 머릿속에 떠다니는 영감의 조각들을 제련해 한 곡에 녹여냈다. 천재성이 폭발한 이 한 방은 차원이 달랐다. 풍성함을 더하는 관현악과 아름답게 퍼지는 보컬 하모니가 소리의 두께를 확보했고, 박자와 분위기의 예상치 못한 전환과 클래식같이 서서히 고조되는 점진적 전개는 대중음악에도 ‘진보적(Progressive)’이나 ‘전위적(Avant-garde)’ 같은 수식이 가능함을 일깨웠다. 브라이언 윌슨의 모든 것이 담긴 마스터피스. 앨범에 < Pet Sounds >가 있다면 싱글에는 ‘Good vibrations’가 있다. (박수석)


‘Sloop John B’ (1966)
명곡의 탄생 배경에는 멤버 알 자딘의 공로가 컸다. 그는 브라이언 윌슨에게 미국 민속 음악의 비치 보이스 화를 제안했고 심지어 원곡의 구성까지 변경하는 등 기나긴 설득을 통해 < Pet Sounds >의 일부로 수록하는 것에 일조했다. 서프 록의 종언이자 스튜디오 녹음의 혁신을 선보인 작품에서 ‘Sloop John B’ 역시 일반적인 변형을 거부한 채 브라이언 윌슨만의 변용과 변칙을 거듭하여 만들어졌다. 여러 차례의 녹음 과정을 기반으로 한 각양각색의 악기와 효과음의 결합. 그의 비범한 시도가 만들어낸 복잡한 음악 세계에 비치 보이스의 화음은 구심점이 되어 세상에 없던 예술을 일궈냈다. 정교함의 극치를 달한 광인의 결실이다. (박시훈)  


‘Wouldn't it be nice’ (1966)
달콤한 꿈이 고독 속 끊임없는 사투 끝에 탄생했다. 1965년 브라이언 윌슨은 공연 중단 선언 후 스스로를 스튜디오 안에 가뒀고 < Pet Sounds >와 함께 돌아왔다. 초입을 장식하며 빌보드 차트 8위에 오른 ‘Wouldn’t it be nice’는 아름다움 속 광기가 도사린 반전 트랙이다. 여러 악기로 채운 경쾌한 멜로디와 비치 보이스 최대 강점인 화음으로 순수한 애정을 그려내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로큰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조성 변화, 점진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리타르단도 활용에선 실험적인 면모도 드러난다. 사운드의 이상향을 구현한 바탕은 광적인 집착. 한 구절을 30번 넘도록 집요하게 녹음한 탓에 보컬 마이크 러브는 그를 ‘스튜디오의 스탈린’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그 과정이 하모니의 정수를 만들어냈다. 낭만적인 사랑을 향하면서도 각고의 노력을 칭송하는 찬가다. (정하림)


‘Heroes and villains’ (1967)
< Pet Sounds > 이후 또 다른 혁신을 예고한 작품 < Smile >은 브라이언 윌슨에게 닥친 일련의 정신적 시련 끝에 미완의 상태로 남게 되었으나 < Smiley Smile >(1967)로 그 명맥을 이어갔다. 첫 포문을 여는 ‘Heroes and villains’가 이 장엄한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서부 개척 시대의 서사로 빚어낸 한 편의 뮤지컬. 여러 테마가 오가는 변칙적인 구성 위로 비치 보이스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곡조에 깃든 복합적인 감정선을 조율하여 이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비록 예술에 대한 그의 광적인 집착은 공들인 녹음본 폐기 처분과 과도한 제작비를 야기했고 나아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과를 이루진 못했지만,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명곡으로 ‘Heroes and villains’는 기억된다. (박시훈)


'Darlin'' (1967)
슈가 베이브 출신의 야마시타 타츠로가 사운드트랙을 맡아 호쾌한 성적을 거뒀던 1984년 서핑을 주제로 한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 Big Wave >. 음반의 B면에는 투박한 영어 발음과 함께 ‘Darlin’’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그의 오리지널 곡으로 알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소재에 맞춘 선택일 뿐 원곡은 비치 보이스가 < Pet Sounds > 이듬해 발매한 열세 번째 앨범 < Wild Honey >에 담겨있다. 국내에선 ‘An old fashioned love song’과 ‘Joy to the world’로 사랑받은 미국의 록 밴드 쓰리 도그 나이트에 선물하려 했다는 곡은 마이크 러브의 권유 끝에 칼 윌슨의 목소리로 남았다. 브라이언 윌슨의 건반과 당대 유수의 브라스 세션이 어우러진 호흡에 올라탄 알앤비 문법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역작이다. (신동규)


‘Wild honey’ (1967)
자유와 평화, 사랑의 시대. 히피들이 물들인 ‘사랑의 여름’과 비틀스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는 끝없는 예술을 추구하던 비치 보이스에게까지 침투했다. 반전 사상의 영향 속에서 탄생한 ‘Wild honey’는 시대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자유분방하게 음계를 넘나드는 테레민과 오르간에서 드러나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기존과 차별화된 블루지하고 하드 록적인 보컬의 조화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그에 올라탄 걸작을 탄생했다. 새로운 파도에 잠식당하는 게 아닌, 그에 맞는 물결을 일으켰다. (장대휘)


‘Do it again’ (1968)
이들의 뿌리가 서프 음악이라는 사실은 공고하다. 오랜 친구와 서핑을 즐긴 마이크 러브의 하루에서 자의식을 되새긴 브라이언 윌슨은 ‘Do it again’을 통해 해변가로 귀환한다. < Pet Sounds >와 같은 새로운 시도로 누적된 피로를 단순하고 익숙한 구성으로 해소하겠다는 본능적인 시도다. 분명 바다와 따사로운 햇볕이 생각나는 멜로디지만 표면이 거칠다. 코러스를 지탱하는 두왑(Doo-wop)에 맹렬한 일렉트릭 기타, 금속 질감의 드럼 연주로 당시 유행하던 록과 접점을 형성한 프로덕션이다. 그 결과 본고장이 아닌 영국에서 ‘Good vibrations’에 이어 한 번 더 1위에 등극했고 이후엔 에릭 카멘, 아바 등 많은 아티스트의 영감이 되어 영향력을 발산했다. 촘촘한 소리가 만든 물결에서 여유롭게 유영하던 과거와의 재회이자 반가운 정상으로의 복귀를 상징하는 곡이다. (정하림)


‘I can hear music’ (1969)
브라이언 윌슨의 인생곡을 꼽자면 ‘Be my baby’(1963)가 아닐까. 필 스펙터가 제작한 걸 그룹 로네츠(The Ronettes)의 이 히트곡을 온종일 듣기도 했다고 하니 그에게는 일종의 ‘바이블’이나 다름없었다. ‘I can hear music’도 로네츠의 원곡을 비치 보이스가 리메이크한 것이지만 정작 브라이언은 신경 쇠약과 약물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제작에 참여하지 못했다. 형의 빈 자리를 채운 것은 동생 칼 윌슨. 풍부한 화음에 가리지 않고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미성은 기교와 감성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이 곡이 수록된 < 20/20 >부터 메인 프로듀서로 나선 칼의 고군분투 없이는 1961년부터 해체 없이 이어온 비치 보이스의 역사도 진작 끊겼을지 모른다. (박수석)


'Rock and roll music' (1976)
1957년 체스 레코드에서 발매한 척 베리의 ‘Rock and roll music’은 로큰롤 시대의 정점을 천명한 일종의 비석이자 ‘그 음악은 이런 것이다’를 직접 선보인 효시였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배 밴드에게는 필수 관문.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한창이던 1964년 말에는 비틀스의 목소리로 유럽을 흔들었고, 1976년 여름에는 비치 보이스의 손길로 영속을 이어갔으니 그 사이 자리 잡은 수많은 로커들이 받은 영향은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원곡과 약 스무 해 정도 벌어진 만큼 시류에 발을 맞춘 신시사이저 활용과 중독성 강한 리프 구축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5위를 차지. 브라이언 윌슨이 떠나기 전 완전체 비치 보이스의 마지막 불꽃이자 희미해진 로큰롤 정통성을 재소환한 역사였다. ‘Just let me hear some of that Rock and roll music / any old way you choose it’ (그저 로큰롤 음악을 들려줘 / 어떤 방식이든 좋으니) (신동규)


'Kokomo' (1988)
의도치 않은 수미상관, 유종의 미. ‘Surfer girl’, ‘Surfin’ U.S.A.’, ‘California girls’ 등 직관적인 제목으로 서프 록의 얼굴을 자처하던 비치 보이스가 무려 22년 만에 탈환한 마지막 넘버원이자 곧 최후의 히트곡으로 그들을 바닷가로 재소환하며 하절기 강자의 징표를 다시금 쟁취했다. 동시대를 풍미한 마마스 앤 파파스의 멤버 존 필립스와 1967년 히피를 등에 업고 반문화 운동권의 찬가로 불리며 4위까지 올랐던 ‘San Francisco’의 주인공 스콧 맥켄지와의 협업이었다. 비록 브라이언 윌슨이 그룹을 떠난 뒤였지만 말이다. 다소 평이한 구성과 이전까지 보여준 실험정신에 미치지 못한 결과물은 호불호를 낳았으나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 칵테일 > 사운드트랙에 실려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와 함께 차트 최상단을 집어삼켰다. 퇴장마저 아름다웠던 낭인의 뒷모습이었다. (신동규)



이미지 제작: 박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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