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스 앤 로지스 내한 기념! 다시 돌아보는 팝 메탈 20팀
1987년에 나온 건스 앤 로지스의 데뷔작이자 아메리칸 하드록 걸작 < Appetite For Destruction >은 “Bigger, Louder, Faster(더 크고, 시끄럽고, 빠르게!)”를 외치며 1980년대 초중반 우후죽순 솟아났던 팝 메탈 집단들을 잇달아 굴복시켰다. 심지어 천하의 머틀리 크루도 무릎을 꿇어야 했던 이 유아독존 공룡 밴드 덕에 1980년대 미국 메탈은 그런지 폭풍전야의 화양연화를 알렸다. 2009년 첫 내한과 달리 밴드의 한 축과도 같은 톱 햇과 깁슨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참여는 2024년 12월 잉베이 맘스틴 서울 콘서트와 더불어 8090 메탈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놀랍게도 건스와 동 세대 비슷한 부류의 메탈 집단들이 각종 온라인 포럼에서 담론화되는 중이니, 이거 예삿일 아니다.
헤어메탈과 글램메탈, 해당 밴드의 근거지에서 기인한 LA 메탈까지 용어가 중구난방이다. 데이비드 보위나 티렉스의 글램 록과 키스와 에어로스미스 풍 하드록의 영미의 경유와 융합 덕에 소리도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우나 “비주얼과 대중적 소리를 강조한 메탈 뮤직” 정도로 이해하면 편리하다. 장발에 진한 아이라인과 위아래 쫙 붙는 가죽 소재 착장의 록스타들이 공연장과 뮤직비디오 안에서 활개 치고, 주제도 여자와 술 등 원초적 쾌락주의를 삼았다. 지금에 와선 옛스럽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더욱 소중한 그 시절 추억의 팝 메탈 오션에 빠져보자. (염동교)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너바나가 대표하는 그런지 록의 붐이 일기 전까지 빛나던 팝 메탈은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부서진 보석이 됐다. 하지만 워낙 크기가 컸기에 파편마저 찬란했으며, 그중 단연 돋보이는 조각은 건스 앤 로지스다. 빼어난 외모로 마초적인 반항아 기질의 음악을 구사하며 연주와 노래 실력마저 출중한 인물들이 소구력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슬래시의 화려한 기타 리프는 물론이고, 액슬 로즈의 무대를 울리는 강한 보컬과 청중을 울리는 섹시한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은 알 것이다. 그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졌는지.
‘건스’와 ‘로지스’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발화(發火/發花)한다는 것. 피어오르는 향취를 가진 팀 이름처럼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발화(發話)되어 오르내린다. ‘Sweet child o’ mine’, ‘Welcome to the jungle’의 에너제틱한 격동부터 감동을 선사하는 프로그레시브 록 ‘November rain’, 심지어는 밥 딜런을 커버하는 등 메탈의 범주에만 국한되지 않는 유연함을 지닌 덕분이다. 한 밴드가 연주하는 수많은 소리가 오랜만에 인천에 울려 퍼질 5월, 건스 앤 로지스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입증할 순간이 될 것이다. (정기엽)
추천곡: ‘Sweet child o’ mine’, ‘Welcome to the jungle’, ‘November rain’, ‘Paradise city’, ‘Patience’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
1980년대 미국 서부의 숱한 LA 메탈 밴드 중에서도 머틀리 크루의 이름엔 무게감이 실린다. 리더이자 작곡을 담당한 만능 베이스시스트 니키 식스, 박진감을 부여하는 드러머 토미 리, 강렬한 연주와 넘실대는 그루브가 특징인 기타리스트 믹 마스, 특유의 거친 음색을 팝적인 멜로디로 소화한 보컬리스트 빈스 닐까지 이들의 사운드는 강한 소구력을 기반으로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점령했다. 날 선 에너지가 두드러진 ‘Shout at the devil’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Girls girls girls’는 그룹의 스타일을 대표한 히트곡이었고 감성적인 록발라드 넘버 ‘Home sweet home’은 바다 건너 한국의 라디오 애청곡이기도 했다. 앨범 판매량의 고공행진 또한 그룹의 위상을 방증한다.
금방이라도 연소될 것 같은 에너지를 분출했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갖춘 장수 밴드다. 프로듀서 밥 록과 합심해 만든 역작 < Dr. Feelgood >은 빌보드 1위라는 영광과 더불어 온갖 스캔들로 뒤덮인 그룹의 상황을 타개한 한 방이었다. 메탈이 죽어가던 1990년대 대중음악 시류 속에서도 기세는 흔들렸지만 기조를 잃지 않았다. 셀프 타이틀 < Mötley Crüe >를 비롯한 다음 음반들 역시 빌보드 앨범 차트 상위권에 안착하여 그룹의 건재함을 과시했고 2008년 작 < Saints Of Los Angeles >도 베테랑 록 밴드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도합 1억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린 위대한 성과엔 자신들만의 색채를 펼쳐온 우직함이 존재한다. 풍운아를 넘어선 팝 메탈 대부의 위엄이다. (박시훈)
추천곡: ‘Shout at the devil’, ‘Looks that kill’, ‘Girls girls girls’, ‘Home sweet home’, ‘Dr. feelgood’
데프 레퍼드(Def Leppard)
팝 메탈의 기수라는 수식어처럼 데프 레퍼드는 메탈의 새로운 부흥기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AC/DC의 프로듀서 존 머트 랭이 참여하기 시작한 2집 < High ‘N’ Dry >부터 부상한 그들은 3집 < Pyromania >에서 팝과 메탈 사이의 완벽한 균형점을 찾으며 장르를 정의했다. 다중 트래킹 녹음 기법을 통해 풍성한 사운드를 구현한 < Pyromania >는 미국 내 판매량만 1000만 장 이상을 기록하며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팝 메탈 자체의 황금기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다.
뛰어난 두 앨범의 연타석 득점 이후 시련이 찾아왔다. 드러머 릭 앨런은 교통사고로 왼팔을 절단했지만 본인의 굳은 의지와 멤버들의 기다림으로 다시 일어섰다. 총 판매량 2500만 장 이상을 기록한 4집 < Hysteria >는 3년이 넘는 재활과 녹음의 고통을 극복한 순간이다. 불가피했던 드럼의 여백을 기타와 화음으로 채우는 변화를 통해 싱글 7곡이 모두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했다. 사운드와 성적 모두 훌륭하지만 결국 어떤 역경도 끝내 이겨내는 모습이 데프 레퍼드를 아이콘으로 만든 진정한 이유. 결성부터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까지, 고난 속에서도 함께였기에 팝 메탈의 유니언 잭을 한 팔로 들고 있어도 무겁지 않다. (이재훈)
추천곡: ‘Photograph’, ‘Pour some sugar on me’, ‘Love bites’, ‘Rock of ages’, ‘Foolin’’
스키드 로우(Skid Row)
목소리를 듣고 한 번 얼굴을 보고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지인의 결혼식에서 노래하는 세바스찬 바흐를 보자마자 이 팀의 공석에 추천했다는 일화가 과장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폭발적인 샤우팅과 반항적인 무대매너, 화려한 비주얼을 가진 당대 로커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특출난 외모까지. 스타성으로 무장한 보컬을 앞세운 이들은 1989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 Skid Row >로 화려하게 무대에 올랐다. 미국 내에서만 약 5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1집에 이어 1991년 < Slave To The Grind >는 발매 직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까지 점령하며 매서운 기세를 이어갔다.
인기 요소만큼이나 대중성과 개성을 겸비한 음악적 역량도 뛰어났다. 대중적으로는 ‘18 And life’, ‘I remember you’, ‘Wasted time’ 등의 록 발라드 넘버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2집에서는 공격적인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를 활용해 차별점을 만들었다. 사회적 이슈를 다룬 가사도 쾌락으로 점철된 당대의 음악과 궤를 달리한 부분. 비행 청소년 문제, 약물 중독처럼 무거운 소재를 노래하며 드러나는 고뇌는 곧 찾아올 그런지의 음울함과 맞닿아 있기도 했다. 너바나가 가져온 얼터너티브 시대의 개막 직전에 등장해 유의미한 활동이 길진 않았지만 그만큼 짧고 굵게 끝을 장식한 팝 메탈 최후의 불꽃 같은 밴드였다. (박수석)
추천곡: ‘18 And life’, ‘I remember you’, ‘Youth gone wild’, ‘Monkey business’, ‘Slave to the grind’
신데렐라(Cinderella)
등장과 동시에 뜨거웠다. 이름뿐 아니라 팀의 위상마저 팝 메탈 신의 공주 자리에 올려놓았던 데뷔 앨범 < Night Songs >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 3위에 안착했다. 성대를 갈아 넣는 듯한 톰 키퍼의 허스키한 보컬과 제프 라바의 과격한 퍼포먼스가 그 동력이었다. 컨트리와 블루스 기반의 사운드로 전작과 차별점을 지닌 후속작 < Long Cold Winter >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고 사운드 진보에만 매몰되지도 않았다. ‘Don’t know what you got (Till it’s gone)’, ‘Gypsy road’와 같은 히트곡들도 배출하며 대중과의 거리를 가깝게 유지했다.
따스한 봄이 올 줄만 알았지만 ‘길고 추운 겨울’ 뒤에는 더 혹독한 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밴드를 지탱하던 톰 키퍼의 성대 파열로 시작된 균열이 결국 밴드의 붕괴로 이어졌다. 금발의 일렉트릭 기타가 세계를 지배했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짧은 전성기였음에도 메탈 시대의 흐름에 맞닿은 이들이 남긴 족적은 팝 메탈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불꽃처럼 타오른 신데렐라의 구두 자국은 여전히 깊고 선명하다. (장대휘)
추천곡: ‘Don’t know what you got (Till it’s got)’, ‘Nobody’s fool’, ‘Shake me’, ‘Somebody save me’, ‘Gypsy road’
콰이엇 라이엇(Quiet Riot)
스물다섯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가 있었다. 이름은 랜디 로즈. 오지 오스본의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약하며 헤비메탈 연주의 새 지평을 연 공신이었다.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던지라 그의 시작점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출발은 1973년 직접 결성한 콰이엇 라이엇이었다. 일본 시장을 대상으로 두 장의 음반을 발매했으나 잇따라 실패를 맛보며 1979년 결국 랜디 로즈는 팀을 떠나 상기한 밴드로 향했다. 그렇게 삼 년 동안 모든 걸 불태우던 그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충격의 여파는 고향에 남아있던 밴드 멤버들을 결속했다. 그렇게 추모곡 ‘Thunderbird’를 담은 세 번째 앨범 < Metal Health >를 완성. 1960-70년대 활약한 영국 글램 록 밴드 슬레이드의 ‘Cum on feel the noize’를 커버한 것이 빌보드 싱글 차트 5위에 오르며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나아가 음반은 미국에서만 육백만 장이 넘게 팔리며 앨범 차트 정상에 올랐다. 헤비메탈 장르로는 최초의 일이었다. 이만한 영광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들이 일으킨 고요한 폭동은 단순 팝 메탈의 초동을 넘어 헤비메탈 역사의 굵직한 하이라이트로 남았다. (신동규)
추천곡: ‘Cum on feel the noize’, ‘Thunderbird’, ‘Metal health (Bang your head)’, ‘Mama, weer all crazee now’
워런트(Warrant)
국내 인지도는 낮아도 팝 메탈의 마지막 성화(聖火)를 이어받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밴드다. 다소 늦은 데뷔인 1989년, 첫 앨범 < Dirty Rotten Filthy Stinking Rich >의 파워 발라드 ‘Heaven’, ‘Sometimes she cries’가 빌보드 싱글 차트 각 2위, 20위에 달하여 그 시절 밴드의 정통 과업을 무사히 완수해 나갔다. 그러나 상승 기세를 몰던 이들에게 닥친 시련이 있었으니 컬럼비아 레코드가 “데프 레퍼드의 ‘Pour some sugar on me’ 같은 싱글이 필요해!”라며 2집 발매를 반려한 것이다. 이에 리드 보컬 자니 레인이 15분 만에 써 내려간 결과물이 바로 ‘Cherry pie’다.
빌보드 10위라는 성적보다 더 기억에 남는 노골적인 뮤직비디오가 MTV를 장악하면서 ‘Cherry pie’는 대중의 뇌리에 깊이 인각되었다. 물론 호재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잦은 매체 노출로 비난의 대상이 된 워런트는 찰랑거리는 머리를 비하하는 장르명, 헤어 메탈(Hair Metal)의 전형이라며 야유를 받았다. ‘Uncle Tom’s cabin’, ‘I saw red’와 같은 준수한 음악은 고정관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몇 달 뒤 등장한 시애틀 그런지에 밀려 고군분투 끝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후발주자임에도 여타 양산형 밴드와 달리 피상에 머물지 않았지만, 유일무이한 상업적 히트곡에 실력이 가려진 비운의 팀. (임선희)
추천곡: ‘Cherry pie’, ‘Heaven’, ‘Down boys’, ‘I saw red’
스트라이퍼(Stryper)
해외 유수의 헤비메탈 밴드의 최초 국내 수용소식은 당시론 쇼크였다. "스트라이퍼가 우리나라에 온다고? 정말?" 그 장르의 고유어인 사탄, 죽음, 비정상을 퇴치한다는 명분 아래 기독교 신앙을 설파하는 건전 밴드였기에 이 땅에의 상륙이 가능했겠지만 본고장 메탈 굉음을 접한다는 것은 일대 기회였다. 1989년 3월25일, 스탠딩 객석은 광기로 팽배했다. 시작과 동시에 관중의 무분별 무대 난입과 아수라장(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치밀었다). 공연 중단. 사회를 본 DJ 김광한의 진정 멘트, 무서운 함성, 끝내는 성대한 종료. 당시 KBS TV 청춘 쇼 프로 ‘젊음의 행진’은 안전한 편집구성으로 특집 방영, 토픽을 장식했다.
크리스천 메탈로 불렸어도 그 순간 공포에 대한 강박은 가열 차고 매끈한 팝 메탈 연주와 함께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들이 레전드임은 04년인가 05년인가 섬세한 글을 썼던 이즘 필자 윤석진이 서울 종로의 한 록 카페에서 'To hell with the devil’을 라이브로 독창, 역창, 열창했을 때(가히 역대급 메탈 명창) 다시금 실감했다. ‘맞아, 스트라이퍼가 있었지..!!!' 당대 무수한 메탈 키드의 전폭적 성원 아래 혼탁했을지 모를 메탈의 독기는 정돈을 거듭해 국내 메탈 정착에 박차를 가했다. 어쩌면 스트라이퍼는 한국 헤비메탈의 한 표정일지도 모른다. 불타는 격정, 무차별 맹공, 수려한 연주 그리고 대중과의 선한 동행 의지. (임진모)
추천곡: ‘To hell with the devil’, ‘Honestly’, ‘Free’, ‘Always there for you’
파이어하우스(Firehouse)
커트 코베인을 위시한 얼터너티브 록 진영은 팝 메탈의 정기를 빼앗았다. 1990년대의 시작과 맞닿은 역사의 흐름이었다. 1991년 너바나의 < Nevermind >는 새 시대의 비관 찬가가 되었고, 의도적으로 빛을 멀리하는 군중의 이정표로 기능했다. 이러한 대안적 급풍에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는 시애틀에서 시류를 같이 하던 동료 밴드 앨리스 인 체인스와 함께 하드 록/헤비메탈 신인상 부문에 후보로 지명했다. 그러나 트로피는 이들의 몫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파이어하우스. 예상치 못한 이변이었고, 그것은 곧 팝 메탈 최후의 외침이었다.
부담 없는 미성과 친절한 멜로디는 말라가는 계보를 잇기에 충분했다. 발라드 넘버 ‘Love of a lifetime’과 ‘When I look into your eyes’는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5위와 8위에 올라 저력을 뽐냈고, 대중성에 기댄 메탈 트랙 ‘Reach for the sky’는 정체성을 과시하며 국내 라디오에서도 곧잘 흘렀다. 꼬박 일 년 전, 보컬 씨제이 스네어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파이어하우스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추억만을 남겨둔 채 그토록 염원하던 팝 메탈의 마지막 불꽃이자 영광의 흔적으로 박제되었다. (신동규)
추천곡: ‘Love of a lifetime’, ‘When I look into your eyes’, ‘Reach for the sky’, ‘Don’t treat me bad’, ‘I live my life for you’
도켄(Dokken)
연주 실력이 좋은 1980년대의 팝 메탈 밴드들 중에서도 도켄의 연주력은 상위권이다.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들어맞는 보컬리스트 돈 도켄, 기타리스트 조지 린치, 베이시스트 제프 필슨, 드러머 믹 브라운이 만들어낸 음악은 1980년대 활동했던 수많은 팝 메탈 밴드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Unchained the night’, ‘In my dreams’, ‘Dream warriors’, ‘Burning like a flame’, ‘Breaking the chains’, ‘Kiss of death’ 같은 명곡을 포함해 국내에서 애청된 처연한 록발라드 ‘Alone again’까지 도켄의 노래들은 인기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찍지는 못했지만 마치 무림고수처럼 메탈 팬들의 웅대한 지지를 받았다.
호사다마는 음악계에도 존재한다. 인기가 높아지고 명성이 쌓일수록 돈 도켄과 조지 린치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끓어올랐고 음악 방향에 대한 이견은 돈 도켄과 조지 린치에겐 돌이킬 수 없는 불화의 씨앗이 됐다. 결국 조지 린치는 팀을 탈퇴해 자신의 밴드 린치 맙을 결성해 영원히 봉합되지 못할 것 같았지만 과거의 영광에 대한 추억과 미련 그리고 세월은 모든 것을 녹이고 봉합한다. 평행선을 달리며 각자 꾸준하게 음악활동을 해온 두 사람은 2010년대부터 조지 린치가 도켄의 공연에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해 지금까지 그룹 도켄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다. (소승근)
추천곡: ‘Unchained the night’, ‘Alone again’, ‘In my dreams’, ‘Breaking the chains’, ‘Dream warriors’
트위스티드 시스터(Twisted Sister)
뒤틀리고 반항적인 만큼 진솔하고 부끄러움이 없었다.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와의 대립을 뮤직비디오에도 직접적으로 녹여내며 10대들의 호응을 끌어낸 그들은 새로운 MTV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무려 10년이 넘는 무명 시절을 보내며 앨리스 쿠퍼, 키스, 뉴욕 돌스 등 선배들의 음악과 비주얼을 토대로 본인들만의 메탈을 연마하던 트위스티드 시스터는 1984년, 3집 < Stay Hungry >를 통해 반항적인 틴에이저들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록을 향한 애정과 열망으로 소리치는 'I wanna rock', 억압적이고 지루한 기성세대에 맞서는 반항의 송가 'We're not gonna take it' 등 비주얼과 퍼포먼스는 다소 코믹하고 과했으나 속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진지하고 솔직했다.
그들의 유명세에 부모는 기겁하고 자식은 열광하는 세상이 되자, 보컬 디 스나이더는 1985년 9월 19일, 학부모음악조사센터(PMRC)가 주도한 상원의 청문회까지 참석하게 된다. 수많은 정장차림 사이에서 혼자 찢어진 청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등장한 그는 표현과 사생활의 자유에 관해 연설하며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을 만들었다. 그들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것은 검열과 억압이 아닌 또 다른 트렌드였고, 결국 1988년에 공식적인 해체를 알렸다. 짧은 전성기였지만, 그들의 정신만큼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팝 메탈의 영원한 아이덴티티다. (김태훈)
추천곡: ‘We’re not gonna take it’, ‘I wanna rock’, ‘The price’, ‘Leader of the pack’
나이트 레인저(Night Ranger)
팝과 메탈, 그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기준을 끊임없이 고민한 밴드. 신명 나는 LA 메탈의 전형을 들려주던 이들은 그 흥을 능가하는 출중한 실력으로 1980년대 록 신을 지켰다. ‘사이키델릭 솔’을 개척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색소폰 주자 제리 마티니가 이끌던 루비콘의 해체가 곧 탄생 신호탄이었다. 이곳의 멤버였던 베이스 잭 블레이즈, 드럼 켈리 키기, 기타 브래드 길리스를 주축으로 먼저 키보디스트 앨런 피츠제럴드를 데려왔다. 신의 한 수는 제프 왓슨의 영입! 그는 여덟 손가락을 활용한 태핑으로 마니아들을 흥분시키며 팀의 시그니처인 더블 기타리스트 체제를 완성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발매한 1982년 데뷔작 < Dawn Patrol >의 ‘Don’t tell me you love me’를 탑 40에 올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듬해 나온 2집의 록 발라드 넘버 ‘Sister Christian’이 5위로 기세를 이었고 밤의 대원들은 미국을 팝 메탈로 물들였다. 최고 기록에도 불구하고 밴드에게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록 스피릿을 견지하던 팀의 의지와는 달리 당시 레이블이던 MCA의 간섭과 함께 이미지는 팝으로 기울었고, 절충안을 찾지 못한 채 유행은 끝나버렸다. 파워레인저로 통칭하는 < 공룡전대 쥬레인저 > 방영 덕인지 전성기가 끝났음에도 나이트 레인저는 1990년대 일본에서 명맥을 유지했고 최근에는 연륜을 살려 다시 야간 경계를 늘리고 있다. (임동엽)
추천곡: ‘Don’t tell me you love me’, ‘Sister Christian’, ‘Goodbye’, ‘Sentimental street’, ‘Four in the morning’
화이트 라이온(White Lion)
동 세대 팝 메탈 밴드들에 비해 상업적 성과는 뒤졌지만 존재감은 남부럽지 않았다. 이젠 냄새 쾨쾨한 < Pride > 라이선스 LP와 “메탈뉴스” 같은 1990년대 메탈잡지에 한창 메탈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던 음악감상실은 586세대의 물리적 추억. 무채색 금속성의 킹 다이아몬드, 프로그레시브 메탈 로얄 헌트와 더불어 덴마크 메탈의 대들보로 우뚝 선 마이크 트램프와 동양적 외모에 헤드리스 기타로 외견부터 남다른 비토 브라타의 보컬-기타부터 기세가 대단했다.
브라타가 기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Lady of the valley’와 트램프의 절절한 가창으로 국내 애정 지수가 압도적인 록 발라드 ‘When the children cry’, 화끈한 드라이브감의 ‘Wait’까지 1987년도 2집 < Pride > 포스는 앨범 아트 속 백사자의 눈빛처럼 맹렬하다. 금세 퇴색하지 않고 1989년 작 < Big Game >으로 한 번 더 치고 나간 게 이들의 미덕. 반 아프르트헤이트 메시지로 팝 메탈 밴드로는 드물게 사회성까지 내포한 ‘Cry for freedom’과 ‘Little fighter’ 등 외려 < Pride >보다 견고한 음악으로 장르의 여명기를 장식했다. 현재 마이크 트램프의 화이트 라이온(Mike Tramp’s White Lion)이란 이름으로 팝 메탈 유산을 흩뿌리고 있다. (염동교)
추천곡: ‘When the children cry’, ‘ Wait’, ‘Little fighter’, ‘Cry for freedom’
밴 헤일런(Van Halen)
신기에 가까운 태핑 주법의 기타와 전 세계를 홀린 신시사이저, 일견 양극단에 존재할 듯한 두 악기는 밴 헤일런이란 이름 아래서 함께 빛을 발했다. 가히 혁명적이었던 연주곡 ‘Eruption’과 히트 싱글 ‘You really got me’가 수록된 데뷔작 < Van Halen >의 헤비메탈에서 시작하여 훗날 위대한 뮤직비디오와 전주의 중독적인 루프로 온 지구를 흔들어 놓기까지 밴드의 행보엔 크고 깊은 발자국들이 남아 있다. 이들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군림한 데에는 주축 에디를 포함한 밴 헤일런 형제들 사이에서 금발을 휘날리며 존재감을 과시한 데이비드 리 로스의 비주얼도 한몫했다.
탄탄대로를 걷던 밴 헤일런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 두 가지였다. 메탈의 육중한 무게를 경량화할 것, 그와 동시에 번뜩임을 잃지 않을 것. 음반 수록을 두고 벌어진 난상토론 끝에 세상에 나온 ‘Jump’는 결국 양쪽을 모두 잡고 팝 메탈의 시대를 열었다. 에디 밴 헤일런 표 기타의 압도적 영향력 밖에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명곡의 한 방이었다. 이후 새미 해이거로 보컬이 교체되며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역시 잠시뿐, 'Why can't this be love’와 ‘Can’t stop loving you’를 비롯한 이 시기의 인기곡은 그룹이 건재함을 알리는 데 충분했다. 그런지 시대가 도래한 1995년에도 끝끝내 < Balance >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며 ‘VH’ 심볼의 날개는 20년 가까이 펄럭였다. (박승민)
추천곡: 'Jump', 'Why can't this be love', 'Can't stop loving you', When it’s love‘ ‘Dance the night away’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
화이트스네이크는 팝 메탈의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딥 퍼플의 보컬로 이름을 알린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지휘하에 헤비메탈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들은 1980년대 초 연이은 글램 스타일의 성공 가도에 올라타 음악 신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에 정면으로 맞섰다. 새로 입은 옷은 곧잘 어울렸다. 6집 < Slide It In >의 풍성한 신시사이저와 리드미컬한 기타, 그에 걸맞은 관능적 외모의 멤버들로 반향을 일으키며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특히 1987년 < Whitesnake >의 공이 크다. 1982년 원곡을 편곡한 ‘Here I go again’과 록 발라드 ‘Is this love’의 파격적인 뮤직비디오가 MTV를 강타하며 1980년대 팝 메탈의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다.
성공의 연속에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멜로디를 리드하는 커버데일의 보컬과 기타리스트 중심의 탄탄한 음악성이 있었다. 미키 무디의 블루스 스타일 기타 슬라이드, 대표곡을 탄생시킨 버니 마스덴, 존 사이크스의 터프한 피킹과 리프, 실험적 테크닉의 정수 스티브 바이. 이들의 정교한 기타 연주로 밴드는 진한 헤비메탈 ‘Still of the night’부터 대중적인 ‘The deeper the love’까지 무게와 유려함의 균형을 이뤘다. 화이트스네이크에 깃든 정통성은 록의 미학을 추구한 계승 정신이며 팝으로 승화하는 유연함은 시대에 대한 통찰이었다. 30명이 넘는 거물급 아티스트를 길러낸 팝 메탈의 요람, 곳곳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행보는 역사의 중심에 똬리 튼 영광의 흔적이다. (남강민)
추천곡: ‘Here I go again’, ‘Is this love’, ‘Slide it in’, ‘Still of the night’, ‘Fool for your loving’
본 조비(Bon Jovi)
팝이라면 응당 애절한 발라드였던 20세기 후반 한국에서도 본 조비만큼은 예외였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보컬 존 본 조비의 외모와 이를 세계로 송출할 MTV의 역할도 컸겠지만, 역시 위대한 곡이 핵심이다. 폭렬하는 메탈 사운드에 사랑을 대입한 'You give love a bad name'과 쾌청한 고음의 'Livin' on a prayer' 모두 시공간을 지배한다. 굵직한 멜로디로 장르의 취약점을 돌파한 대표 음반 < Slippery When Wet >를 포함해 상업적 성과와 차트 성적 열거가 무의미할 정도. 아이돌 밴드를 뒤따르는 소녀 군단의 열광에 메탈 제일주의자들은 코웃음 쳤을지라도 그 비난의 세기만큼 이번 리스트에선 대표 자격이 주어졌다.
역사는 작년 40주년을 맞은 이 밴드의 공고한 지위를 사회적인 의미와 역할로 더욱 부각한다. 팝의 오명을 뒤집어쓴 록의 대표 반역자가 되었을지라도 접점을 크게 넓히고 세대와 성별을 섭렵해 공연장으로 이끈 측면에서의 가치를 크게 인정한 것이다. 데뷔곡 ‘Runaway’부터 드러나는 친숙함의 근원은 건반 사운드, 그리고 다른 밴드의 향락적인 지향과 다른 쉽고 일반적인 노랫말이었다. 한국 맞춤형 록 발라드 'Always'가 수록된 베스트 앨범 < Cross Road >의 신화부터 21세기 마지막 불꽃 'It's my life' 등 오래도록 타오르는 생명력까지. 진정한 의미로 인기가요를 생산한 ‘대중 메탈’의 오랜 당사자다. (손민현)
추천곡: 'You give love a bad name', 'Livin' on a prayer', ‘Always’, ‘Runaway’, ‘Bed of roses’
윙어(Winger)
사하라 사막처럼 거대한 꿈을 안고 도약해 짧지만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윙어의 전성기 시절 활동기간은 약 6년이었고, 팝 메탈의 황금기에 맞춰 데뷔한 후발주자였으나 뛰어난 연주와 탄탄한 곡 구성, 그리고 선명한 멜로디를 통해 MTV의 틴에이저들을 자신들의 앞으로 불러 모았다. 밴드의 주축인 킵 윙어는 본래 발레를 전공하며 클래식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으나 앨런 파슨스의 음악을 접한 뒤 록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1985년 앨리스 쿠퍼의 밴드에 합류해 경험을 쌓은 그는 1987년에 자신의 밴드 사하라를 결성했고, 곧 이름을 윙어로 변경해 비상을 준비했다.
1988년 데뷔작 < Winger >를 통한 그들의 첫 비행은 성공적이었다. 중독성 강한 기타 리프와 훅 포인트를 가진 'Seventeen'은 지금까지도 대표곡으로 남아 있고, 클래식 전공답게 아름다운 키보드 선율과 약간의 프로그레시브적 구성으로 신선하고도 황홀한 감상을 선사한 'Headed to the heartbreak'는 그들을 절대 저평가할 수 없는 핵심적인 이유다. 다음 앨범 < In The Heart Of The Young >은 더욱 정교한 구성과 감성적인 코드를 강화하며 음악적 황금기를 맞았지만, 그들의 멋진 고공비행은 새로운 세대가 도래하면서 다소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X세대에게는 앞 세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으나, 그만큼 그들은 팝 메탈의 황혼기가 찾아왔음에도 강렬하게 포효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김태훈)
추천곡: ‘Seventeen’, ‘Headed for a heartbreak’, ‘Miles away’, ‘Easy come easy go’, ‘Madalaine’
래트(Ratt)
래트의 전성기는 완벽에 버금갔다. 도켄을 거쳤던 명인 조지 린치와 더불어 헤어메탈 기타리스트 최고봉 중 하나로 거론되는 앙팡테리블 워런 디마티니와 그를 뒷받침하는 숨은 주역 로빈 크로스비는 당대 최고의 투 기타를 구축했고 인디언 부족장처럼 생긴 보컬리스트 스티븐 피어시의 카리스마도 남달랐다. 뛰어난 연주와 악곡은 래트에게 데뷔 앨범과 소포모어 앨범의 2연속 빌보드 200 7위를 안겨줬으며 ‘Round and Round’와 ‘Back for more’, ‘Lay it down’같은 히트곡을 배출했다. 키스의 비주얼과 주다스 프리스트의 금속성을 결합한 용맹한 생쥐군단(Rat)은 흠잡을 데 없는 헤어메탈의 표본이었다.
토니 키탠과 마리안느 그라바트 등 당대 모델과 여배우를 담은 뇌쇄적 앨범 아트와 순도 높은 구성, 상기한 세 곡의 히트곡까지 데뷔작답지 않은 1집 < Out of the Cellar >와 전곡이 알찬 < Invansion Of Your Privacy >가 절정기. 무채색 커버에 더욱 진중하고 다부진 소리를 구현한 1986년도 3집 < Dancing Undercover >과 나머지 1980년대 작품들도 모두 빌보드 앨범 차트 30위권 진입으로 자존심을 지켰고 메탈 전성기와 동떨어진 2010년에 내놓은 컴백 앨범 < Infestation >도 호평받았다. 여러 부면에서 걸출했던 “나성(羅城) 5인조”는 왠지 모르게 투박했던 외모만 더 받쳐줬더라면 머틀리 크루와 자웅을 겨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염동교)
추천곡: ‘Round and round’, ‘Lay it down’, ‘Back for more’, ‘You’re in love’, ‘Dance’
포이즌(Poison)
기본 소양은 다 갖췄다. 치렁치렁한 머리, 쾌락주의에 흠뻑 젖은 가사, 아드레날린을 극한으로 채우는 기타 리프… 다만 외모가 비교적 곱상했다. MTV의 전성기와 팝 메탈 르네상스의 한가운데서 포이즌은 리드 보컬 브랫 마이클스를 주축으로 중성적인 외형과 함께 ‘글램’의 성격을 부각, 쟁쟁한 밴드에 꿀리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9위까지 올라간 ‘Talk dirty to me’로 시작해 총 여섯 곡을 Hot 100 차트 탑 텐 안에 집어넣었고 미국 내에서만 1,0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다.
잔소리하는 사장에 직원이 반항하는 ‘Nothin’ but a good time’의 뮤직비디오처럼 기성세대에게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야한 말을 해달라’는 첫 히트곡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제목부터 음흉한, 최고 히트작인 1988년 < Open Up And Say… Ahh! >는 아트워크 검열까지 겪었다. 그러는 동시에 진지했다. 핵심 멤버 씨씨 데빌 외에도 훗날 미스터 빅에서 활약하는 리치 코젠 등 깊은 내공의 기타리스트가 팀을 거쳤으며 빌보드 4위에 오른 ‘Something to believe in’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를 소재로 삼기도 했다. 유일한 1위 싱글이 서정적인 발라드 ‘Every rose has its thorn’인 것도 포이즌의 반전 면모를 보여준다. 뾰족한 가시 뒤에 감수성을 숨긴 팀이었다. (한성현)
추천곡: ‘Talk dirty to me’, ‘Nothin’ but a good time’, ‘Every rose has its thorn’, ‘Unskinny bop’, ‘Something to believe in’
유럽(Europe)
스웨덴 출신 유럽은 신시사이저 하나로 짧고 굵게 전 세계를 평정했다. 줄곧 헤비메탈을 유지했으나 2집 < Wings Of Tomorrow > 이후 영입한 키보디스트 마이크 미카엘리가 두각을 나타내며 팝 메탈 황금기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Carrie'는 서정적인 선율에 조이 템페스트의 호소력 짙은 보컬을 더해 당시 대표 파워 발라드 넘버로 자리매김했고, 마지막으로 차트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Superstitious’도 건반 중심의 단순한 구성이 돋보인다. 록 사운드로 주목받은 다른 밴드와는 달리 택한 대중적인 노선이었다.
사실 ‘The final countdown’ 하나로 설명이 끝난다. 원래는 콘서트 오프닝 곡 정도로 쓰이고 말 예정이었지만 에픽 레코즈의 싱글 발매 제안이 이들의 운명을 뒤바꿨다.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 가사에서 영감을 받은 트랙은 장중한 멜로디를 내세워 1985년 25개국에서 1위를 달성했다. 2020년대 신곡을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노래로 기억되는 이유는 과거 영광이 남긴 잔향이 그만큼 깊기 때문. 결의에 찬 웅장한 멜로디 속 끝나지 않는 카운트다운은 지금까지도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며 밴드의 명맥을 잇는다. (정하림)
추천곡: ‘The final countdown’, ‘Carrie’, ‘Superstitious’, ‘Rock the night’, ‘Open your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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