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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al Thinking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2025

by 김태훈

2025.02.18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본래 음악은 고통의 몸부림이자 어둠 속의 외침이었다. 약 30년 전, 기타리스트 리치 제임스가 황폐한 삶을 향해 마지막으로 던진 분노의 파이프밤 < The Holy Bible >은 거대한 크레이터를 남겼다. 이후 파괴자는 모습을 감췄고, 예기치 않은 작별에 의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남은 멤버들은 움푹 파인 구덩이에 아름다운 음률의 담수를 채웠다. 그 과정의 반복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를 치유했고 새로운 폭발을 일으킬 힘을 얻었지만, 최초의 화염구가 남긴 충격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21세기의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같은 자리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는 호수가 되었다. 충격적인 탄생 설화가 존재하지만, 당장 보이는 모습은 그저 고요할 뿐이다. 15번째 앨범 < Critical Thinking >은 그 고즈넉한 호수를 휘저은 결과물이다. 밑바닥의 흙 속에 파묻혀 있던 과거의 잔해물들이 물 위로 떠오르며 하나의 작품이 됐다. 그 모습은 세련되거나 깨끗하진 않지만, 오로지 그들의 영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시간예술이다.


분노와 성찰의 잔해로 만든 도화지에 20세기 후반 영국 록 사운드의 물감을 흘린다. 인트로 'Critical thinking'은 현대 사회에 관한 비판적인 연설을 내뱉는 가사와 선명한 기타 리프가 강렬하고 웅장한 파형을 이루는 곡으로 블러의 < Parklife >처럼 경쾌하고 냉소적인 브릿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1990년대의 향취는 그저 오프닝일 뿐, 그들은 시간을 더 거슬러 내려간다.


첫 트랙을 지나자마자 1980년대 뉴웨이브의 뼈대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Decline & fall'은 신시사이저 위주의 멜로디를 중심으로 경쾌하게 질주하는 구성에 쇠퇴와 몰락이라는 키워드를 담은 가사를 담아 씁쓸하고도 찬란한 입체적 감상을 남긴다. 'People ruin painting' 역시 진실의 파괴라는 아픔을 노래하지만, 멜로디에는 온기가 있고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의 기타 리프는 황홀하다. 이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공허감과 슬픔을 전하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전통적인 장기에 과거 음악을 향한 그리움이 추가로 녹아있는 형태다.


'Dear Stephen'은 모리세이에 관한 애정을 담은 스토리텔링과 아름다운 잔향을 통해 더욱 직접적으로 과거를 지향하고 추억한다. 용감했던 친구를 그리워하는 'My brave friend'는 리치 제임스에게 바치는 헌정곡의 성격이 짙다. 이처럼 앨범은 대체로 회고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는 극복과 상승의 순간들로 가득하다. 비판적인 사고와 감성적인 회상으로 힘을 얻은 그들은 마지막 트랙 'Onemanmilitia'에 이르러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격한 분노를 쏟아내고 후련하게 연주를 마친다.


< Critical Thinking >은 1980년대의 노스탤지어에 전작 < The Ultra Vivid Lament >와 마찬가지로 아바(ABBA)가 떠오르는 멜로디, 클래시컬한 기타 솔로로 무장해 2007년작 < Send Away The Tigers >와 2014년작 < Futurology >를 이을 만한 빼어난 완성도를 지닌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만의 아이덴티티를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이를 충실히 수행했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의 파괴적 혁신이 등장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증명한다. 리치 제임스가 남기고 간 사상을 계승하는 아름답고도 날카로운 록 음악이라는 정체성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지만, 시간은 흘러버렸고 음악과 사회는 변했다. 이에 따라 그들의 21세기 작품들은 그저 음악적 반복과 비슷한 의미를 담은 말들의 되풀이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번 작품 역시 그 존속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에게는 새롭게 변하거나 그만둘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과거의 음악적 유산에서 벗어나지 않고, 세상을 향해 꾸준히 일침을 가하며, 무대에서는 항상 리치 제임스의 자리를 비워 놓는다. 이 모든 행위들은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오지 않은 이상,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어쩌면 그들이 지금까지 걷고 있는 음악의 길은 떠나간 친구를 위한 기다림 혹은 속죄의 순례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존재 여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종착지를 향한 고행의 걸음이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수록곡-

1. Critical thinking 

2. Decline & fall [추천]

3. Brushstrokes of reunion

4. Hiding in plain sight

5. People ruin painting [추천]

6. Dear Stephen 

7. Being baptised

8. My brave friend [추천]

9. Out of time revival

10. Deleted scenes

11. Late day peaks

12. Onemanmilitia

김태훈(blurryday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