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박 인터뷰

존박(John Park)

by 한성현

2025.02.14

“데뷔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존박 씨가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비결이 뭘까요?” 존박은 이 질문에 스스로를 “밈(meme) 부자인 덕분”이라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훤칠한 외모와 달리 방송에서 보여주는 순진한 표정과 엉뚱한 대사, ‘냉면 애호가’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꾸준히 회자되고 있으니까. 다만 그는 앞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음악의 영향은 조금 적은 것 같고요...”

작년 10월 발매된 < Psst! >의 의미는 존박의 이름 앞에 ‘음악가’ 수식어를 아로새겼다는 것에 있다. 호평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아티스트 스스로가 굉장한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갑작스레 함박눈이 내리던 날 만난 이즘도 긴 세공의 시간을 거쳐 선보인 두 번째 정규 앨범에 집중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다가도 제작 과정과 음반에 대해 말할 때면 총기와 뿌듯함이 가득했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사이에 여러 싱글과 EP < Outbox >(2021)가 있긴 해도 11년 만에 내는 정규작이라니, 텀이 너무 길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걸렸나?
일단 음악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 노래 하나 제작하는 게 굉장히 힘들기도 했고, 작사도 회사 선배인 이적이나 김동률 같은 아티스트와 자꾸 비교하게 되어 욕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음악 업계가 정규 앨범을 특별히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다 보니 미뤄진 면도 있다.

공백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 Psst! >에 대한 호평이 두루두루 많았다. 본인은 앨범을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평가는 평범하지 않은, 근래 스타일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결과 색이 들어간 덕분이라 생각한다. 목소리와 팝 사운드는 국내 가수 중에서 내가 잘 구현하는 편이 아닐까 하는 자부심이 있는데, 이러한 점이 홍소진 프로듀서를 만나 극대화된 시너지로 완성될 수 있었다.

우리 회사 대표님의 말도 기억난다. “여태까지 성규(존박 본명)가 만든 음악 중에 가장 성규다운 음악인 것 같다.” 다만 여기에 “한국에서 히트하기는 어렵겠다”는 얘기를 덧붙이셨다. (웃음) 그래도 방향을 잘 파악한 느낌이라는 칭찬을 들어서 뿌듯했다.

확실히 존박의 재지한 보컬은 남들이 구사하기가 쉽지 않은 고급진 멋이 있다.
내 목소리가 그런 재즈 성향이라는 것을 자각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만 해도 소울과 알앤비를 주로 들었고, 크면서도 제이미 컬럼이나 노라 존스, 에이미 와인하우스, 마이클 부블레 등 컨템포러리 재즈 뮤지션을 좋아했지 정통파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나중에 프랭크 시나트라를 들은 정도.

그런데 무대를 서면서 조금 달라졌다. < 열린음악회 >같은 곳에서 고전적인 재즈 넘버를 오케스트라나 빅밴드 구성에 맞춰서 커버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이 종종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서서히 내 보컬 스타일을 자각했다. 그리고 재작년부터 캐롤 음악을 부르면서 겨울과 재즈를 나에게 잘 맞는 키워드로 발견할 수 있었다.



앨범을 공동 작업한 프로듀서 홍소진은 어떤 사람인가.
베테랑 피아니스트이자 재즈 밴드 마스터다. 아이유, 크러쉬, 권진아 등 쟁쟁한 아티스트의 공연을 담당한 라이브 편곡의 실력자라서 펑키한 잼 스타일, 즉흥적인 멜로디에 강점이 있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콘텐츠에 나가서도 그가 이끄는 밴드와 합을 맞추기도 했고, 그 외에도 세션으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몇 번 연이 생기다 보니 이 사람이라면 앨범에서 하고 싶은 장르를 다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같이 제작하게 되었다.

프로듀서도 잘 만났지만 존박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음반이라 더욱 뜻깊을 것 같다.
과거에는 믹스에 참석은 했어도 주도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 음반은 홍소진 프로듀서와 김동민 기타리스트, 이청무 엔지니어와 함께 넷이 밤을 새워서 작업했다. 파트너들이 다양한 악기를 가져와서 각종 버전을 들려주면 내가 디테일한 지식은 없어도 귀로 판단해 방향성을 정하는 식이었다.

제작에 있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어떤 것인가? 또 들으면서 알아주길 바라는 요소가 있다면 말해달라.
귀를 사로잡는 것보다 편안한 분위기에 중점을 뒀다. 음악이 보컬보다 앞에 있어도 좋다고 직접 말했을 정도로 그런 무드가 주안점이었다. 그리고 앨범에 대해서는, 그냥 존박이라는 뮤지션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점만 전해지면 좋겠다.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한글보다는 영어가 편하다고 말했음에도 직접 전체 한국어로 작사한 ‘같은 마음 다른 시간’의 가사가 좋아서 놀랐다.
고생이 정말 많았다. 영어 작사는 그냥 쓰고 고치고의 연속인 반면 한글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려면 영어에서 한 번 해석을 거쳐야 했다. 영어로 단어를 던진 다음에 한글 단어를 이리저리 대입하기도 하고, 어색하게 들리는 부분을 꼼꼼히 찾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힘들게 나온 노래다.

사실 이번 활동의 히트곡은 따로 있지 않나. KBS < 더 시즌즈-이영지의 레인보우 >에 출연해 부른 에스파의 ‘Whiplash’ 커버에 대한 반응이 엄청났다.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다. 작가 측에서 재밌게 커버할 음악이 없냐고 묻길래, 마침 ‘존이냐박이냐’에서 부른 것이 생각나 짧게 부르게 되었다. 딱히 뭔가를 노린 전략은 아니었는데 주변에서도 언급을 많이 해주더라.


< Psst! >에도 ‘Stutter’라고 비슷한 곡이 있다. 하우스 리듬 기반이라 느낌이 어느 정도 유사한데.
‘Stutter’는 홍소진 프로듀서가 “에라 모르겠다”라는 말과 함께 보낸 데모로 시작한 트랙이다. 들어보니 내 평소 모습과 전혀 다른 스타일이라 오히려 관심이 가서 멜로디를 붙여 보면서 묵혀 두다가, 파리 클럽 뒷골목에서 나올 법한 노래를 만들어볼까 하면서 아이디어가 더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스텔라장에게 나레이션을 요청했다. 해당 파트를 받고 나니까 비로소 편곡과 멜로디, 가사가 다 완성될 수 있었다.

꽤 도전적인 시도다. 만족도는 어떤가? 가사의 의미도 궁금하다.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앨범에 넣어도 되나 싶었는데 안 될 거 뭐 있겠나? 약간 튀긴 해도 재밌게 들을 사람들이 있을 테니 과감하게 수록했다. 가사는 영화 < 그녀(Her) >(2014)처럼 SF가 가미된 사랑 이야기다. 요즘 사람들 간의 만남이 깊이가 있기보다는 짧게 반복된다는 말이 많은데 그런 것이 소재였다. 누군가와 서로 사랑하는 관계일 때 컴퓨터가 렉이 걸리듯 말을 더듬는 것을 표현한 제목이다.

싱글로 먼저 공개한 ‘Vista’와 ‘Bluff’도 평이 좋았다.
‘Vista’는 늦여름에 드라이브하며 듣기 좋은 곡이다는 생각에 먼저 냈다. 김동민 기타리스트가 작곡한 트랙으로 평소 감각처럼 연주와 인트로가 굉장히 특이한 곡인데, 그분이 아껴뒀던 것을 듣고서 살을 발전시켜 봐야겠다 싶어서 멜로디를 붙였다. 개코와 따마의 피처링도 있어서 심적으로도 든든했다.

앨범 오프너이기도 한 ‘Bluff’는 나와 제일 잘 맞는다고 느낀 곡이다. 가장 나답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이라 그 자리에 실렸다. 홍소진 프로듀서가 코드를 돌리면서 연주하다가 내 입에서 첫 가사 ‘I threw your things out the window(네 물건들을 창밖으로 던졌지)’가 자연스레 나왔고 그 멜로디와 문장이 곡의 정체성이 되어서 전체 가사도 하루이틀 만에 완성했다. 역시 빨리 만든 곡이 잘 나오는 듯하다.

그렇다면 본인이 앨범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트랙은 무엇인가?
‘Somebody better’. 정말 마음에 들어서 여러 버전을 녹음한 곡이지만 너무 아껴서 오히려 잘 나오지 못한 노래이기도 하다. 브루노 메이저처럼 담백한 톤을 생각한 것과 달리 정작 나는 예쁘게만 부르려고 애를 썼고 지금도 성이 안 차서 지워버리고 싶은 일종의 아픈 손가락이다. 그래도 최근 유튜브 콘텐츠로 일본 삿포로에 가서 다른 커버 곡 사이에 내 오리지널 트랙으로 이 노래를 딱 하나 끼워 넣었는데, 그때 독백하듯이 편하게 부른 버전이 스튜디오 레코딩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이번 앨범이 존박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2025년에는 새로운 음악을 꾸준히 만나볼 수 있을까?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싱글로 노래 하나를 잘 계획해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할 음악’, 그러면서도 ‘존박만이 할 수 있는 음악’ 두 가지는 확실하게 가져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존박의 인생 음반을 알려달라.
첫 번째는 보이즈 투 멘의 < II >(1994). 중학교 때 이 음반을 처음 듣고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알앤비를 향한 사랑과 기교 모두 보이즈 투 멘에게 전수받았다.

두 번째는 조금 의외의 픽일 수도 있다. 바로 ‘Geek in the pink’가 있는 제이슨 므라즈의 < Mr. A-Z >(2005). 멜로디는 쉽지만 가사를 참 기가 막히게 쓰는 아티스트다. 그의 앨범 하나만 뽑자면 이 작품이다.

마지막은 제이미 컬럼의 < Catching Tales >(2005). 재즈 피아노와 자유로운 보컬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앨범이다. 이 음반을 듣고 나 잘한다고 뽐내던 존박이 즉흥성과 애드리브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터뷰: 임진모, 한성현, 손민현, 임동엽, 염동교, 정기엽, 박승민, 신동규
사진: 뮤직팜엔터테인먼트 제공
정리: 한성현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