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올해의 국내 싱글

by IZM

2024.12.08



야속할 정도로 K팝이 거의 모든 음악적 담론을 흡수한 1년이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록의 부흥, J팝의 거센 물살, EDM의 부활 등등... 매년 대중적 상징성과 음악적 완결성 사이에서 저울을 재는 이즘의 국내 싱글 결산도 그리하여 올해는 전자에 조금 더 가중치를 배분했다. 2024년 가요계 타임캡슐로 마련한 열 곡을 공개한다.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한성현)




규빈, 김종완 ‘Special’
청명, 청초, 청아하다 등 긍정적으로 쓰이는 ‘청’자 돌림 수식이 모두 규빈의 목소리에 어울린다. 푸른 하늘을 연상케 하는 보컬은 이미 활동 20년이 넘는 기성 뮤지션 김종완과 붙어도 제 풀을 쉽게 꺾지 않는다. 앞서 개코 등 힙합 거물과의 콜라보로 선보인 알앤비와는 다른 부드러운 록을 꺼내들며 소화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힌다. 움츠러들지 않는 기세, 그 젊음의 특권을 쥐고 자신의 음색이 활보할 초원을 광활하게 다진다.


전 세대를 대상으로 불안을 쓰다듬는 2006년생 어린 가수의 목소리가 특별하다. 불행에 잠식되어가는 세상이라도 피를 쥐어짜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전히 대중이 손을 뻗는 건 힘을 북돋아 주는 음악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마치 온갖 역경을 딛고 피어난 꽃을 보듯 뭉클한 웃음을 짓게 하는 음색의 존재가 가치를 발한다. 따스한 위로가 시원한 기타 리프에 담겨 퍼지며 스무 해를 건넌 두 가수의 성공적인 교류를 알린다. (정기엽)




데이식스 ‘Welcome to the show’ 

그저 열심히, 차근차근 달려온 데이식스였다. 그룹 전체로나 개인으로나 성실하게 음악을 발표하며 우직하게 노래했고 이들의 착실함을 뒤늦게 깨달은 대중 덕분에 ‘예뻤어’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이 본격 역주행의 축복을 받았다. 봄맞이를 목전에 둔 3월에 들고 나온 복귀작 ‘Welcome to the show’의 결과는 마지막 남은 1도 상승, 임계점 도달이다. 얇아진 얼음층을 완전히 녹이고 폭발적 개화를 이루며 아는 사람들만 얘기하던 그룹에서 모르는 사람들도 찾는 팀으로 올라선 것이다.


변화를 곁들였기에 승격은 더욱 뜻깊다. 4인조로의 첫 정식 발걸음을 디딘 이들은 지난 음악적 기조였던 J팝/록의 영향이 K팝 전체에 안착한 시점에서 오히려 브릿팝과 스타디움 록으로 갈아타며 리부트를 완수, 제2막을 성대하게 올렸다. 어딘가 삐딱함이 공존하던 옛 모습이 흐려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역으로 데이식스가 새롭게 내건 ‘무해함’이 한국 밴드 신의 반격과 ‘붐’의 구체화에 일조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대학 축제와 야구장 심지어는 결혼식까지, ‘Welcome to the show’가 끊임없이 우리를 반겼던 2024년은 그야말로 모든 곳이 데이식스의 쇼였다. (한성현)




리센느 ‘Love attack’

데뷔 첫해 쏘아 올린 아찔하리만치 몽환적인 축포다. 첫 두 싱글 ‘Uhuh’와 ‘Yoyo’가 대략적인 청사진을 짜는 역할이었다면 ‘Love attack’은 앞선 긍정적 흐름에 쐐기를 박았다. 기선 제압을 도맡은 인트로의 일렉트릭 기타, 랩 파트를 번갈아 장식하는 베이스라인 및 펑키(Funky)한 리프, EDM 스타일의 빌드업은 정교하게 맞물려 피날레를 향해 길을 내어준다. 이어 멤버들의 꿈결 같은 목소리가 겹겹이 쌓여 폭발하는 순간 2024년 K팝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코러스가 탄생했다.


이를 두고 ‘중소돌의 기적’이라는 익숙한 수식어를 앞에 붙이기 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중독성에 치중한 휘발적 훅이 만연한 지금, 많은 이들의 고려 대상에서 뒷순위로 밀렸던 뚜렷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는 그 옛날 모두가 추구해 왔던 것이 아니던가. 과거의 가치에 현대의 세련미를 엮어낸 산물은 그래서 더욱 남다르다. 여성 아이돌 그룹에서 뛰어난 곡이 유독 많이 나왔던 올해 리센느는 사각지대를 노려 고유의 영역을 확보했다. (박승민)




비비 ‘밤양갱’

설 시즌이란 찐 신년벽두에 발표한 그 타이밍부터 음악인구로 하여금 노동과 잡념을 떨쳐내고 잠깐이라도 새해의 시작이 주는 집단무의식적 환희에 자신을 맡기도록 유도했다. 그러려면 애초에 순수 또는 충분히 허락할 수준의 유치함 같은 ‘간지러운’ 정서를 의도해야 했고 쉽고 깜찍하고 상쾌한 후크를 대두해야 했다. 솔직히 곡의 진행과 코러스 대목에서 비비의 발음은 귀엽다 못해 앙증맞다. 음원차트 싹쓸이는 놀라웠지만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불쑥 다른 차원의 미학인 ‘상다리가 부러지고/ 둘이서 먹다 하나가 쓰러져버려도’ 같은 구세대 어법 동원도 장기하만의 고유 수법. 그런 개입으로 젊은 층의 감성 독점을 저지하면서 ‘요즘 세대의 작은 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수 비비 이미지의 일대 전환도 성공요인. ‘아주 그냥 나쁜 X, 미친 X/ 내 머리칼을 오려가 그대 자식을 입혀도..’로부터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으로의 변화는 빅뱅급 갱신이다. 아무리 비범죄 안일지언정 뭔가 결딴낼 듯한 19금 도발적 자유보다는 어린이처럼 옹알이하고 부드럽게 투정하는 게 대중적 수용 측면에선 우월하다. 여기에다 장기하를 원점에 두고 벌인 것 같은, 비슷한 시점에 출시한 아이유 신곡과의 한판 승부는 가장 치명적 토픽으로 솟아올랐다. 다수가 참새방앗간에 갇혔고 실제 밤양갱을 폭발적으로 소비했다. 여전사에서 마스코트로의 둔갑, 호기를 감춘 연민에 찬 이별 고백, 사랑과 보복이란 서사의 연상 등 가지치기가 빈발했던 곡. 잠깐 숨돌릴 사람들이 이 곡 주위로 몰려 들었다. (임진모)      




(여자)아이들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Tomboy'의 성공신화 이후 (여자)아이들의 행보는 스스로 세운 '크고 화려한' 걸크러시의 허들을 넘어서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간택을 받아 만개한 주인공은 쨍한 은빛 스포트라이트 사이 가려져 있던 ‘작고 소박한’ 들꽃 하나였으니.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일명 ‘아딱질’의 기적은 그룹 뿐 아니라 올해를 대표하는 히트 넘버로 자리 잡았다. 초호화 뮤직 비디오나 별다른 홍보조차 없었음에도, 곡의 진가를 알아본 이들에 의해 천천히 입소문을 타며 마침내 여러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차트 정상을 밟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남다르다.


많은 이들의 지지 선언 속에 공감과 치유의 숨결이 담긴다. 먼저 귀를 간질이는 산뜻한 선율과 은은하게 드러나는 록 사운드가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데려다 놓는다. 이에 순도 높은 한글 노랫말로 일상을 그리고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풀어낸 전소연의 작사가 몰입을 배가한다. 이 순간 어떠한 풍파에도 굴하지 않을 요지부동의 여왕 이미지는 때로 함박웃음을 짓고 한껏 여린 면을 보이기도 하며 인간미를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로 거듭나게 된다. 올해의 키워드이기도 한 '이지 리스닝' 유행에 쐐기를 박은 결정타. 지금만큼은 '퀸 네버 크라이'가 아닌 '퀸 캔 크라이'를 외치고 싶다. (장준환)




영파씨 ‘Ate that’

힙합을 쉽게 용해할 응용 함수는 없을까, 랩의 공식을 K팝에 거부감 없이 대입할 묘수는 없을까. 두 장르 사이 태어난 혼혈 혈통 영파씨는 이 문제의 접근법 자체를 즐긴다. 'Xxl'로 뉴욕을 훑은 이들이 지구본을 살짝 돌려 서부를 지목, 여름을 탄 지펑크 'Ate that'으로 힙합-K팝 크로스오버 방정식을 구현했다. 피리 소리같은 신시사이저나 까마득한 선배들의 구절 필사 등 서부 힙합 개념 도식화는 귀여운 오마주 정도지만 두 장르 변수의 공통 분모를 꿈과 진정성으로 정의하고 랩을 상수로 둔 것은 영파씨만의 독창적인 풀이다.


‘클래식’을 등에 업은 소녀들이 도출한 또 다른 긍정적 결과 값은 시간과 세대의 종적 연결과 화합이다. 시대 교류의 가능성마저 희미해진 요즘, 음악만이 행할 수 있는 기적이다. 아이돌 세계에 익숙한 신세대는 부드럽게 현지화된 열대 음악이라는 탄탄하고 독특한 레트로 답안에, 20세기를 반추하는 지지자들은 영파씨가 열심히 익혀온 해답 풀이와 각주에 고개를 끄덕이며 화합의 장에서 조우한다. 수십 년의 세대 차이는 묵직한 랩과 아기자기한 플로우 사이에서는 무의미. K팝 시상식과 힙합 페스티벌에 동시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은 피상적인 콘셉트에 당연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진심을 스핏(Spit)한 결과다. (손민현)




에스파 ‘Supernova’

'Supernova'는 에스파를 K팝 유니버스에서 가장 단단하고도 화려한 별로 만든 2024년 최고의 초신성이다. 날카로운 일렉트로닉 힙합 사운드와 묵직한 베이스 리듬, 드럼 비트가 충돌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동안,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공전하며 고유의 빛을 발산한다. 기존에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과한 요소들이 모두 소멸하니, 강렬하고도 안정된 행성의 자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단번에 우연한 계기로 이룬 성공이 아니다. 단계적으로 차분하게 매듭을 풀고 광야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EP < My World >부터 < Drama >까지, 강렬한 금속음과 부드러운 터치의 밸런스를 조절하며 여러 차례 연구한 끝에 도출한 최고의 성과다. 이를 기점으로 에스파는 흔들리지 않고도 더욱 거대한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뻗어나갈 수 있는 강한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 (김태훈)




엔믹스 ‘Dash’

여러 장르가 떠다니는 믹스팝이라는 바다 위, 다채로움과 번잡함의 경계에서 표류하던 엔믹스에게 ‘Dash’라는 달가운 바람이 불었다. 베이스 라인과 퍼커션 리듬을 강조한 올드스쿨 힙합과 팝 펑크(Pop Punk)를 교차하며 정체성은 유지하되 부각할 점과 생략할 점을 명확히 구분한 선택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철저한 계산과 빈틈없는 설계로 만들어진 이 쾌활한 ‘질주’는 엔믹스가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선물했다.


저지대에서 유영하는 베이스와 과거를 헤집는 타악을 믿고 평소보다 과한 래핑을 첨가한 뒤, 균형을 잡기 위해 고음이 아닌 화음을 택한다. 덕분에 오늘날의 Y2K 유행과 접점을 공유하며 현세대에게는 새로운 자극을, 당시를 기억하는 이에게는 ‘신선한 익숙함’이란 기분 좋은 아이러니를 안겼다. 모든 멤버가 빼어난 가창 실력을 자랑하는 그룹인 만큼 강약 조절과 완급 조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며 시시각각 변하는 장르적 요소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묵직한 뜀박질로 신년을 열어젖힌 엔믹스, 그들이 지나간 발자국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신동규)




지코, 제니 ‘Spot!’

‘아무노래’나 틀던 지코가 ‘새(삥)’ 노래로 2024년에 커다란 ‘점(Spot!)’을 찍었다. 2년 터울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며 자신의 히트곡 메이킹 능력을 기분 좋게 과시하던 그가 힙합의 인기가 사그라든 이때 다시 한번 재기 발랄한 곡으로 돌아왔다. 그의 음악적 지향이 빛나는 대중 감각과 절묘하게 만났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통통 튀는 사운드와 생동감 넘치는 가사지만 눈에 띄는 점은 제니의 재발견이다. 


2018년 ‘Solo’, 2023년 ‘You & me’와는 다르다. 단단하고 힘 있는 보컬에 놀라움이 먼저 다가온다. 솔로 활동 6년 만에 이제야 발에 맞는 신을 신었다. 그룹 시절의 화려한 팝 음악에서 느끼지 못했던 매력이 속도감과 리듬감 넘치는 비트에서 제대로 피어올랐다. 이는 ‘Mantra’까지도 이어진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지만 블랙핑크는 흩어져도 멋지게 살 수 있음을 제니 또한 멋지게 증명하고 있다. (임동엽)




투어스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놀랍게도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가 제목이 아니다. 검색창에서 원제목보다 먼저 뜨는 초강력 후렴구는 순식간에 인터넷과 차트를 휩쓸었다. 단순한 구성, 귀에 쏙쏙 박히는 하이라이트가 데뷔곡으로는 이례적 수준의 메가 히트로 이어졌다. 작년 라이즈의 ‘Get a guitar’가 보이 그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면, 올해 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는 판도와 흐름을 바꿨다. 스테디셀러지만 한동안 뜸했던 청량 남돌의 부활이었다.


쉽고 친근한 노랫말 역시 흥행을 도왔다. 빨리 말 걸어보고 싶은 상대와의 첫 만남, 그 간질간질한 설렘과 긴장을 실감 나게 표현하며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덕분이다. 더구나 첫 만남을 소재로 한 곡이 데뷔곡이라니. 다분히 중의적인 해석과 감상을 염두에 둔 스토리텔링이었다. 갈수록 케이팝에 영어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모처럼 우리말 위주의 가사였다는 점도 풋풋한 정서를 그리는 데 주효했다. 투어스와 대중은 그렇게 산뜻한 첫 만남을 가졌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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