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아가씨 60주년

이미자

백영호

by 임진모

2024.10.16

대중가요 100년의 역사에서 사적 가치를 부여받아 확고부동한 위상을 지닌 곡들 가운데 현대로의 도약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로 치면 단연 으뜸은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 ‘동백아가씨’일 것이다. 이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이후의 김민기(양희은)의 ‘아침이슬’,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등과 더불어 ‘최고의 대중가요’ 관련 어떤 설문조사와 앙케트에서도 언제나 최 상위를 호령하는 이 곡의 의미는 ‘국내 음반 산업과 시장의 시작점’이라는데 있다.


음반이 LP 형태로 바뀌어가던 이때 지구레코드사의 고 임정수 사장은 생전 “‘동백아가씨’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제대로 된 음반사를 차릴 수 있었다”고 술회하곤 했다. 음반사의 체계 확립은 곧 음반시장의 도래로 연결되고 음악이 산업화의 면모를 갖추게 됐음을 가리킨다. 묘하게도 같은 해 영국의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해 서구 음반 산업의 폭발을 견인한 것처럼 국내에선 ‘동백아가씨’를 계기로 레코드 시장이 우리 삶에 불쑥 솟아오른 것이다. 



이미자와 백영호


음반 산업과 시장의 시작 


노래는 주요 매체 라디오를 완전 잠식했고 사람들은 애절하고 티 없이 맑은 이미자의 무(無)가공 절창 얘기로 꽃을 피웠다. 누군가는 “매일매일 전국이 뒤집어지는 상황”이라고 격하게 표현했다. 이미자는 순식간에 ‘엘레지의 여왕’으로 등극했고 곡을 쓴 백영호는 당대 특급 작곡가로 비상했다. 고 백영호는 “그때 술집에 가기만 하면 주인이 술값 대신 ‘동백아가씨’ 음반 한 장 구해달라고 사정사정했다”는 회고로 그 센세이션을 전한 바 있다. 



부산 근현대역사관의 '동백아가씨' 60주년 특별기획전을 찾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사진 왼쪽은 고 백영호의 장남 백경권씨.


‘동백아가씨’가 올해로 발표 60주년을 맞았다. 가요 한 세기 속의 기념비가 아닐 수 없다. 곡의 환갑을 맞아 부산 근현대역사관은 ‘동백아가씨’의 특별기획전(10월15일부터 12월8일까지)을 열고 10월14일에는 개막 축하행사를 가졌다. 불후의 명곡을 쓴 작곡가 백영호(2003년 작고) 음악세계의 천재성에 헌정하는 이 행사는 선생의 장남 백경권씨가  ‘동백아가씨’의 작곡 원본 등 2만점 이상이 유물을 기증하면서 이뤄졌다. 


개막식에는 ‘동백아가씨’와 사실상 동의어가 된 이미자가 참석,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엘레지의 여왕은 “60년 동안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준 것에 뿌듯하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축하무대도 이어져 우리의 한과 시어(詩語)를 우렁차게 굴곡지게 노래하는 장사익이 백경권씨의 건반 반주에 맞춰 ‘동백아가씨’와 역시 백영호가 곡을 쓴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를 구성지게 해석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장사익은 백영호의 2곡을 노래하게 된 것을 ‘내 음악역사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백경권씨의 반주로 소리꾼 장사익이 '동백아가씨'를 부르고 있다.


백영호의 눈부신 히트 퍼레이드 

부산 출신의 천재작곡가 백영호가 빚어낸 대중의 가요는 셀 수 없이 많다. 우선 이미자가 부른 곡 가운데 ‘여자의 일생’, ‘서울이여 안녕’, ‘울어라 열풍아’, ‘황포돛대’, ‘임금님의 첫사랑’ 등이 그의 오선지에서 주조되었으며 지금 60.70대가 TV 드라마 주제가 하면 떠올리는 1970년 TBC <아씨>와 1972년 KBS <여로>의 주제가 역시 백영호가 썼다. 국내 OST 역사 기술에서도 그는 빠지지 않는다. 



작곡가 백영호


이미자 전에 남인수의 ‘추억의 소야곡’과 손인호의 ‘해운대 엘레지’를 비롯해 남상규의 대표곡 ‘추풍령’, 배호의 ‘비 내리는 명동’ 그리고 문주란을 스타덤에 올려준 데뷔곡 ‘동숙의 노래’도 잊을 수 없는 백영호 골든이다. 하지만 그는 ‘동백아가씨’ 한 곡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독보적 명성의 위인이다. 어느 곡에든 침전시키는 애잔함, 시대를 읽는 광휘의 눈, 가수와의 인간적 상호작용 등 비범한 재능이 그 곡에 축약되어 있다. 그는 써내는 곡마다 자신의 전(全) 존재를 개입하는 총체적 열성으로 유명하다. 


‘동백아가씨’의 독보적 시대성 


‘동백아가씨’는 또한 1960년대와 1970년대 공업화 도시화라는 경제개발 시기의 고단한 여인들을 감싸주는 시대와의 운명적 관련성을 평가받는다. 그 시기의 지루한 반복 노동과 삶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비껴 나와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그 시절을 한과 눈물로 보낸 사람들, 특히 집을 지키는 기구한 여인들은 ‘동백아가씨’에 만 배로 공감했다. 그들은 곡의 결정적 코러스 대목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를 일제히 나지막하지만 힘주어 흥얼거리곤 했다. 


음반시장이 의미를 갖게 된 국내 대중가요의 사실상 첫 대박은 이렇게 경제 성장기의 뒤안길에서 신음한 여심을 위로하는 시대의 틈 속에서 이뤄졌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성이 갖는 힘처럼 ‘동백아가씨’는 그 신성함으로 인해 관습적 망각을 거부하고 최우선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각성이 엄존하고 있음을 60주년 특별전시가 웅변한다. 과거를 현재에 붙이는 여러 트렌드 장치들 이를테면 역주행, 리메이크, 레트로 붐의 디지털 기세 덕에 ‘동백아가씨’에게 반드시 주어질 것은 재출현의 순간이다.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