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배 인터뷰

조덕배

by 임선희

2024.10.12

시작조차 못 해서 혹은 제대로 끝맺지 못하여 홀로 남겨진 미련을 겪어본 이들은 조덕배의 이야기에 깊이 스며들 것이다. ‘나의 옛날이야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을 포함한 진득한 경험의 산물은 타임리스라는 수식어가 붙어 후배 가수들에 의해 꾸준히 회자된다. 그렇게 저항정신의 사회 혹은 전자 음악, 댄스 신 등 시대 흐름이라는 거대한 파풍 속에서도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조덕배는 ‘사랑’이라는 일상언어의 정공법을 증명한다.


이제는 현재 진행을 넘어 미래를 꿈꾼다. 10월 중, 영국의 사치(Saatchi) 갤러리에서 AI로 구현한 보컬이 담긴 신곡 ‘아름다운 그대여’의 버츄얼 뮤직비디오를 선보일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며, 이에 “타임머신을 타고 35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라는 기대감을 덧붙였다. 신보 작업을 함께 진행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닥터 레드와 동행하고 프로듀서 박찬재, 작곡가 누보(8NUVO)와의 유선 인터뷰를 적극 추진한 그의 열정 덕에 유독 충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영국의 사치 갤러리에서 신곡 ‘아름다운 그대여’의 버츄얼 뮤직비디오가 전시될 예정이다. 초대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닥터 레드: 한국컨텐츠진흥원 진행하에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가수를 가상 세계로 옮기는 작업을 맡게 되었다. 사치 갤러리뿐만 아니라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아우터넷(Outernet) 런던에서도 추가 전시 요청이 들어왔다.


조덕배: 감사하게도 세계 최초로 단일 신곡을 전시하게 되었다.


사치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어떠한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보는지. (유선)

박찬재: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만들어 갈 것 같다. 조덕배 선배님의 음악이 젊은 층에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아바타 캐릭터 등 작품을 만드는 등 세대 간극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최근 행보를 미루어 보아, 변신의 폭이 크다고 느껴진다. 소감이 궁금한데. 

조덕배: AI로 작업한 나의 새로운 목소리를 들으니 영화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가 생각났다. 한때 전성기의 나 자신이 그리워 과거에 빠져 있었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탈피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음악을 들으니 젊은 조덕배와 나이 든 조덕배가 같이 있더라. (웃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음악적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음악적 자아의 재탄생이라고 보면 되는지.

조덕배: 그렇다. 신곡 ‘아름다운 그대여’ 발매일이 9월 13일이었는데, 같은 날 개봉한 영화 < 베테랑 2 >에 ‘나의 옛날이야기’가 삽입되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고등학생들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더라. 자연스레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드럼의 강수호, 베이스의 신현권, 건반의 변성용 등 최고의 세션과 함께 월드투어를 함께 돌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지금 어느정도 준비된 상태이다. 


닥터 레드: 9월 13일에 발매한 ‘아름다운 그대여’는 어쿠스틱, 아카펠라, 인스트루멘탈 등으로 구성되었고 덥스텝과 빅룸, 트랜스 등 전자음악을 동반한 다양한 버전이 또 한 번 출시될 예정이다. 


신보 ‘아름다운 그대여’를 작업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는지.

조덕배: 마냥 긍정적으로 임한 건 아니다. 누보와 닥터 레드 등 젊은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도,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라는 장르에 도전하는 것도 모두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업하면서도 ‘계속 진행해도 될까’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일이 흔치 않은 기회이기에 기대를 품고 나아갔다. 



닥터 레드(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작곡가 누보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닥터 레드가 생각하는 조덕배가 궁금하다.

누보: 사실 조덕배 선배님에 대해 잘 몰랐지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눠보니 선배님은 ’시인’이셨다. 그러한 과거의 속성을 지니신 선배님과 현재를 대변하는 EDM 사운드를 결합하여도 충분히 미학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번에 함께 한 ‘아름다운 그대여’의 경우 지금까지 해온 조덕배의 작품과 다른 결이길 바랐다. (유선)


닥터 레드: 선배님의 음악을 통해 한 인간의 실연과 소외, 고독감을 알게 되었다. 마치 한 권의 문학책과 같다. 다시 말해, 조덕배의 노래는 그의 세상 혹은 세계관을 입문할 때 읽는 문학책과 같다. 


신보를 들어보니 조덕배의 음악과 현 세대 것의 기술적 차이는 있어도 음악적 차이는 줄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닥터 레드: 조덕배 특유의 감정선이 정확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선배님의 가창은 간지 난다. 테크닉적으로 화려한 보컬이 아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를 갖고 계신다. 선배님과의 작업 방식은 굉장히 달랐지만 이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감성이 충분히 전달되니 어떤 곡이라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작업 과정 중의 애로사항은 있었다. 선배님의 독특한 호흡법을 정형화된 비트에 넣게 되었을 때, 그것을 놓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조덕배만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닥터 레드에게 영향을 준 조덕배의 곡이 있다면?

닥터 레드: 유명한 곡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꿈에’를 좋아했다. 개인적으로 나도 MBC 대학가요제 출신이라 더욱 그렇다. 우리 세계에서 선배님의 음악을 고유의 장르나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의미로, 오리지널 혹은 명품이라고 표현한다. 명품은 영원하다. (웃음) 선배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나의 옛날이야기’의 영감이 궁금한데.

조덕배: 그냥 영감이 아닌 실화다. 중학생 시절, 어느 봄날에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그를 향한 마음을 낙서에 담았다. 가사 수준에도 못 미쳤다. 여학생에게 건네주려다 실패했는데, 만약 줬으면 큰일 날 뻔했다. (웃음) 나중에 곡을 내기 위해 함중아 형과 함께 왕준기 형을 찾아가 당시의 낙서를 보여주니 제목을 물어보더라. 되돌이켜보니 말 그대로 나의 어릴 적 이야기여서 제목을 ‘나의 옛날이야기’로 짓게 되었다. 




당시 작사, 작곡이나 악보를 읽는 등의 음악 공부는 어떻게 했는가?

조덕배: 악보를 그릴 줄도, 읽을 줄도 몰랐다. 어린 시절, 형들 방에 가면 야외 전축이 있어서 LP판을 들고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기타도 형들이 연주할 때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이다. 음악을 계속해서 듣고 나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면서 실험하듯이 만든 곡이 약 10개 정도다. 


메가 히트곡 ‘나의 옛날이야기’, ‘꿈에’를 이어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덕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내가 30대 초반으로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상황이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초반에는 공부나 배움 없이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음악으로 표현했다면, 서른 이후에는 ‘내가 정말로 작곡가인가 아닌가?’하는 고뇌에서 음악이 시작되었다.


조덕배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보면 정돈된 느낌은 아니다. 

조덕배: 당시 혼돈의 시기였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밑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기도 했다. 주변에서 나보고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웃음) 당시 대한민국에서 작사, 작곡과 노래, 그리고 제작까지 혼자서 다 한 사람은 아마 내가 유일할 것이다. 혼자서 모든 걸 했으니 질서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곡 중 추천하고 싶은 곡이 궁금하다. 

조덕배: 6집의 타이틀곡 ‘노란 버스를 타고 간 여인’을 소개하고 싶다. 하필 그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라 묻힌 감이 있다. 이 노래를 뽑은 이유는 내가 진정한 음악가로서 보사노바를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만들게 된 첫 번째 곡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리에 가서 스팅과 함께 작업했던 유명 세션에게 편곡을 맡기고, 프랑스에서 제일 큰 녹음실에서 작업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들여서 만든 노래보다 아무 생각 없이 물 흐르듯 만든 음악이 대박이 났다. 


그래서인지 조덕배의 음악은 보사노바의 세련됨과 포크의 정겨움이 조화를 이루는 ‘월드뮤직’처럼 느껴진다. 

조덕배: 세르지오 멘데스(Sergio Mendes), 스탄 게츠(Stan Getz),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뱅(Antonio Carlos Jobim) 그리고 마이클 프랭크스(Michael Franks) 등 어릴 적에 보사노바 명곡을 참 많이 들었다. 형들이 집에 LP를 갖다 놓으면 한참 동안 듣고는 했다. 당시 경험이 작품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보사노바에 대한 큰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가수로 오랜 활동을 하게 만든 원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조덕배: 어머니다. 내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니, 당시 강남구에 위치한 경기여자고등학교 앞 상가 땅을 팔면서 나를 지원해 주셨다. 약 300평을 팔았는데 그때는 자고 일어나면 땅값이 오르던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없었으면 가수를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후배 아티스트의 리메이크나 커버 무대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버전이 있다면?

조덕배: 임상아가 부른 ‘나의 옛날이야기’를 좋아한다. 멜로디를 가장 잘 해석한 느낌이라 자주 들었다. 물론 아이유 덕분에 저작권료를 많이 벌게 되어 고마움을 느낀다. (웃음) 현재 일본에서도 7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리메이크를 발매했고 드라마에도 삽입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후배 가수들이 조덕배의 음악을 계속해서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닥터 레드: 앞서 선배님의 음악을 ‘문학책 한 권’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단순히 음악이라고 지칭하기보다 기록물에 가깝다고 본다. 선배님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감정으로 기록한 느낌이다. 삼국지에 대해 여러 재해석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과 같이, 선배님의 노래를 들으며 그 순간에 대해 많은 이가 공감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 보기도 하는 것 같다. 운 좋게 선배님과 함께 작업하게 되었지만, 선배님이 남기신 기록물은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조덕배를 만든 인생의 음악이 있다면?

조덕배: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민기 형님의 유일한 1971년 독집이다. 셋째 형은 디스코가 유행하던 시절 상징인 ‘도끼 빗 디제이’의 원조 격이었는데, 집에 음반을 많이 사다 놓았다. 그 여러 음반 중에 민기 형의 음반을 발견하고 바로 레코드 가게로 갔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9천 원 하던 때에 내가 그것을 6만 5천 원에 팔아버렸다. 판 돈으로 은하수와 한산도를 각각 한 보루씩 사고 중국집에 갔다. 다른 사람들은 그 앨범을 찾으러 다녔지만 나는 팔아버렸으니 미안함과 죄의식이 계속 가슴에 남아있었다. 


또 다른 한 곡은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다. 중학교 내내 그 음악을 들으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연습도 하곤 했다. 그리고 제일 존경하는 가수는 배호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그리고 ‘당신’ 세 곡을 뽑고 싶다. 선배님의 노래는 김정호 선생님의 세대와 나의 세대를 잇는 브릿지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는 팝송만 들었지만, 김정호와 배호의 음악을 듣고 난 후 대한민국 대중가요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 






진행: 임진모, 염동교, 임선희, 한성현
정리: 임선희
사진: 한성현
임선희(lumanias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