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 인터뷰

김수철

by 신동규

2024.09.18

당신은 김수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었던 그간의 세월만큼이나 새겨진 모습은 각기 달라도 그동안 쉬지 않고 대중과 함께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대중가요를 넘어 영화음악과 행사음악, 국악의 현대화와 크로스오버, 심지어 동요까지 김수철은 누구보다 친숙한 이웃이었고 때론 미련할 정도로 소신 있는 음악가였다. 그렇게 차근히 넓혀간 스펙트럼은 어느덧 ‘우리 음악’의 근간이 되었고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은 굳센 원동력이었으며 그가 건넨 노랫말은 청춘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김수철의 45년은 그렇게 흘렀다.


<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 > 속에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음악인으로서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상은 역시 오늘날의 청춘들, 그리고 사회. 불안과 공허의 시대에도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고생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그를 인터뷰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22년 만의 신보임에도 그는 여전히 음악 그 자체에 푹 빠져있었고, 순수했으며 젊었다.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

요즘 많이 바빠 보인다. 아직 예정된 공연이 많은가.
우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경기인디뮤직페스티벌. 여러 제의가 왔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부터 순서대로 끝마치는 편이다. 거기에 작곡 작업도 있지 않나. 작곡이 가장 바쁘다. 겉으로 안 보여서 그렇지. (웃음) 

활동과 관련해 지난 6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의 공연이 화제였다. 관객 반응을 기억하는지.
창작 작업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아 SNS를 경계한다. 물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을 많이 하기보단 음악으로 보여주는 게 좋아 되도록 멀리하는 중이다. 그런데 DMZ 무대는 피드백이 많이 오더라. 젊은 층이 많은 편이었는데 내 노래를 어떻게 아는지 다들 멋지게 따라 불러줬다. 공연 내내 뛰어서 모래바람이 날리던 순간이 선명하다.

특히 어떤 곡이 인상에 남았나.
보통 셋리스트를 정해두지 않고 무대에 오르는 편이다. 연령대가 낮은 것 같아 즉흥적으로 ‘날아라 슈퍼보드’를 골랐는데 다들 엄청나게 뛰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내일’처럼 느린 곡도 잔잔하게 즐길 줄 아는 관객이었다.

그럼 더 많은 공연을 볼 수 있을까.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서고 젊은 층과 친구가 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22년 만에 가요 음반을 낸 것도 그런 취지다. 소극장 공연이라도 하면 서로 즐겁지 않겠나.

벌써 데뷔한 지 45년이 흘렀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지금 하는 작업에 열중할 뿐 시간에 대한 개념을 잊고 산다. 이번 앨범도 발매해 보니 45주년 기념 앨범이 되었는데 주변에서 피드백이 꽤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원래 음반을 내도 반응은 기대하지 않는 편인데 나름 기분이 좋더라. 그렇다고 이 분위기에 도취하고 싶진 않다.

신보 <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 >를 발매했다. 순수함과 동시에 상당한 에너지가 담긴 그야말로 베테랑의 앨범이었는데 어떤 생각을 담았나.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 우정, 관계, 사랑 같은 것들 말이다.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린 외롭고 힘든데, 특히 현세대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보니 더욱 내적 불안에 빠지기 쉽다. 외로움도 같이 나누면 조금이라도 거두어지지 않을까. 그들의 친구가 되어 소통하며 궁극적으로 격려와 위로를 전하는 것이 목표다.


앨범의 시작은 서정적이다. 이유가 있을까.
서두에 배치한 ‘너는 어디에’와 ‘나무’는 꿈에 대한 곡이다. 어린 아이가 새싹을 가꾸듯 조용히 시작하고 싶었다. 앨범이 흐를수록 활력을 찾는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인지 ‘아자자’와 ‘휙’에 담긴 에너지가 강렬하다. 그 중심은 단연 일렉트릭 기타인데, 당신에게 이 악기는 어떤 의미인가.
평생을 함께할 친구다. 그래서 그 해에 공연을 몇 번 하든 매일 꼬박 두 시간씩 연습하며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작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인데, 이 친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소리로 표현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마지막 트랙을 연주곡 ‘기타산조’에 맡겼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우리의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 하나였다. 원래 13분짜리 곡이었는데 5분 정도 줄였고 ‘야야아자자’도 사실 10분가량 되었는데 타이틀 곡으로 할까 하니 주변에서 말리더라. 그래서 축소한 버전을 따로 싣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타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음악가가 있나.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 제프 벡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 특히 제프 벡과 데이비드 길모어의 음악은 정말 철학적이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어려움 없이 너무나 행복하게 작업했다. ‘기타산조’는 한 번에 녹음이 끝났고 여타 곡들도 길이를 줄이는 작업 외에는 별다른 수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타 연주도, 노래도 오랜만에 하니 참 즐겁더라.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하고 싶은 말을 ‘야야아자자’에 다 담았다. 타이틀로 하고 싶었던 까닭도 같은 이유다. 길다고 주변에서 말려서 그렇지. (웃음)

국악에 여전히 열정을 쏟고 있음이 새 앨범에서도 느껴진다. 특별한 까닭이 있나.
원래 전통음악이라는 게 3년은 들어봐야 재미를 느낀다. 대중 친화적인 음악이 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흐르는 음악의 99%가 서양에서 온 것을 본뜬 게 아닌가. 작곡가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처럼 전 세계가 아는 전통문화가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이 ‘기타산조’와 작년 <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 >일텐데, 지금까지의 성과를 본인이 스스로 평가한다면.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큰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작곡량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 점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예순이 되더라. 그동안 여러 장르를 시도해 왔고 기타산조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 새로운 데뷔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으로 시작할지는 모르겠으나 꼭 뉴욕 등지의 역사적인 공간에서 국악의 힘을 알리고 싶다.

이날치, 잠비나이 등 과거에 비해 국악을 주 무기 삼아 퓨전 음악을 하는 팀들이 늘어났다. 어떻게 생각하나.
먼저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비판보다는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기왕 해보는 거 확실히 공부하고 오랫동안 열심히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획일화는 병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유행에 따라 일회성을 좇기보다는 나만의 미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김수철의 음악 인생을 돌아볼 때 영화음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배우로, 음악감독으로 큰 활약을 했는데 당신에게 이 분야는 어떤 의미인가.
대학생 때부터 꿈이었다. 당시는 지금보다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이해와 교육이 부재했는데도 영화음악 분야는 장르 구분을 탈피하고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견식을 요했다. 그렇다 보니 더 넓은 음악을 품기 위해 언젠가 내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되었다. 점차 경험을 쌓아갈 때쯤 유재하가 영화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길래 작업실을 허락했던 일도 기억난다.

유재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발라드 가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가사를 잘 쓴다. 당시에 평가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뒤에야 재조명된 것이 참 안타까울 뿐이다.

김수철의 음악 하면 실험을 빼놓을 수 없다.
동의한다. 돌아보면 지금껏 발표한 작품의 9할은 실험이라 봐도 좋다. 모르는 것에 골몰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힘들어도 힘든 게 아니더라. 

동요를 부르던 김수철도 눈에 선하다. 어쩌다 동요를 만들게 되었나.
어린 아이들이 자기 정서에 맞지 않는 가요를 따라 부르는 게 보기 좋지 않았다. 당시에는 애니메이션과 어린이 드라마가 많았기 때문에 그 연령층의 생각에 맞는 노래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인기를 얻게 되어서 운 좋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시대는 갈수록 어린이들에 무관심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위해 음악을 냈다. 나름 반응이 있어 무단으로 퍼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목적이 아이들을 위한 음악이니 마음을 비우고 건드리지도 않았다. (웃음)

그렇게 영화음악, 국악, 동요 그 외의 많은 실험 음악들, 그동안 상업적 성공과 거리가 먼 작품이 주를 이뤘다. 욕심이 생겼을 법도 한데.
그래도 밥은 먹고 살 정도니 괜찮았지만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를 실현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선 언제나 아쉬움이 컸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 하는 까닭도 그건 돈이 들지 않으니 그런 것 같다. 돈에 욕심을 가지면 하고 싶은 음악 하기 힘들다. 

마지막 질문이다. 언젠가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후배가 있나.
어떤 테마인지가 중요하겠지만, 당장은 BTS의 RM, 밴드 혁오, 자이언티가 떠오른다.



진행: 임진모, 신현태, 김도헌, 임동엽, 장준환, 염동교, 손민현, 한성현, 신동규, 박승민, 정기엽
정리: 신동규
사진: 김도헌
신동규(momdk77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