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브렉시트 시대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10팀

영국의 밴드 블랙 컨트리 뉴 로드가 오는 2월 21일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에 국내 음악 팬들의 이목이 몰렸다. 500석 이상의 공연장은 예매 당일 매진, 밴드의 작지 않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블랙 컨트리 뉴 로드의 성장 뒤에 포스트 펑크의 부활이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브렉시트, 즉 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 혼란은 인디 밴드 신에 큰 자극을 주었고 이는 도발적이고 개방적인 포스트 펑크의 형태로 실체화됐다. 정치적인 색채와 공격성, 독창성을 드러내기에 포스트 펑크라는 장르는 상당히 알맞은 무대였던 것이다.
몇 년에 걸쳐 걸출한 밴드가 쏟아져 나왔고, 영국을 넘어 다양한 지역에도 넓게 확산되며 이 흐름은 그 크기가 꽤 비대해졌다.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린 위력에 이름표를 붙이려는 시도도 부지기수였다. 브렉시트 논의 이후 혼란기의 영국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포스트 브렉시트 뉴 웨이브(post-Brexit new wave)로 불리기도 했고, 런던 브릭스턴(Brixton) 지역 펍인 윈드밀(The Windmill)의 이름을 따 윈드밀 신(The Windmill scene)으로 부르는 이도 있었다. 포스트 펑크라는 장르가 중심이 됐다는 사실에 뉴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리바이벌이라고 일컫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번 글은 블랙 컨트리 뉴 로드의 내한 공연을 기회 삼아, 이토록 뚜렷한 영향력에도 불구, 이즘(IZM) 내 특별한 논의나 설명이 없었던 최근 영국 및 아일랜드 내 인디 포스트 펑크 신을 조명하기 위해 그중에서도 특별히 빛났던 10팀을 소개한다.

아이들스(IDLES)
장르의 부활은 보통 걸작의 등장으로부터 시작한다. 20여 년 전 스트록스의 데뷔 앨범 < Is This It >이 포스트 펑크의 위대한 부활을 알렸던 것처럼 말이다.
2017년 데뷔작 < Brutalism >로 포스트 펑크의 2차 부활을 슬며시 예고한 영국의 5인조 밴드 아이들스는 이듬해 두 번째 앨범 < Joy As An Act Of Resistance. >를 발표하며 < Wide Awake! >의 파케이 코츠와 함께 이를 완벽하게 공표했다. 활어처럼 날뛰는 열정적 사운드는 수많은 후속 밴드들에게 감탄과 영감을 줬고, 영국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등(< Ultra Mono >) 팬들과 대중 또한 매료했다.

셰임(shame)
한두 팀의 활약을 '부흥'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포스트 펑크의 부흥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유는 셰임과 같은 밴드가 초기를 함께 견인했기 때문이다. 런던 출신 5인조 밴드 셰임은 다채롭고 근사한 데뷔작 < Songs Of Praise >로 포스트 펑크 부활의 뚜렷한 목소리를 내었고 이후 음색을 더욱 넓게 확장하며 평단과 팬들의 지속적인 호평을 얻었다. 오는 4월 28일 한국을 찾기도 하니 관심이 간다면 직접 이들의 공연을 관람해 봐도 좋지 않을까.

스퀴드(Squid)
지금의 포스트 펑크 신은 포스트 펑크라는 장르적 굴레를 제멋대로 벗어나기에 더욱 흥미롭다. 다양한 색채를 포용하며 포스트 펑크라는 틀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모양새다. 스퀴드는 그중에서도 돋보인다. 크라우트록(Krautrock), 재즈 등 이색적인 요소를 실험적이면서도 분명한 색채로 반죽하며 독보적인 위치에 선다. 그러면서도 영국 사회 전반에 대한 상징과 정치적 이미지 역시 놓치지 않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현대 포스트 펑크의 예술적 성취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밴드.

블랙 미디(black midi)
블랙 미디는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비정형성, 그 한계에 도전한다. 매스 록(Math Rock)의 난해한 박자, 프리 재즈의 즉흥성, 심지어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원시주의 음악까지 연상시키는 이들의 폭발력과 파괴력은 예측을 번번이 비껴가며 듣는 이를 거칠게 몰아붙인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과정에서 소리의 치밀함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것. 그 어떤 표현도 가능하다는 지금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철학과 정신이 이들의 음악 속에 살아 숨 쉰다.

블랙 컨트리 뉴 로드(Black Country, New Road)
포스트 펑크 신의 총아 블랙 컨트리 뉴 로드는 아케이드 파이어가 연상되는 다채로운 밴드 구성을 무기로 소리의 이곳저곳을 탐구한다. 포스트 펑크의 역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슬린트(Slint)의 실험적 포스트 록에 발을 담그고, 관악기의 사용을 통해 재즈의 질감까지 양껏 담아낸다(< For The First Time >).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가 빚어내는 실험적 화음은 지금은 밴드를 이탈한 보컬 아이작 우드(Isaac Wood)의 처절한 절규와 점층적 구성을 만나 환상적인 절정을 맞이하기도 한다(< Ants From Up There >). 빈틈없는 완성도와 극한의 표현력, 영국 포스트 펑크 신이 인디 밴드 전반을 대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폰테인즈 D.C.(Fontaines D.C.)
영국은 EU를 이탈했고, 아일랜드는 여전히 EU에 남았지만 여전히 두 국가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21세기 록의 ‘켈틱 타이거(Celtic Tiger)’ 폰테인즈 D.C.는 아일랜드산 펑크의 위력을 아일랜드를 넘어 영국, 영국을 넘어 전 세계에 설파하고 있다. 인터폴을 연상시키는 다소 어두운 사운드와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 프론트맨 그리언 채튼(Grian Chatten)의 도발적인 보컬은 밴드의 분명한 매력. 세 개의 정규작 내내 이렇다 할 기복 없이 이어지는 완성도 또한 인상적이다.

저스트 머스타드(Just Mustard)
폰테인스 디씨와 함께 아일랜드 인디 밴드 신의 힘을 역설하는 저스트 머스타드의 존재는 여러모로 특별하다. 포스트 펑크에서 여성 보컬이 드러낼 수 있는 형질적 특성을 제시하고, 지금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 자랑하는 먹성과 포용력을 몸소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밴드의 음악적 뿌리에 슈게이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슈게이즈를 바탕으로 한 날 선 연주와 그 위에서 흐느적대는 보컬 케이티 볼(Katie Ball)의 오싹한 교성(嬌聲)은 포스트 펑크에서 느끼기 쉽지 않은 섬뜩하고 아찔한 체험을 선사한다.

야드 액트(Yard Act)
소위 ‘영국적’ 느낌이 강한 포스트-브렉시트 펑크 밴드를 찾는다면 그 명쾌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영국 리즈(Leeds) 출신의 4인조 밴드 야드 액트는 2021년 EP < Dark Days >에 이어 정규 데뷔작 < The Overload >(2022)를 발표, 특유의 위트와 정치적 스토리텔링, 여유로운 퍼포먼스를 뽐내며 평단과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보컬 제임스 스미스(James Smith)의 익살스럽고 건조한 보컬은 단연 화룡점정. 오는 3월 첫날 발매될 두 번째 정규작 < Where’s My Utopia? >의 귀추 또한 주목된다.

웻 레그(Wet Leg)
리안 티스데일(Rhian Teasdale)과 헤스터 챔버스(Hester Chambers), 두 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포스트 펑크/인디 록 밴드 웻 레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결코 이들이 2인조이기 때문도, 여성이기 때문도 아니다. 현재 포스트 펑크 흐름을 구성하는 그 어떤 밴드들보다도 음악의 대중적 전달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보컬 리안 티스데일의 익살스러운 보컬은 선이 분명한 연주와 멜로디 위를 도도하게 활보하고, 대중은 이에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정상으로 화답했다. 데뷔와 동시에 2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손에 넣는 등 영미 전역의 평단까지 사로잡은 두 여인, 주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에이치엠엘티디(HMLTD)
외견부터 다른 포스트 펑크 밴드와의 다름을 과시한다. 화려하고 이색적인 의상과 돋보이는 액세서리, 마치 패션쇼나 연극 무대를 연상시킬 만큼 다채롭다.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에이치엠엘티디의 음악은 종잡을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는 포스트 펑크를 기반으로 하나, 글램 록의 정체성을 흡수한 밴드는 종종 신스팝의 찬란함이나 아트 록의 전위성을 끌어오기도 한다. 최근작 < The Worm >(2023)에서는 특유의 질감을 더욱 부각하며 록 오페라에 가까운 컨셉 앨범을 완성하기까지, 이래저래 넘쳐흐르는 매력에 절로 눈길이 가는 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