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 인터뷰
유주(YUJU)
개인 활동에 나서는 많은 아이돌의 걱정거리 중 하나가 바로 과거 이미지와의 원만한 이별이다. 그런 면에서 유주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 '시간을 달려서', '밤 (Time for the moon night)' 등 어마어마한 히트곡을 남긴 걸그룹 여자친구 이후 솔로 활동을 개시한 그는 과거 맑고 파워풀한 메인보컬의 아우라를 탈피하여 꾸준히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심지어는 기존의 역치를 넘어서는 짜릿한 퍼포먼스까지, 어느 하나에 얽매이지 않으며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이다.
이즘 사무실에 선뜻 찾아온 유주는 카메라에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음악적인 욕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연예계 데뷔 9년 차, 변치 않는 열정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을 함께 갖춘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솔로 작품의 제작기를 술술 풀어내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의지와 퍼포먼스에 관한 의견 등 본인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그의 입에서는 부단한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솔로 활동 중이다. 마음가짐은 어떤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의 범위가 늘어나서 굉장히 재미있다. 물론 그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지다 보니 늘 고민도 함께 한다. 항상 부족한 점만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랑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여태 낸 솔로 음반을 보면 스타일이 다양하다. 원래 본인의 성향도 그러한지.
다양한 것을 좋아한다. 음악을 들을 때에도 메시지만 좋다면 장르가 어떻든 가리지 않는다. 평소에 관심 없는 영역이라 하더라도 마음에 와닿으면 된다.
그렇다면 최근에는 주로 어떤 음악을 듣는가?
요즘은 아이묭을 굉장히 좋아한다. 음악의 스타일도 그렇지만, 버스킹으로 시작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굉장히 멋있다. 셀레나 고메즈의 음악도 많이 듣는 중이다. 취향에 맞는 곡도, 안 맞는 곡도 있지만 무대 위에서 모든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9년 전 아이돌 데뷔 당시에는 무엇을 좋아했는지 궁금해지는데.
은근히 그때는 힙합을 많이 들었다. 파워풀한 것보다는 감성적인 곡 위주로. '우연히 봄'을 같이 작업한 로꼬도 그래서 좋아하게 된 뮤지션이다.
사실 유주를 얘기할 때 '우연히 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찾는 곡이니 소회를 좀 들어보고 싶다.
'우연히 봄'은 예상치 못한 행운 같은 곡이다. 데뷔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 받아서 당시에는 그저 생애 첫 사운드트랙이라는 긴장 가득한 마음으로 녹음한 기억이 난다. 이렇게 오래 사랑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OST 작업을 굉장히 많이 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우연히 봄' 외에 애착이 가는 곡이 또 있는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드라마 < 식샤를 합시다3 >에 들어간 '이 노래만'이라는 곡이 있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백지영이나 거미, 린 같은 훌륭한 OST 선배들과는 또 다른, 나만의 여린 감성이 잘 녹아든 노래라고 생각한다.
OST 녹음 시에 특별히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의뢰가 들어오면 일단 드라마의 간단한 줄거리라도 꼭 받아서 보려 한다. 그리고 배경에 깔리는 음악임을 고려해 크게 멋을 부리거나 화려하게 하기보다는 가사 전달에 중점을 둔다.
로꼬 외에도 힙합 뮤지션과의 협업이 꽤 있다. 시너지가 잘 맞다고 느껴서 이런 작업을 계속하는 건가.
힙합은 나와는 굉장히 다른 영역이라 해당 장르의 뮤지션을 만났을 때 느끼는 재미가 크다. 소코도모와 '복숭아꽃'을 작업했을 때도 이 친구가 아니면 누구와 했을까 싶었다. 스타일이 다른 인물과 붙었을 때 나오는 나만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냐는 질문에) 요즘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아티스트 중에서는 우즈(WOODZ)가 관심이 간다. 밴드 사운드를 잘 쓰고 보컬도 매력적이다.
보컬 측면에서 유주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장점이라면 감정을 섬세하게 잘 담는 편이라는 것. 그래서 아직도 노래할 때 굉장히 재밌다. 조금 더 키워 나갈 점은 중저음인 것 같다. 여자친구 시절에는 파워풀한 고음 위주로 많이 보여줬는데 이제는 솔로로 활동 중이니 이와 더불어 다른 면도 많이 보여주고 싶다.
솔로 데뷔 후 처음 낸 EP < [REC.] > 타이틀곡 '놀이'는 굉장히 동양적이다. 사실 대중음악에서 국악적인 요소가 잘 먹히는 편도 아니고, 여자친구 시절 음악과는 많이 다른데 누구의 기획이었나?
현재 소속된 커넥트엔터테인먼트 회사 자체가 아티스트의 의견을 많이 들어주는 곳이라 함께 열심히 머리를 맞댔다. 또한 '놀이'는 그때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라고도 생각했다. 당시 좋아했던 가야금 소리를 트렌드에 녹여내려 했는데 스스로도 호불호가 확실할 거라는 생각은 했다. 정말 신선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동떨어진 음악처럼 들리거나. 겁이 없을 때라 그냥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과감하게 도전했다.
그 다음에 발매한 빅나티와 디지털 싱글 '이브닝'은 또 정반대의 느낌이다.
여름 시즌에 맞춘 싱글인데, 휴가를 가면서 들을 음악은 이미 많으니 그 대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굉장히 아끼는 노래다.
좌) < [REC.] >(2022년작) / 우) < O >(2023년작)
'이브닝'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곡의 작사에 의욕적으로 참여하는 중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노래는 결국 말에 음을 실은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의 언어에 내 감정을 실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쓴 가사를 내가 부를 때 온전히 내 음악이 된다는 느낌이 있다. 무조건 직접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다른 작사가들의 가사도 불러보고 싶지만 그래도 싱어송라이터의 노선을 꾸준히 추구하고자 한다.
작사를 위한 본인만의 노력이 있다면?
바빠도 책을 계속 읽는다. 그렇다고 문학소녀처럼 책만 읽지는 않지만 그래도 독서는 제일 기본이니까. 요즘에는 < 시를 쓰기 위한 짧은 연상 3000 >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에서 나열하는 많은 단어를 보면서 같은 제목으로 다른 내용의 시를 쓰는 그런 연습을 하는 중이다.
반대로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살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어느새 각자의 인생 얘기를 듣게 되지 않나. 그런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낀다.
글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이 느껴진다. 이른바 '인생 문학 작품'이 궁금해지는데.
J. M. 바스콘셀로스의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마음속에 살아있는 누군가를 느껴 힘들어하는 주인공 제제를 보면서 어릴 때 나와 정말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뮤지션 중 가사를 잘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상은과 김동률의 가사를 정말 좋아한다.
그렇다면 여태 작사한 곡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지난 EP < O >에 수록된 '복숭아꽃'을 꼽고 싶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응축해서 빠르게 썼던 가사다. 사랑을 꽃으로 비유한 내용인데, 땅에 핀 꽃들은 꺾기도 쉽고 향도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잖나. 나무에 피어서 손에 잘 닿지도 않고 다가가기도 힘든 그런 사랑을 나타내고 싶었다. 아무래도 그런 사랑이 더 흥미로우니까. (웃음)
'복숭아꽃' 하면 < 서울가요대상 > 퍼포먼스를 빼놓을 수가 없다. 폴댄스 안무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어떻게 접목할 생각을 한 것인지.
정말 감사하게도 두 곡을 보여드릴 시간을 받아서 '따라랏'을 부르기 전 '복숭아꽃'을 선보이기로 했다. 원래는 첫 곡을 발라드로 시작할까 했는데 이런저런 고민 끝에 '복숭아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심이 들었다. 특히 폴 꼭대기에 올라가 있으면 그 모습을 더 잘 형상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폴댄스 자체가 워낙 예민한 운동이라 1분이 채 되지 않는 안무를 연습할 때도 열에 일곱 번은 미끄러워지는 등 어려움이 많았고, 장비 수급도 힘들었지만 매 무대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후회 없이 임하는 만큼 회사에 부탁해 방콕 현지에서 좋은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었다.
평소 유주의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마치 가수 핑크(P!nk)같은 퍼포먼스라 굉장히 신선했다. 이미지 반전을 꾀한 것인가?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 폴댄스를 오래 배웠으나 걸그룹 시절에는 취미로밖에 할 수 없었는데,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춤과 노래를 구분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내 음악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퍼포먼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분법적으로 둘 중 하나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춤으로 노래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으면 당연히 가져가는 것이다.
'복숭아꽃' 다음에 부른 '따라랏'은 유주에게 어떤 곡인지.
가장 최근의 나를 가장 캐치하게 담아낸 곡이다. < O >를 작업할 생각을 너무 깊게 한 나머지 다음 음악은 또 어떻게 나를 갈아 넣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반대로 머리를 비워보는 것도 답이 될 것 같아 그저 편하게 흥얼거리다가 후렴이 나왔다. 더 진행한다면 재밌는 결과물이 나오겠다 싶어 부담 없이 스트레스를 풀 듯 가이드를 만들었다. 이런 색다른 매력 덕분에 발매 후에 더 아끼게 된, 지금 시점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다양함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매일같이 고민한다. 너무 다양하게 간다면 다채로워서 장점이 되지만 색깔이 덜 확실해진다는 단점도 있으니까. 원래도 가진 것 중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 하는 성격이라서, 당분간은 다양하게 표현하되 궁극적으로는 주되게 삼을 만한 하나를 찾는 것이 숙제 아닐까 싶다.
사실 여자친구도 소속사가 인수된 후 발매한 'Apple'이나 'Mago' 등은 급격한 변화로 호불호가 갈렸다. 당시에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Apple' 데모를 듣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여자친구 하면 떠오르는 음악은 확실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변화에도 우리의 목소리로 표현하면 여자친구의 음악이 된다는 태도로 녹음에 점차 재미있게 임했다. 가사에도 데뷔곡 제목 '유리구슬'을 언급하는 “투명한 유리구슬 붉게 빛나”라는 구절이 있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상황이 주어졌을 때 겁먹고 경계만 하는 대신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졌다. 결국 무엇이든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유주를 음악으로 인도한 아티스트와 노래, 음반을 말해달라.
음반은 토리 켈리(Tori Kelly)의 2013년 EP < Foreword >.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불안정하고 다이나믹한 감정을 가장 편안한 사운드로 표현해 준 작품이다.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작품이다.
노래를 꼽자면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의 'Stand up for love'다. 어린 시절 언니가 팝, 특히 성량이 뛰어난 디바 스타일 뮤지션을 좋아해 나에게 그런 류의 음악을 계속 들려줬다. 당시에는 사랑을 위해 일어서야 한다는 당차고 거대한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노래할 때도 많았지만 가장 많이 부르며 자란 곡인 만큼 그 내용처럼 주저앉지 않고 잘 흘러온 것 같다. 내 시야를 넓혀준 언니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존경하는 가수로는 스팅(Sting)과 캐나다의 가수 타미아(Tamia). 스팅은 노래하는 모습이 '멋'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뮤지션이다. 타미아는 노래를 처음 배웠을 때 보컬 선생님께서 나와 잘 어울린다며 추천해주신 가수다. 섬세한 감정 표현과 파워를 모두 지닌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진행: 임진모, 장준환, 염동교, 이승원, 한성현
사진: 임동엽
정리: 한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