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싱어송라이터 16인/16곡 (2)
신디 로퍼 'Time after time' (1983)
요란한 외모에 독특한 목소리로 캐릭터를 구축한 신디 로퍼는 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특급 싱어송라이터기도 하다. 한때 마돈나의 라이벌로 거론될 정도로 특급 인기를 구가했던 그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발표한 1983년 데뷔작 < She's So Unusual >로 일약 슈퍼스타가 되었다. 짧은 전성기로 라이벌리는 무색해졌으나 정통 재즈 < At Last >와 블루스 록 < Memphis Blues >를 발표하고 뮤지컬 < 킹키 부츠 >의 음악을 맡는 등 다재다능을 드러냈다.
1986년 정상을 차지한 'True colours'와 더불어 신디 로퍼의 유이한 빌보드 1위 곡 'Time after time'은 신나는 팝 록으로 채워진 < She's So Unusual >에서 사뭇 이질적이다. 앨범의 마지막 퍼즐을 채우기 위해 록밴드 후터스의 보컬 겸 키보디스트 롭 하이만과 조우했고 실연의 아픔을 대화하듯 가사지에 써 내려갔다. 신시사이저와 간결한 퍼커션 연주가 구현한 애상적인 사운드 앞에서 팝계의 말괄량이조차 진중해졌다.
케이트 부시 'Running up that hill (deal with God)' (1985)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신묘한 곡 'Wuthering heights'로 데뷔한 케이트 부시는 독보적인 음악성과 카리스마를 갖췄다. 일찌감치 재능을 알아본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는 부시의 데뷔작 < The Kick Inside >에 참여했고 그로부터 음악 감독의 주체성을 흡수한 부시는 < The Dreaming >(1982), < The Sensual World >(1989) 같은 명반을 스스로 제작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에 수록된 'Running up that hill (deal with God)'은 역주행 신화를 쌓으며 '2022년의 재발견' 도장을 찍었다. 원제는 'Deal with God'이었고 대중음악계의 한 여성으로 느끼는 유리천장을 부술 수 있다면 신과 거래라도 하겠다는 울부짖음을 담았다. 가녀린 고음 보컬은 육중한 리듬 트랙 위를 활보하고 뉴웨이브 신스팝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혼합한 사운드는 고유의 소리 문법을 정립했다. 1985년 작 < Hounds Of Love >는 이 곡 이외에도 'Hounds of love','Cloudbursting'같은 개성적인 넘버들로 채워졌다.
브렌다 러셀 'Piano in the dark' (1988)
악기 연주와 가창, 작곡에 능한 팔방미인 브렌다 러셀은 상기한 뮤지션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나 알앤비와 소울, 재즈를 아우르는 실력파 뮤지션이다. 1970년대부터 남편 브라이언 러셀과 함께 펑크(Funk) 밴드 루퍼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닐 세다카와 협업하며 숙련도를 높였고 1979년에 데뷔 앨범 < Brenda Russell >로 솔로 경력을 시작했다. 빌보드 알앤비 차트 20위까지 이 오른 앨범의 전곡을 써내며 성숙한 음악성을 드러냈다.
1988년 발표한 < Get Here >는 빌보드200 46위에 올라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했다. 장기인 건반 연주를 더 크루세이더스의 조 샘플, 옐로우자켓의 러셀 페런트(Russell Ferrante)에 맡겼고 마이클 잭슨의 < Thriller >에서 기타를 연주한 폴 잭슨 주니어와 베이스의 네이던 이스트 등 정상급 연주자가 소리 밀도를 책임졌다. 빌보드 팝, 알앤비, 어덜트 컨템포러리 세 카테고리에서 모두 10위권 안에 든'Piano in the dark'는 유려한 가창과 편곡을 겸비했고 아레사 프랭클린, 패티 라벨에게 곡을 제공했던 조 에스포지토와의 파트너십도 훌륭하다. 알토 색소폰 연주자 데이비드 샌본과 함께한 'Le restaurant'도 앨범의 세련된 분위기에 일조했다.
트레이시 채프먼 'Fast car' (1988)
흑인이 부르는 포크 록은 이색적이었다. 가상의 주인공을 설정해 가난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는 방식과 어쿠스틱 기타 위로 흐르는 담담한 음성은 신인의 어설픔과 거리가 멀었다. 조숙한 데뷔작 < Tracy Chapman >과 빌보드 핫100 6위까지 'Fast car'에 힘입어 채프먼은 1989년 제31회 그래미에서 신인상을 비롯한 3관왕을 차지했다. 록 색채가 강한 4집 < New Beginning >(1995) 이후 하강 곡선을 그렸고 2008년도 앨범 < Our Bright Future >가 최근작이다.
채프먼의 진면목은 사회비판적 포크 음악의 부활에 있다. 제목부터 혁명을 담은 'Talkin about a revolution' 물질문명을 비판한 'Mountains o' things' 등 사회적인 노래를 다수 발표했고,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을 일컫는 아파르트헤이트 피해자를 위한 모금 행사 등 인권 관련 행사에 참여해 급진적 성향을 드러냈다. 흑인, 여성의 제약을 딛고 포크의 저항 정신을 다시금 일깨웠다.
셰릴 크로우 'All I wanna do' (1993)
컨트리를 기반으로 한 팝 록 앨범 < Tuesday Night Music Club >은 미국에서만 약 4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긴 무명 생활을 한 방에 날렸다. 윈 쿠퍼(Wyn Cooper)의 시 < Fun >을 참고한 'All I wanna do'는 뻔한 삶에서 벗어나길 갈망했고,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 수상과 빌보드 핫100 2위로 그 소망을 이뤘다. 앨범의 프로듀서 빌 보트렐(Bill Botrell)이 연주한 스틸 기타가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를 담았다.
크로우의 강점은 꾸준함이다 'If it makes you happy, 'Soak up the sun' 같은 히트곡을 공동 작곡한 음악적 동반자 제프 트로트(Jeff Trott)와 함께 거의 매년 자작곡을 내놓고 있다. 데뷔작의 신선함이 바란 자리에 연륜이 들어섰고 포크, 컨트리, 멤피스 소울 등 미국의 음악 유산을 탐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스티비 닉스, 세인트 빈센트, 자니 캐쉬가 참여한 < Threads >로 경력을 압축했다.
앨라니스 모리셋 'You oughta know' (1995)
1995년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서의 무대는 광포했다. 제인스 어딕션의 베이시스트 크리스 채니(Chris Chaney)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와 함께한 격정적 퍼포먼스가 곡에 담긴 분노를 표출했다. 1995년 발표된 < Jagged Little Pill >은 약 3300만 장의 판매고와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한 그래미 다섯 개 부문을 휩쓸었고 모리셋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록커로 우뚝 섰다.
그녀를 상징하는 명곡 'Ironic'(4위) 과 ' You learn'(6위)이 쾌활한 분위기를 지닌 데 비해 'You ought know'는 하드록의 정통성을 따랐고 그래미 '최우수 록 송', '최우수 여성 록 보컬 퍼포먼스'의 영예를 안았다. 차버린 남자를 향한 날선 노랫말은 당당하고 억센 여인의 이미지를 부각했고, 당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소속이었던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와 베이시스트 플리가 거친 록 사운드를 제공했다. 청량한 댄스 팝을 부르던 십 대 소녀가 여전사로 변신한 순간이다.
뷰욕 'Hyperballad' (1995)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출신의 뷰욕은 대중음악계의 원 오브 어 카인드다.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힘든 이 뮤지션은 재능의 끝을 가늠하기도,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전위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 스타일이 그녀의 인장이고 음악을 시각화하는 뮤직비디오에도 최전선에 위치한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와 잡음이 있었지만, 영화로 < 어둠 속의 댄서 >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전방위적 재능을 입증했다.
1995년에 나온 2집 앨범 < Post >는 데뷔작 < Debut >에 비해 한층 성숙한 음악성을 확립했다. 1집을 함께 했던 넬리 후퍼 이외에도 매시브 어택의 트리키와 하우스 음악에 일가견 있는 그레이엄 메시를 프로듀서로 초빙해 다변화를 꾀했다. 강성 트립합 'Army of me'과 뮤지컬 스타일 'It's so quiet' 등 이채로운 곡 중에서 'Hyperballad'는 앨범의 백미다. 브라질의 재즈 뮤지션 유미르 데오다토의 현악 세션과 하우스 에이펙스 트윈 풍의 비트가 층위를 이루고 뷰욕은 몽환적 음성으로 남녀의 신비로운 역학 관계를 이야기한다. 미로 같은 소리 갈래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특유의 음악성을 집약했다.
사라 맥라클란 'Angel' (1997)
십여 년간 시행착오를 겪던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사라 맥라클란은 네 번째 정규앨범 < Surfacing >에서 응축했던 내공을 터트렸다. '돌파구가 된 이 앨범 이후부터 2014년 작 < Shine On >까지 미국과 캐나다 앨범차트 탑10 안에 들며 안정적 커리어를 구축했다. 1997년에는 여성 솔로 뮤지션과 여성이 이끄는 밴드가 출연한 릴리스 페어(Lilith Fair)를 열어 3년간 약 1천만 달러의 자선금을 확보했다.
'Angel'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키보디스트 조나단 멜보인의 사망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천사의 품에서 편안하게 쉬세요'라는 추모와 함께 약물 이외의 탈출구가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 곡은 19주간 탑10 안에 머문 대표곡이다. 청아한 목소리와 피아노 연주가 천사의 부름처럼 들리는 이 곡은 'Building the mystery' 'Aida' 같은 록풍의 수록곡과 다른 차분한 매력을 지녔다. 편안하고도 꿈꾸는듯한 분위기의 힐링 송이다.
이미지 작업: 정수민
[1] [2]
♬플레이리스트 감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