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올해의 팝 앨범

by IZM

2021.12.01



팝의 태동이 심상치 않다. 진부함과 고립에 질린 저마다의 아티스트가 파격적인 변신을 거듭하고,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연달아 터져 나오는 추세다. 바다 건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솔깃한 소식에 귀가 쉴 새 없는 한 해다. IZM이 2021년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릴 팝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 < Jubilee >
뜻밖의 변화였다. < Psychopomp >의 곤두선 감정이나, <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식 심연의 소음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예측을 깼다. 그루브 넘치는 'Be sweet'이 선공개되는 순간 앨범의 비범함을 감지했다. 어머니와의 사별에서 파생된 비극적인 감수성을 깊게 가라앉은 소리로 토해내던 그가 보다 다채롭고 밝은 색감의 노래들로 펼친 변신은 예상 밖이지만 아름다웠다. 비로소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팔레트의 확장이었다.

사랑과 상실 등 복잡다단한 감정 전개에도 음악에 귀가 번뜩 뜨인다는 점이 변화의 성공을 천명한다. 치열한 내면의 심상을 가다듬으면서도 난해하지 않은 건 한 곡 한 곡 자체의 매력에 충분히 집중한 덕이다. 드라마틱한 멜로디의 정교한 버무림에 홀린 듯 스며들고 주류 음악 신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보컬의 매력은 듣는 이로 하여금 쉽사리 앨범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아물지 않은 트라우마 그 너머 음악으로 되찾은 용기와 자긍심이다. (이홍현)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 Happier Than Ever >
2019년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심리를 대변한 소녀는 'Bad guy'로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를 점령했고, 곡이 실린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로 62회 그래미 어워드 본상을 휩쓸었다. 가수에게 음악으로 주목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만 도를 넘어선 관심은 노래가 아닌 외양을 향했다. 어린 시절 정신 질환의 주범이었던 '침대 밑의 괴물'이 허상에 불과했다면 실재하는 '익명의 누군가'는 유명인이 떠안아야 하는 새로운 트라우마를 선사한다. 그러나 Z세대 팝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명예에 뒤따른 희생을 들여다보는 단위는 싱글이 아닌 앨범으로 규정한다. 'Bad guy'나 'Bury a friend' 같은 히트곡으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낯설 수 있다. 그럼에도 포근한 재즈를 공유하고, 익히 들은 고딕 하모니를 재소환하고, 록 사운드로 희망 섞인 비명을 토해낼 때 예술가의 암울한 현실을 온전히 전한다. 내면 깊은 곳부터 끌어올린 울부짖음에 디지털 시대의 명암이 깜빡이는 순간, 빌리 아일리시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정다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 Call Me If You Get Lost >
개인적 비극과 사회 문제, 물질적 욕구, 사랑 등 공통점 없는 소재가 공존하기에 어쩌면 일관되지 못한 가치관이 혼란스럽다. 그렇기에 < Call Me If You Get Lost >는 한 창작자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전기(傳記)다. 그를 규정짓는 보편적인 것들로부터 싸워온 타일러의 행보가 널브러진 작품의 문법은 '랩'. 래퍼로서의 특정을 거부했던 전작 < Igor >란 족쇄에 묶인 예술가가 2000년대 중반 믹스테입 시대의 형식을 빌려와 또 다른 해방을 갈망한다. 어느 때보다 창작 욕구를 불태웠던 당시의 순수로 회귀하며.

두서없이 펼쳐지는 서사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를레르에서 따온 페르소나 '타일러 보를레르 경'의 단단한 래핑으로 예술성을 획득한다. 고전적인 힙합 작법을 중심으로 재즈부터 하드코어, 알앤비, 보사노바 등 그동안의 타일러를 응축한 트랙들이 개연성을 무시한 채 각자의 존재를 드러낼 법하지만, 이를 억제하고 유기적으로 이어가는 정제 능력도 단연코 뛰어나다. 미로처럼 얽힌 구성에 지향하는 목표를 쉽게 알 수 없지만 애초에 정해진 출구는 없다. 행하는 방식이 곧 길이 되오니. 이에 타일러 자신을 집대성한 앨범은 오히려 그를 하나의 영역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남기며 대중과 평단에 자유를 선언한다. (손기호)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 Justice >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진 팝송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Peaches'일 것이다.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간결한 비트와 독자적인 감성으로 이상적인 대중성을 발현하는 가창. 처음엔 별 반응 없던 이들이 어느덧 이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중독성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그는 지난 앨범 < Changes >(2020)의 부진한 성적을 단번에 만회하며 팝스타의 지위를 탈환했다.

그렇다고 앨범에 이 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Peaches' 외에도 들을 거리가 산적하다. 리드미컬한 가스펠을 의도한 'Holy', 1980년대의 신스팝 스타일을 활용한 'Die for you', 마치 파워 발라드를 듣는 듯한 의외성이 돋보이는 'Anyone' 등 어색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음악적인 변주 또한 충실히 이행했다. 무엇보다, 신앙심에 기반한 자기반성과 각오가 노래에 진정성을 배가시키고 있다는 점이 크다. 감상이 거듭될수록 가랑비에 옷 젖듯 그의 서사에 동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만큼 음악과 자아의 일체감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겨우내 찾은 내면의 평화가 많은 음악 팬들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그 경이로운 광경. 이 작품을 통해 생생히 체험할 수 있을 터. (황선업)



도자 캣(Doja Cat) < Planet Her >
세련되고 화려하지만 복작거리지는 않는 쇼핑몰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도자 캣의 세 번째 정규 앨범 < Planet Her >는 팝, 알앤비, 힙합을 큰 줄기로 하면서 아프로비트, 레게톤, 멈블 랩, 트랩 등 여러 스타일로 가지를 뻗는다. 꽤 다채롭게 구성했음에도 곡들의 사운드가 매끈해서 조금도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군살 없는 프로듀싱이 앨범을 한층 말쑥하게 만들어 줬다.

도자 캣의 보컬 또한 음반의 세공을 거든 주역이다. 묵직하지 않은 음성 덕분에 앨범은 내내 살랑거리는 모양을 띤다. 느린 템포, 잠잠한 곡에서는 미성이 부드러움과 어둑한 분위기를 증대한다. 이와 더불어 곳곳에서 박력과 탄력 있는 래핑을 펼침으로써 생기, 리드미컬함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도자 캣의 능란한 보컬과 유행의 선두에 위치한 곡들이 만나 바로 체감 가능한 상승효과를 몰고 왔다. (한동윤)



리틀 심즈(Little Simz) <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같이 현재 차트의 소유권을 차지한 대다수의 주류 여성 래퍼만큼이나, 동시에 매년 언더그라운드에서 묵직한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여성 랩 스타가 등장하고 있다. 서정성을 무기 삼으며 상징적인 키워드를 하나씩 점유한 이 아티스트들이 그렇다. '익명' 아래 행해지는 무소불위의 폭력을 노래한 노네임, '헌정'을 기반으로 갈등과 차별 앞에 목소리를 내세운 랩소디, 그리고 치장된 껍질에 가려진 진실 어린 '내향성'에 초점을 둔 올해의 주인공 리틀 심즈다.

장대한 오프닝 트랙 'Introvert'부터 'Miss understood'의 개운한 해방까지 이어지는 한 시간의 러닝타임 전부가 하이라이트다. 유연한 움직임 속 꽉 찬 펀치를 뻗는 'Woman', 뮤지컬적인 연출로 몰입감을 획득하는 'I love you, I hate you'와 'Standing ovation', < Grey Area >의 날카로움을 계승한 'Speed' 등 수많은 킬링트랙이 고점을 거듭 갱신한다. 웅장한 현악 세션과 정교한 샘플링을 배가한 프로덕션은 감정의 광활한 폭을 따스하게 포용하고, 날렵하고 탄탄한 래핑이 그 이음새를 이어붙인다. 정통성을 극한으로 다듬어 대중과 평단을 모두 포획한 올라운더 <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가 쟁취한 것은, 한 아티스트의 입지적 작품이라는 영예만이 아닌 2020년대 명반의 새로운 바이블로 장식되었다는 선포다. (장준환)



알로 파크스(Arlo Parks) < Collapsed In Sunbeams >
데뷔 싱글 'Cola'로 영국의 신인 등용문 BBC 사운드 오브 시리즈에 이름을 올린 2000년생 시인 겸 싱어송라이터 알로 파크스는 매체에 구애받지 않는 뛰어난 창작가다. 은유적, 압축적인 시와 달리 음악에서 그의 섬세한 시선은 명징한 언어로 치환된다. 특히 우정, 양성애, 인간관계에 대한 혼란 등 노랫말에 녹아든 일상적인 감정의 편린은 듣는 이의 마음에 가닿으며 빛을 발한다.

카메라 필름의 한 종류인 마지막 트랙의 이름 'Portra 400'이 시사하듯 앨범에는 보편적인 노스탤지어도 녹아있다. 소울과 재즈를 적절히 버무린 'Hurt', 트립합 스타일의 비트를 사용한 'For violet' 등 다채로운 재료는 신인 뮤지션의 개성을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알로 파크스의 목소리는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처럼 맑지만 예리한 시선과 고찰은 천진하지 않다. 거리두기로 사람들과 체온을 나누기 어려운 시대에 걸맞은 따뜻하고도 첨예한 앨범이다. (정수민)



블랙 컨트리 뉴 로드(Black Country, New Road) < For The First Time >
2018년 런던에서 결성되어 발매한 그들의 데뷔 작은 현 포스트 록 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자유로운 타 장르간 이합집산은 록 밴드 기본 구성에 바이올리니스트와 색소폰 편성을 더해 더욱 유기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전위적인 스타일은 프리 재즈(Free Jazz)에서 감지되는 확장성과 매쓰 록(Math Rock)의 복잡다단한 리듬에서 온다. 이 독창적인 조합의 결과물은 록 신 '올해의 발견'이다. (신현태)



레미 울프(Remi Wolf) < Juno >
트렌드를 반영한 뮤지션을 '발견'하는 것은 즐겁다. 레미 울프.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 유명 광고에 그의 노래가 쓰였고 음악 디깅을 좀 한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향이 생기고 있다. 특징은 자신을 잘 꾸밀 줄 안다는 것. 다양한 컬러를 조합해 옷을 입고 그 형형색색의 빛깔이 그대로 뮤직비디오를 수놓는다.

음악 역시 외적 차림과 닮았다. 짧은 러닝타임의 수록곡들이 전자음을 중심으로 펑키하고 발랄하게 울려 퍼진다. 그의 음악 안에 팬데믹의 흔적은 없으며 되레 우리의 머리를 끄덕이며 뛰게 할 것들이 가득하다. 올리비아 로드리고, 더 키드 라로이, 릴 나스 엑스 등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출생의 뮤지션들이 음악계를 뒤흔드는 와중 1996년생의 레미 울프가 당차게 출사표를 냈다. 쫀쫀하고 촘촘하게 엮인 유기적인 음반 속 요새 음악의 매력 포인트들이 빽빽하다. (박수진)



애벌랜치스(The Avalanches) < We Will Always Love You >
대중음악사에서 음악 만들기의 문법은 시시각각 변화했다. 한 땀 한 땀 자기 손으로 짓는 정공법부터 기존의 음악을 이어붙인 사운드 콜라주까지. 과거의 시선으로 어쩌면 사파 취급받았을 호주 밴드 애벌랜치스는 외려 과거 소스의 사용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후 고유한 음악성을 더한다. 재활용의 미학. 그렇게 플런더포닉스의 권위자가 된 이들은 전작들에 이어 또 한 번 사이키델릭하고도 우주적인 소리샘을 구현한다.

그들의 금광은 마르지 않는다. 복고풍 전자음악 'Born to lose'는 미니멀리즘의 거장 스티브 라이히의 'Electric counterpoint: I. fast' 속 반복성을 낚아챈다. 반면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Eye in the sky'가 진두지휘하는 'Interstellar love'나 버트 바카락의 멜로디를 품은 'The divine chord'는 대중과의 접점이다. 샘플링 음원의 지지직 바늘 튀는 소리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접속 신호. 음원 속 예술가들의 숨결과 애벌랜치스의 프로덕션, 초호화 피처링 진의 지원사격은 시공간을 무색게 하는 합종연횡이다. (염동교)

이미지 편집: 정수민
IZM(webzineiz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