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신현태, 황선업, 정민재

by IZM

2020.01.01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다섯번째 차례는 신현태, 황선업, 정민재 에디터다.



퀸(Queen) 'Love of my life'
13세 : 어려서부터 형이 들었던 음악을 따라 좋아했다. 하루는 그와 EBS에 채널을 맞춰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되었다. 툭 튀어나온 입과 짙은 콧수염, 흰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괴상한 모습의 남자가 무대 위를 요란스럽게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숨을 가다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노래 부르는데 그 모습에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Love of my life'였다. 듣자마자 빠져버렸다. 아마 처음으로 '이 음악은 소유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같다. 형에게 저 사람들이 누군지 물어봤고, 곧장 동네 레코드 샵에 가서 무작정 퀸(Queen) 시디를 달라고 했다. 그 앨범은 < Greatest Hits >였고 재미있는 것은 이 음반에는 'Love of my life'가 수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음반과 수록곡의 개념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 이유는 다들 알겠지?

엑스(X) 'Kurenai(紅)'
15세 : 용돈을 모아 산 CD플레이어에 처음으로 플레이했던 음반은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엑스(X)의 해적판 베스트였다. 형이 내 돈을 갈취해(?) 구입하고 오랜 시간 구석에 내팽개쳐놨던, 볼품없이 복사된 흑백 재킷에 정체를 알 수 없는 CD-R 알맹이의 구성이었다. 당시 거금이었던 오천 원이 아까운 마음에 대체 뭔가 싶어 틀었다가 감전이라도 당한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첫 곡 'Kurenai(紅)'의 심벌 리버스 사운드를 듣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짙은 화장과 과도한 치장은 지금 보면 우스운 모습이라고 생각도 되지만, 사춘기 신현태에게는 그들의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음악 글을 쓰는 필자로서 나는 언제나 내 전공은 록(Rock)이라고 말한다. 엑스(X), 엑스 재팬(X-Japan)은 나의 록 입문서였다.

메탈리카(Metallica) 'Master of puppets(S&M Live)'
17세 : 엑스(X), 엑스 재팬(X-Japan)에 한창 빠져있을 때 이미 형을 통해서 메탈리카(Metallica)를 듣긴 들었었다. 근데 왜 고등학교에 올라와서야 그들에게 영혼을 바쳤냐면, 첫 곡이 'Until it sleep'이었기 때문이다. 이 곡을 아는 이들은 단박에 이 심정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영향으로 비주얼 록을 듣던 친구가 많았는데, 내 록 패밀리였던 한 친구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미국의 록 음악이 더 멋지다며 메탈리카의 < S&M >(1999)를 빌려줬다. 당시에는 인정하긴 싫었지만 정말 더 좋았다. 내가 알던 록 음악보다 더욱 웅장하고 화려하고 강했다. 단연 베스트는 'Master of puppets'였다.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의 육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와 라스 울리히(Lars Ulrich)의 에너지 넘치는 드러밍. 그들의 라이브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메탈리카는 내 록 음악 인생을 변화시켜줬다.

라디오헤드(Radiohead) 'Paranoid android'
19세 : 나만의 음악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결정적 사건은 라디오헤드(Radiohead)를 접하면서부터였다. 야간 자율학습을 11시까지 해야 하는 고등학교를 3년간 다니면서 아마 평생들을 음악을 다 들었던 것 같다. 음악 잡지 < 핫 뮤직 >과 임진모의 <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 >(2003)을 교본처럼 읽고 음악을 찾아 들었다. 당시에는 평론가의 말은 다 맞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아도 그들이 그르다면 내가 틀린 것으로 해석했다. “대체 이게 뭐가 좋다는 거야?”라는 의문 부호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도 선지자(?)들이 좋다는 말에 그 '좋은 점'을 알고 싶어 무식하게 반복하고 관련 기사도 꾸준히 찾아 읽어봤다. 'Paranoid android'로 시작된 '이해의 쾌감'은 꽤 큰 것이었다. 스스로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룬 기분이었다. 음악을 즐기는 것 이상으로 분석하며 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Band on the run'
24세 : 군대를 전역하고 신촌에 있는 야드버즈(Yardbirds)라는 음악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을 배웠다. 온갖 장르의 음악을 아울렀던 사장님은 나에게 좋은 스승이었다. 이곳의 단골손님 중에 특별한 분이 계셨는데, 밴드 곱창전골의 리더 사토 유키에였다. 사장님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가끔 오셔서는 일일DJ로 그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려주시곤 했다. 올드 록을 좋아했던 그의 선곡은 내게 배움의 장이었다. 손님이 없어 한산하던 하루 그의 레파토리 중에서 두, 세곡의 겹쳐진 구성의 독특한 록 트랙에 매료되었다. “형님, 누구 곡이에요?”. “처음 들어보니?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곡이야”,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요?” 음악 좀 들었다고 자부해왔던 나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후 내 음악 인생은 180도로 바뀌었다. 수년 동안 비틀즈의 모든 음악과 멤버 전원의 솔로 전 디스코그라피를 파고 또 팠다. 음악에 늘 갈증을 느껴왔던 내게 비틀즈는 화수분이었다. 모든 것이 다 비틀즈에 있었다. 이후 나는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비틀즈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존 레논(John Lennon) 'Oh Yoko!'
26세 : 나는 사랑꾼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사랑에 관련한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아마 그래서 비틀즈의 음악에 더 쉽게 빠졌는지 모른다. 존 레논의 음악에서 나는 내 사랑의 감정을 더욱 자극시키는 마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늘 사랑스럽기만 했던 여자 친구에게 레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음악도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지만 요코에게 바치는 'Oh yoko!'를 개사해 그녀에게 종종 불러주곤 했다. '한밤중에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욕실 한가운데서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면도를 하던 중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꿈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사랑 이야기였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느끼고 있던 사랑을 삶 속으로 녹아들게 했던 이 노래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Layla(Unplugged)'
30세 : 이번 특집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뮤지션이다. 나에게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한 곡으로 요약이 어렵기 때문이다. 삶 깊숙하게 스며들어 비틀즈만큼이나 중요한 아티스트이며 기타리스트이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셀 수 없이 감동했다. 내게 인생의 단 한 장의 음반을 뽑으라고 하면 찰나의 고민 없이 < Unplugged >(1992)를 선택할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정의 기복으로 음악이 필요할 때나 누군가 함께 아무런 음악이 필요할 때, 홀로 여행길에 오를 때 등 무의식의 의식 속에서 노래가 필요한 순간에는 이 음반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Layla'는 나에게 기타 연주의 미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스승과 같은 트랙이었다. 쓸데없이 어려운 화성을 쓴다거나 기교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주가 되는 멜로디를 바탕으로 듣는 이에게 편함을 전달하는 연주가 중심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다는 것도 에릭 클랩튼을 통해서 배웠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Wave'
31세 : 작곡 전공을 한 여자 친구를 만나며 지방 여행을 종종 다녔다. 보통은 그를 위해 만든 음악 리스트를 선곡해 차 배경 음악에 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운전의 피로를 달래곤 했다. 이날의 여행지인 춘천을 향해가면서는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해줬다. 그녀는 입시 준비를 하며 접했다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Wave'를 알려주었다. 이날 내내 들었던 '춘천 가는 기차'는 될 바도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졌던 가을의 도로가 정말 아름답게 다가왔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황홀했다. 록만 듣는 아저씨로 알고 있었던 그녀도 노래로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즐거워했고, 그 이후 톰 조빔의 음악은 우리의 '메인 BGM'이 되었다.

비틀즈(The Beatles) 'In my life'
34세 : 비틀즈에 한창 빠져있을 시기 이 노래의 가사를 이해한 이후 나는 이 곡을 언젠가의 내 프로포즈 곡으로 정했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보편적인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여자 친구와 결혼을 결심하고 사랑과 내 마음을 담은 반지를 준비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을 하나의 영상으로 엮어 'In my life'의 가사로 그녀를 향한 사랑의 다짐을 글로 써 내려갔다. '평생 당신을 가장 사랑할 거예요.' 노래의 이야기는 우리의 사랑이 되어 그대로 전달되었다. 덕분에 이 도시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름다운 기억이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Word on a wing'
34세 :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것을 겪었고 말 그대로 폐인 같은 시간을 보냈다. 생활처럼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지만, 이때 내게 음악은 감상이 아닌 세상과의 단절 수단이 되었다. 언제나 무작위 재생이었다. 그러는 중에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목소리는 그 누구의 위로보다 크게 다가왔다. 평소에는 몰랐던 노래였다. < Station To Station >(1976)에 수록된 'Word on a wing'이라는 곡이었다. “대리님, 왜 한 달 내내 한 곡만 들으세요?” 음악을 좋아해 종종 나에게 추천을 받았던 회사 후배였다. 아이튠즈를 통해서 내가 듣는 음악을 따라 듣던 중에 새로운 것을 전혀 듣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돼 물어봤다고 했다.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 내가 진짜 그랬나 싶어 이후 이 노래가 어떤 노랜가 찾아봤다. 곡에 대한 보위의 이야기는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1970년대 말은 내게 있어 가장 어두운 날들이었어요. 두려움의 연속이었고, 정말 고통스러웠죠. 부지불식간에 이 노래는 내게 보내는 조난신호와 같았어요. 동시에 구원의 목소리라 확신했습니다.” - 데이비드 보위(2009, VH1 Storytellers),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1995년. 나에게 있어 음악을 '청취'에서 '소비'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준 기념비적인 노래다. 무슨 소린고 하니, 내가 구매한 첫 음반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네번째 앨범이었다는 이야기. 처음으로 4,500원을 주고 집어온 테이프는 어린 마음에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재킷에 가사가 쓰여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특히 너무나 좋아했던 이 노래를 원할 때마다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 했다. 학교에, 학원에 가지고 가 마구 자랑하기도 했던 '앨범'이라는 매개체와의 첫 만남, 다 이 노래 덕분이었다.

에미넴(Eminem) 'Kill you'
1999년. 그야말로 컬쳐쇼크였다. 아, 본토의 힙합이란 이런 것인가. '에미넴'이란 이름 석자만 듣고 덜컥 구입한 앨범 속 언어 폭격은 내 정신을 초토화시켰다. 기상천외한 라임과 탄탄한 플로우, 공백이 많은 비트를 랩 하나로 꽉 채우는 래핑에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움을 연발. 물론 이 < The Marshall Mathers LP >의 트랙들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지만, 이 곡은 인트로 후 실질적인 첫트랙이었던 덕분에 더욱 각별한 인상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다만, 학원영어 선생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팝송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이 곡을 들고 갔던 건 흑역사 중 하나.

림프 비즈킷(Limp Bizkit) 'Rollin'(Air Raid Vehicle)'
2000년. 솔직히 말해 나는 많은 팝 레전드를 공부로 뒤늦게 익힌 사람이다. 어렸을 땐 주위에 팝을 듣는 사람이 없어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명반을 리얼타임으로 즐기지 못했다. 더더욱 웃긴건 팝 입문을 뉴메틀로 시작했다는 사실. '하드코어'라 불리던 음악들을 선호했던 나는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기점으로 소개되던 여러 해외 밴드들을 하나 둘 씩 찾아 듣기 시작했고, 내 귀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 바로 '빡빡이 아저씨' 프레드 더스트였다. 그 중에서도 이 곡은 가사를 정확힌 몰라도 들리는 발음대로 따라 부를 수 있었던 헤비 로테이션 넘버. 2013년 < 시티브레이크 >에서 이 곡을 직접 들었던 그 순간은, 내 페스티벌 경험 중 손꼽히는 기억이기도 하다.

두 애즈 인피니티(Do As Infinity) 'Summer days'
2001년.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는 아이리버의 MP3 CDP를 들고 다니며, 흔치 않게 일본음악을 즐겨 듣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CDP를 빌려 쉬는 시간에 들어봤는데, 취향에 영 안 맞는 거다. - 뒤늦게 알고보니 그때 들었던 건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였다. 사실 지금도 하마사키 아유미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 그러던 중 '정말 이게 단가?' 싶은 마음에 며칠 뒤 다시 한번 가져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을 때 나온 것이 바로 이 노래였다. 거친 디스토션과 시원시원한 가창,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미자 누나로 불린 반 토미코의 음색은 나를 단숨에 열도음악에 발을 담그게 만들었다. 일본음악과의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일본음악을 열심히 듣고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 터.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Welcome to the black parade'
2006년.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앨범 중 가장 많이 들은 곡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 록 오페라 모음집은 나에게 있어 어느 레전드 뮤지션들의 작품보다도 이상적인 한 장이다. 어떤 트랙을 싱글컷해도 상관없을 정도의 균형잡힌 완성도,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와 일관성, 작품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기적과도 같이 잡아낸 프로듀싱. 그 중에서도 이 노래는 화룡점정이다. 가사의 고조와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 구성은 드라마틱한 블록버스터를 연상케 한다. 라이브가 좀 별로면 어떠랴. 살아있는 자들의 기치를 소름이 돋도록 부르짖음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송가'가 어디 또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돌아온 제라드 웨이는 배 나온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건 다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일 테다. 이 노래를 들으며 치열하게 살아온 나와 내 친구들 모두 그를 닮은 아저씨가 되었으니까.

챠토몬치(チャットモンチ?) 'シャングリラ(샹그리라)'
2007년. 나의 20대를 관통하는 아티스트가 누구냐 묻는다면 1초만에 튀어나올 그 이름 챠토몬치. 꿈만 꿀 뿐 행동하지 못하던 나를 북돋아준 것도, 낯선 곳에서의 적응을 도와준 것도, 위기 또한 기회일 수 있다고 소리쳐 준 것도, 다 그들이었다. 그나마 사람 역할하며 지금 살아갈 수 있는 건 꽤 많은 부분 그들의 음악과 함께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내 안의 확신 같은 것이 존재할 정도로, 이 밴드는 나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노래는 처음 그들과의 연을 이어준 노래이자 팀의 시그니처 송으로,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우연히 듣고 그 뒤로 푹 빠져 버렸던 곡이다. 단순하지만 유니크한 짜임새와 가사, 그리고 멜로디. 팀으로서의 시너지와 하시모토 에리코의 재능이 반짝반짝 묻어나는 곡으로, 지금도 생각나면 자주 꺼내 듣곤 한다. 이제는 '완결' 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처럼, 지금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내가 되도록 다짐하면서 말이다.

트래비스(Travis) 'Turn'
2010년. 대학시절의 나는 밴드공연이 너무 하고 싶었다. 어쭙잖게 기타를 배우며 이 곡 저 곡을 쳐보았지만, 원하는 곡을 치기에 내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당시 활동하고 있던 아카펠라 동아리 정기공연 말미에 합주를 두 곡 정도 하기로 결정하고 이 노래 저 노래를 찾아보던 중 한 선배가 추천해준 게 바로 이 노래였다. 당시 나는 무조건 하드하고 빠르고 우당탕 깨부수는 곡들에 빠져있을 때라 기도 안 찼던 것이 사실이나, 어쨌든 내 실력과는 타협을 봐야 될 것이 아닌가. 딜레이만 잘 먹이면 프로 부럽지 않게 간지가 났던 이 노래는 악기가 모두 초보였던 우리 팀에게 '합주'의 재미를 알려주었던 그런 곡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 'Inside looking out'
2011년. IZM에 들어와서 그 동안 안 듣던 팝을 공부하며 몰아 듣던 시절에 찾은 내 취향의 근원같은 곡이다. 애니멀즈(The Animals)의 원곡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9분여에 가까운 대곡으로 재탄생한 이쪽에 비빌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4비트 하이햇으로 듣는 이와의 밀당을 예견케하는 인트로부터 블루스 터치가 가미된 폭발적인 기타연주, 터질땐 확실히 터뜨리는 마크 파너의 보컬까지. 이 당시에 정말 많고도 유명한 밴드들의 곡을 열심히 들었건만, 유독 기억에 남고 자주 플레이하게 되는 건 완곡 들으려면 버스정거장 세 개는 지나야 되는 바로 이 노래다. 거의 4분을 넘게 이어지는 잼 비스무리한 연주를 들으며 전율을 느끼는 것은, 나도 이렇게 티나지 않게 빛나보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 '天??測'
2013년. 일본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느낄 것이다. 그 어디에도 말을 섞을 수 없는 고립감을. 그리고 외로움을. 그래서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실행했던 버킷리스트는 바로 일본의 로컬 록 페스티벌 관람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2013년의 < Rock in Japan > 현장이. 모든 무대가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틀째의 헤드라이너는 각별하다. 범프 오브 치킨이라는 거대한 존재감이 바로 몇미터 앞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던 그때. 순식간에 지나간 본 무대에 이어 나를 소름돋게 했던, 앵콜요청을 대신해 울려퍼지던 5만명의 'Supernova' 합창. 항상 나 혼자만 숨어서 좋아했던 보상을 다 받은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감격에 눈물마저 찔끔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함께 따라 부른 뒤 등장한 후지와라 모토오의 한마디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마지막 곡입니다, 天??測(텐타이칸소쿠)!”

조용필 '바람의 노래'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청춘과 젊음을 조금씩 떠나보내는 중이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네”



조수미 'Caro mio ben'
나에게 노래의 멋을 알려준 가수는 조수미다.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휘트니 휴스턴보다 조수미에게 먼저 빠졌다. 그의 1998년 이탈리아 가곡집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합창단의 누나들은 독창 기회만 생기면 이탈리아 가곡집 1번 트랙에 실린 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섰다. 지금도 'Caro mio ben'을 들으면 쿰쿰한 냄새가 나던 반지하 연습실의 공기가 떠오른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Tears in heaven'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아버지가 틀어놓은 에릭 클랩튼과 친구들의 1999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실황에서였다. 라인업에는 메리 제이 블라이즈, 밥 딜런도 있었는데 유독 구슬펐던 이 노래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한참이 지나 이 노래에 담긴 사연을 알게 된 후로는 이 곡이 더욱 각별해졌다. 나도 에릭 클랩튼의 애달픈 노랫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너는 내 이름을 알까?” 궁금증이 풀리려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한다는 게 슬프다.

본 조비(Bon Jovi) 'Livin' on a prayer'
나의 10대 시절은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아날로그에 가까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방안에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없었고, 휴대폰도 스무 살에 처음 생겼다. 자연히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레코드 가게를 가까이했다. 본 조비를 알게 된 계기도 라디오였다. 이 노래가 방송에 나오던 순간 나는 마음을 뺏겼다. 메탈리카를 좋아하던 친구는 곡을 받아 부르는 밴드는 록이 아니라며 이들을 깎아내렸지만, 나는 본 조비를 통해 록에 접속했다.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 내게 전인권은 “인권이 라이프”를 외치는 이상한 아저씨였다. 인식이 바뀐 건 중학생 때다. 그가 십여 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장충체육관에서 개최한 단독 공연을 뒤늦게 찾아봤다. 전율이 일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는 그를 보며 나는 얼어붙었다.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샤우팅이었다. 그날 이후 난 전인권과 들국화의 팬이 됐고,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열린 들국화의 재결성 콘서트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마돈나(Madonna) 'Vogue'
사실 마돈나의 노래로 내 인생의 10곡을 채워도 모자라다. 케이블 음악 채널에서 우연히 'Frozen'의 뮤직비디오를 본 이후 난 마돈나에게 서서히 스며들었다. 결정적인 노래는 'Vogue'였다. 발매 시기를 짐작할 수 없는 세련미에 먼저 놀랐다. 데이비드 핀처가 만든 뮤직비디오, MTV 시상식의 마리 앙투아네트 퍼포먼스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노래로 LGBT를 알았고, 미국의 아이콘들을 배웠다.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먼로, 마를렌 디트리히, 조 디마지오, 말론 브란도... 순서도 잊히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eat it'
마이클 잭슨과의 추억은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내한 공연 당시 텔레비전 중계를 보던 날, 30주년 공연에 총출동한 스타들을 보며 감탄하던 날, < This Is It > 공연 발표 기자회견을 보며 설레던 날, 황급히 날아든 사망 속보에 새벽부터 어머니가 잠을 깨우던 날... 마이클 잭슨은 내게 팝 스타이자 록 스타였고 어린 날의 우상이었다. 그와 처음 만난 곡이 'Beat it'이었다. 그땐 나도 크면 빨간 가죽 재킷과 검은 슬랙스, 하얀 양말과 까만 구두가 어울리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Overprotected'
그 시절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독보적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잠시나마 우리 시대에 마돈나가 생긴 기분이었다고 할까. 카리스마로 무장한 퍼포먼스부터 한국에 와서 보여준 친근한 모습까지 순간순간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말하자면 그는 내 인생 최초의 동시대 팝스타였다. 우리 집에선 'I'm a slave 4 u', 'Toxic' 등 그의 노래 중 상당수가 '야한 노래'로 낙인이 찍혀 감상 금지 대상이 됐지만, 팝 멜로디의 진수를 들려준 'Overprotected'만은 어머니도 허락한 좋은 노래였다.

퀸(Queen) 'Bohemian rhapsody'
세상 모든 사람이 그랬듯, 어린 나 역시 이 노래를 처음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어떤 합창단이 이렇게 멋진 오페라 파트를 불렀을까. 나중에 멤버들끼리 부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 당혹감이란! 구성의 측면에서도 여태껏 이보다 놀라운 노래는 없었다. 대체 이 노래는 발라드인가, 하드 록인가, 오페라인가. 결국 난 이 노래의 장르를 퀸 그 자체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야 했다. 내게 이 노래만큼의 충격을 안길 노래는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보아 'No.1'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자넷 잭슨을 좋아하던 내가 보아에게 끌린 건 당연하다. 그들 못지않은 춤꾼이면서 우리나라 사람이고, 나이 차이도 몇 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노래까지 잘 부르는 것 아닌가. 보아의 'No.1'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보며 나는 넋을 잃었다. 곧바로 그의 행보를 좇기 시작했고, 그를 발판 삼아 음악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마이클 잭슨, 마돈나와 더불어 보아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당시 이 일화를 듣고 뿌듯하다는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이 문득 생각난다.

엘리 골딩(Ellie Goulding) 'How long will I love you'
운전병 시절 유일한 낙은 라디오였다. 라디오가 없었다면 지루한 대기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을 테다. 야간 순찰을 나간 어느 날, 산골짜기 소초에 차를 세워두고 심야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별들이 하늘에 떠 있는 동안,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오래.” 마침 별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이 노래는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때 그 마음은 진작 사라졌지만, 노래만은 그대로 남아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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