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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y Bible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1994

by 김도헌

2013.10.01

1990년대 영국 록 시장에 돌연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했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줄여서 매닉스는 '리얼리즘'을 내걸고 원초적 록 사운드와 급진적 신념을 무기로 삼았다. 선동적·정치적 가사와 날선 기타 리프, 여기에 강성한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의 보컬은 음악 '감상'이 아니라 분노의 음악 '린치'나 마찬가지였다.

밴드의 8할을 이루고 있던 멤버는 기타리스트 리치 에드워즈 (Richey James Edwards)였다. 밴드명부터 디자인, 콘셉트를 대부분 만들었고 거의 모든 곡의 가사에 관여했던 그는 밴드의 사상적 교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강철같이 단단한 음악과는 달리 그 자신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질적인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은 거식증과 자해행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리치의 정신적 불안정의 결과가 아이러니하게도 분노에 가득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 The Holy Bible >은 그 정점이었다. 앨범 타이틀로 성경을 내건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장하지 않는다.'는 리얼리즘적 시선에서의 조롱이었다. 대부분의 작업이 리치 에드워즈의 손에서 탄생했고, 그 결과는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의 자기혐오와 사회 비판으로 점철되었다. 공격적인 사운드는 난폭한 지경에 이르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은 아예 극한으로 치달아 두려움을 자아낸다. 거침없이 날리는 일침의 수위는 테러리스트를 넘어 아나키스트의 영역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앨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가사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다. 역시 80% 이상 리치 에드워즈가 작사한 가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제의 폭이 넓으며,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가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라 칭했을 정도로 상당한 깊이를 지니고 있기에 세세한 분석과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Yes', 영미 정부에 대한 공격인 'ifwhiteamericatoldthetruthforonedayit'sworldwouldfallapart'는 인정사정없는 난도질이다.

여기에 자기 혐오적인 가사들이 몰아치는 와중에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I wanna die, die in the summertime'의 후렴구가 인상적인 'Die in the summertime', 거식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4st 71b'등의 묘사는 너무나도 적나라하다. 강한 자의식의 발현인 'Faster'까지 이르게 되면 앨범은 매닉스라는 밴드보다 리치 에드워즈라는 한 개인의 사상과 상황을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위의 설명만 보면 굉장히 난해한 앨범이리라는 예상이 앞서지만, 실제로 매력적인 사운드와 어우러진 결과물은 깊은 고민 없이도 잘 들리는 편이다. 기본적인 강력한 포스트 펑크를 바탕으로 깔아놓았으며 고딕 록, 뉴 웨이브, 인더스트리얼 등의 장치를 더해 기괴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Yes'와 'P.C.P'는 펑크 록적인 매닉스 사운드의 전형이며, 'Of walking abortion'같은 경우는 인더스트리얼적인, 'This is yesterday'는 뉴 웨이브적인 성향이 감지된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 속에서도 멜로디라인은 항상 명료하게 빛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She is suffering'은 밴드를 대표하는 곡으로 꼽기에 조금의 모자람이 없는, 최고의 곡이다.

< The Holy Bible >은 리치 에드워즈와 멤버들이 자기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만들어낸 처절한 결과물이었다. 창작의 고통과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상업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상실이 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1995년 2월 1일,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리치 에드워즈는 그 길로 영영 사라져버렸다. 매닉스 멤버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과격함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후속작 < Everything Must Go >가 전례 없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상실감은 더욱 배가되었다.

리치 에드워즈는 사라졌지만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아직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멤버들도, 팬들도 아직 그를 잊지 못한다. 음악 전문지 < NME >와의 인터뷰에서 진정성을 의심받자 주저 없이 칼을 꺼내 팔에 '4 Real'을 새겼던 리치는 진실을 탐구하며 부조리를 거부했던 1990년대의 록 '투사'였다. 스스로 십자가를 메고 면류관을 쓰는 고통 속에서도 그 신념만은 굳건했다. < The Holy Bible >이 거짓과 싸우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성서'로서 추앙받아야 마땅한 이유다.

-수록곡-
1. Yes [추천]
2. ifwhiteamericatoldthetruthforonedayit'sworldwouldfallapart [추천]
3. Of walking abortion
4. She is suffering [추천]
5. Archives of pain
6. Revol
7. 4st 71b [추천]
8. Masoleum
9. Faster [추천]
10. This is yesterday [추천]
11. Die in the summertime [추천]
12. The intense humming of evil
13. P.C.P [추천]
김도헌(zener12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