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생명은 노래에 있다. 그래서 가수(歌手)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좋은 보이스를 알아차릴 수 있는 청각 센서를 가지고 있다. 거의 무조건반사다. 김범수는 이러한 대중들의 청(聽)감수성 깊은 곳을 건드릴 줄 아는 가진 가수다. 그런 그가 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테마송 '보고 싶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재충전된 저력으로 4집을 발표했다.
4번째 에피소드를 내놓기 전까지 김범수의 행보는 화려했다. 얼굴 없는 가수로 등장한 대신 한 편의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홍보했고 히트곡들은 대부분 드라마 삽입곡으로 사용되어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그리고 대표곡 '하루'(2000년)의 영어 버전인 'Hello goodbye hello'가 빌보드 세일즈 차트에 명함을 내밀며 김범수라는 이름에 깊은 신뢰감을 부여했다. 4집은 이렇듯 잘 닦아놓은 길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든 앨범이다.
이러한 동행을 위해 많은 뮤지션들이 김범수와 손을 잡았다. 브라운 아이즈의 멤버였던 윤건이 웅장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선사하는 R&B곡 '후회가 싫다'를 전해 주었고, 프로듀서로 다시 명성을 얻은 이현도가 '영원에 관하여' 외에 3곡이나 참여했다. 특히 그가 만든 '영원에 관하여'에서는 리쌍이, '슬픔 한가운데'에는 김조한이, 'Happiness'에서는 주석이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네오펑키 스타일의 자유로움을 듬뿍 담은 '無題'는 박효신과의 멋진 하모니를 선사하고,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폴 잭슨 주니어(Paul Jackson Jr.)와 베이시스트 래리 킴펠(Larry Kimple)이 세션을 맡은 라틴풍의 'Be mine'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사랑과 평화의 노래 '한동안 뜸했었지'의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주석의 랩과 BMK, 그리고 사랑과 평화 본인들의 코러스까지 감상할 수 있어 더욱 반갑다.
이러한 다채로움의 홍수 속에서 타이틀로 내세운 곡은 '가슴에 지는 태양'이다. 곡은 그가 면면히 이어왔던 R&B 가수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잇고 있으며, 애절하면서도 강렬한 그의 목소리의 묘미를 오롯이 담아내 '과연 김범수!'라는 찬사를 우러나오게 한다. 이 외에도 타이틀의 연장선상에 있는 윤일상 작곡의 '사랑만으론'과 '아름대운 채로', 김범수 자신이 직접 오선지에 음악 그림을 그린 CCM 팝 발라드 'To me'까지, 타인을 수용하면서 자신만의 음악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때로 김범수는 데뷔시절에 얼굴을 가리고 선전 효과를 극대화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한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히면 굳힐수록 대중들이 원하는 장르에만 집착한다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김범수는 가수가 갖춰야 할 가창력과 진실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우리 시대의 가객(歌客)이다.
김범수는 오늘도 자신의 틀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진정한 노래쟁이가 되기 위해 곡 속에 자신을 올인한다. 바로 이번 앨범이 이에 관해 잘 말해주고 있다.
-수록곡-
1. 후회가 싫다 (작사: 채정은 / 작곡: 윤건)
2. 사랑만으론 (채정은 / 윤일상)
3. 영원에 관하여 (이현도 / 이현도)
4. 왜 또 (이승호 / 윤일상)
5. 無題(Duet. 박효신) (윤사라 / 황찬희)
6. 가슴에 지는 태양 (윤사라 / 신인수)
7. 슬픔 한가운데 (이현도 / 이현도)
8. Happiness (이현도 / 이현도)
9. 아름다운 채로 (채정은 / 윤일상)
10. 거짓말 (윤사라 / 황세준)
11. Be mine (김민지 / 이용민)
12. 나의 너에게 (이현도 / 이현도)
13. 한동안 뜸했었지(Remake)
14. To me (김범수, 이효석 / 김범수)
프로듀서: 최민혁, 김범수